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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4일 일요일

위키리크스: 머리에 총 맞아 죽은 이라크 어린이들은 미군 소행이라고 유엔이 밝혀

이 휴대폰 사진은 2006년 3월 15일 이샤키 주민에 의해 촬영되었다. 이라크 경찰은 이라크에서 (미군의) 야간 기습 공격 이후 미군에 의해 처형된 아이들의 시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다섯 아이의 시신이 담요에 감겨 매장지로 옮겨지기에 앞서 픽업트럭 짐칸에 뉘어져 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국무부의 한 외교 공전은 유엔 조사관의 말을 인용해 부검 결과 사건이 난 집 거주자들이 5세 미만 어린이를 포함해 수갑에 채워진 채 머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매클라치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주민으로부터 사진을 입수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의 한 외교 공전은 미군이 70대 여성과 생후 5개월 된 갓난아기 등 최소 10명의 이라크 민간인을 처형한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공습을 요청했다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당시 사건은 이라크 중부 이샤키에서 2006년 발생해 논란을 샀다.

지난주 위키리크스 웹사이트에 게재된 평문으로 분류된 외교 공전에는 이 사건에 대한 유엔 조사관의 질문이 담겨 있었다. 이 사건때문에 이라크 현지 관리들은 분노했고, 이라크 관리들은 자국 정부에 모종의 조치를 요구했었다. 미국 관리들은 당시 그 어떤 부적절한 일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초법적·약식·자의적 처형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필립 알스톤은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시행한 부검을 통해 사망자 전원이 수갑에 채워져 머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2006년 3월 15일 사건 이후 12일이 경과한 시점에 이뤄진 미국 관리들과의 교신에서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여성 4명과 어린이 5명이 포함되어있다. 아이들은 모두 5살 또는 그보다 어린 나이였다.

31일 이메일을 통한 연락에서 알스톤은 최신 데이터라며 2010년 현재 미국 관리는 정보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으며, 이라크 정부도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묵묵부답이었는데, 이라크에서의 전투가 절정일 당시인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미국에 보낸 편지 대부분이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알스톤은 해당 사건에 대해 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정교한 의사소통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국가들이 자국과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들을 무시할 때 유엔 인권이사회는 후속 조치를 취할 장치가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도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이라크 주둔 미군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고, 그들은 나중에 이 사건을 더 이상 조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군 관리들도 이번 사건에 어떤 부대가 연루됐을지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라크는 2006년 초부터 급속도로 혼란에 빠져들었다. 지난 2월 수니파와 시아파 회교도 사이에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한 가운데 (아스카리야 사원의) 황금돔은 폭발로 산산조각이 났다. 또한, 대부분 이라크의 알 카에다와 연합한 수니파 무장세력들이 시골의 넓은 지역을 장악했다.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에서 멀지 않은 바그다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80마일 떨어진 이샤키는 당시 미군 관리들이 이 지역의 모든 도로를 '검은색'으로 분류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여겨졌는데, 이들 도로의 노변에는 폭탄이 장착된 부비트랩의 존재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샤키 사건은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아 설치되고, 미군이 훈련을 받은 이라크 경찰들이 근무하는 지역안보센터인 티크리트에 있는 공동조정센터에 의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례적인 사건이다.

당시 사건보고서는 이라크 경시감이 서명한 것으로, 합동조정센터를 이끌었던 아사 알 자보리 여단장 등 미군 훈련을 받은 이라크 경찰이 미군에는 치명적이었음에도 공개석상에서 조사에 대해 밝힐 용의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초기 조사 내내 미군 대변인은 이라크의 한 알카에다 용의자가 치열한 전투끝에 1층 방에서 체포되었으며, 그 뒤에 그가 숨어지내던 집은 잔해더미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 외교 공전 내용은 사건의 흐름도 다른데다가, 미군이 거주자들을 총으로 쏜 뒤에 집을 파괴했다는 동네 주민의 주장에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다.

알스톤은 처음에 자신의 질문을 제네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 제출했고, 대사관은 질문 내용을 외교 공전을 통해 워싱턴으로 타전했다.

알스톤의 사건 버전에 따르면, 미군은 이샤키에 있는 한 주택에 접근했다. 알스톤은 이 집을 "알 아이즈 하키"라고 불렀는데, 농부로 확인된 페이즈 해랏 알 마즈마예란 사람이 소유한 집이다. 미군은 25분 동안 총격전을 벌였다고 알스톤은 말했다.

알스톤은 이렇게 적었다. 총격전이 종료된 뒤 "미군 병력은 집에 들어가 모든 거주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전원을 처형했다. 다국적군(MNF)의 초기 개입 이후 미군의 공습이 뒤따랐다." 이니셜 MNF는 다국적군을 지칭하는 말로 연합군의 공식 명칭이다.

알스톤은 말했다. "이라크 TV 방송국은 현장에서 방송했고, 티크리트 영안실에 있던 희생자 시신을 방영했다. 티크리트 병원 영안실에서 부검을 통해 시신들이 모두 수갑을 찬 상태로 머리에 총격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외교 공전에는 그 집이나 인근에서 체포되거나 발견된 총격 용의자 존재 여부에 관한 언급은 없다.

동 외교 공전은 당시 이웃 주민들이 나이트 리더社 기자들에게 말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맥카치는 2006년 봄 나이트 리더社를 인수했다.) 이웃 주민들은 미군이 새벽 2시 30분에 그 집에 접근했고, 총격전이 뒤따랐다고 말했다. 집 안에 있는 누군가와 총격전을 주고받는 것 외에, 미군을 지원한 공격용 헬리콥터가 그 집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해당 공전을 보면 그 집이 멀쩡히 서있는 동안에 미군이 들이닥쳤다고 밝힌 합동조정센터의 초기 보고 내용을 뒷받침해 준다. 첫 보고는 이렇게 적혀있다: "미군은 아이 5명, 여자 4명, 남자 2명 등 일가족 11명을 한 방에 모아놓고 처형했다. 그리고는 집을 폭격하고 차량 3대를 불태우고 동물들을 죽였다."

이 보고서는 파딜 무하마드 칼라프 대령이 서명했는데, 그는 보고서에 합동조정센터 부소장으로 기술되어있다.

이 외교 공전은 또한 부검을 수행한 의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의사는 나이트 리더社 기자들에게 "모든 희생자가 머리에 총탄을 맞았으며, 시체 전체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외교 공전은 "최소한 10명의 사망자 실명을 밝힌다. 페이즈 흐랏 칼라프(28)와 그의 아내 수메야 압둘 라자크 쿠더(24), 세 자녀 하와(5) 아이샤(5)와 후삼(5개월), 페이즈의 어머니 투르키야 마지드 알리(74), 페이즈의 여동생(무명), 페이즈씨의 조카인 아스마 유시프 마아루프(5), 우사마 유시프 마아르프(3), 방문 중이던 친척 이크티사드 하메드 메흐디(23)가 미군의 습격 도중 사망했다."고 적었다.

(캔자스 시티 스타의 편집위원인 스코필드는 베를린 지국장이었으며, 이샤키 사건 당시 이라크에서 임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원문 보기: WikiLeaks: Iraqi children in U.S. raid shot in head, U.N.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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