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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4일 목요일

힐러리 클린턴 유출 이메일: 美 동맹국인 사우디와 카타르가 IS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누출된 힐러리 클린턴의 2014년 이메일에 등장하는 서방 정보기관의 인용을 통해 미국이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정권이 IS를 지원했음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외교적이고 전통적인 정보 자산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는 IS와 여타 급진적인 수니파 그룹에 비밀리에 재정적 지원과 병참(보급품)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안 그래도 신정 걸프 군주제 국가가 중동 전역의 극단주의자 집단의 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던 마당에 이번 문건이 더해졌다.

2016년 1월 새로 공개된 또 다른 이메일에는 2013년 10월 비공식 연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클린턴은 해당 연설에서 "사우디는 지난 30년간 지구상의 다른 어떤 곳보다 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수출했다"고 인정한다.

클린턴은 같은 연설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대적할 수 있고, 아울러 불행히도 시리아에 유입된 알카에다 관련 지하디스트를 대적할 수 있는 시리아 "반란군 간부들을 검증하고, 발굴하고, 훈련하게 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더 강력하고, 은밀한 조치를 추진하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사우디 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기를 대량으로 무차별적으로 (시리아로) 보내고 있어 우리가 추진하는 조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듯 미래에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온건파 세력은 (그들 생각에선) 전혀 무기를 보내는 대상이 아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역시 2016년 1월 이메일 메시지에서 발췌한 2013년 6월 골드만삭스 연설 내용을 보면 그녀는 "특히 사우디는 결코 지구상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정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이메일은 투명성 기관인 위키리크스가 금주에 공개한 자료 일부이다. 구금 상태의 내부고발자 줄리언 어산지가 설립한 단체인 위키리크스는 클린턴 선대본부장이며 클린턴의 최측근인 존 포데스타가 주고 밭은 수천 통의 이메일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무부 장관 임무를 마친 다음 해인 2014년 8월 클린턴은 포데스타에게 보낸 "내가 언급했던 그 내용"이란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시리아와 이라크, 미국 정책에 관한 문건 목록을 보냈다.

클린턴은 해당 메시지의 정보는 서구 정보원, 미국 정보원 및 중동의 정보원에 근거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누가 해당 문건을 작성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문서에 사용된 표현은 미 국무부가 작성한 여타 문서의 표현과 유사하다. 이 문건은 시리아 대통령을 지칭하는 "Bash*e*r al Assad"라는 식의 비전통적인 형식과 똑같은 철자법을 사용했다. 이는 시드니 블루멘탈 전 보좌관이 클린턴에게 보냈던 예전 형식의 정보 문건(일부는 기밀 분류된 것)와 동일하다.

문건에 요약된 전략에 대한 응답으로 포데스타는 "내 생각에 우리가 이라크의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요소들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클린턴은 "동의하되 이라크 건이 개선됨에 따라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썼다.

클린턴의 메시지는 또한 미국이 대량 학살 집단인 이슬람 국가의 부상을 기회로 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비극적인 측면에도 이라크를 통한 IS의 진군은 미국 정부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혼란스러운 안보 상황을 다루는 방식을 바꿀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당 문건에 나온다. "이 문제에서 정보 자원과 특수 작전 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캠페인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이메일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부정한 바가 없다. 그러나 기자들이 이번 주 클린턴을 상대로 문건에 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월스트리트를 상대로 한 그녀의 유료 연설문 발췌를 포함하는 2016년 1월 메시지를 사실로 확인하였다.

살롱(잡지)은 클린턴 캠프에 연락해 해당 이메일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글랜 캐플린 대변인은 이메일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계속해서 개별 이메일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겠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캠프와 위키리크스가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혐의를 제기하면서, 이 일이 클린턴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저해하기 위한 거대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2014년 8월 이메일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친미 우방이 이슬람 국가와 여타 극단주의 단체를 지원한다는 혐의를 최초로 제기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다.

사실, 클린턴이 정보 문건을 포데스타에 보낸 지 불과 몇 주 후인 2014년 10월 조 바이든 부통령은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를 강하게 비난했었다. 그는 "그들은 아사드 타도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그에 대적할 만하다면 누구에게도 수억 달러와 수십 톤의 무기를 부었다. 다만, 다른 세계에서 유입되는 알 누스라와 알카에다, 등 지하디스트의 극단주의 집단에 제공되는 무기는 예외이다." 그는 "우리는 우리 동지들이 그들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하게 설득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바이든은 나중에 터키에 사과했지만, 그가 말한 것은 절대적으로 사실이었다. 우익 이슬람교도 리셉 타입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은 수천 명의 살라피(수니파 이슬람 강경파) 무장 세력이 터키 국경을 맘대로 넘어가도록 방치했다. 전문가들과 전직 IS 전투원들은 터키가 쿠르드족 반군과 시리아 정부를 약화시키기 위해 간접적으로 IS를 수년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말한다.

미국 당국자들과 많은 분석가와 뉴스 보도들은 오랫동안 군주제 국가 사우디와 카타르가 IS를 지원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오히려 그들은 IS 지원은 그 나라의 부유한 기부자들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은 2014년 9월 CBS와의 인터뷰에서 카타르와 다른 걸프만의 부유한 "엔젤 투자가"들이 IS에 돈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8월 유출된 이메일은 서방 정보원은 (사우디, 카타르) 정권 자체가 이슬람 국가에 대한 지원을 제공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모두 샤리아 또는 이슬람법의 근본주의적 해석에 근거한 억압적인 신정 정치 체제이다. 인권 단체들은 (사우디, 카타르) 양국에 대해 엄청난 규모의 구조적인 인권 유린에 대해 비난해왔다.

IS의 이데올로기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펴진 극단주의 수니파 이데올로기인 와하비즘과 매우 유사하다. 사실, 이슬람 국가(IS)가 시리아 수도인 락까의 어린이들을 위한 교과서를 필요했을 때 이 극단주의 단체(IS)는 온라인으로 찾은 사우디 국정 교과서 사본을 인쇄하여 사용했다.

이슬람 국가가 근대적 형태로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과 다른 서방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신정 걸프만 국가들이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자 그룹을 지지했다는 것을 인정했었다.

살롱Salon(잡지)이 이전에 보도한 바와 같이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성 장관이 서명한 2009년 공전公電(위키리크스 공개)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부자가 전세계 수니파 테러 단체들에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용어 해설: 위키리크스 공전公電과 전보문電報文, 전문電文의 구분

한국에서는 위키리크스에 누출된 국무부와 전 세계에 주재한 미 대사관 사이 오간 공전(公電)을 가리켜 보통 전문(전보문의 줄임말)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정확한 용어는 사전상의 의미을 볼 때 공전이 맞습니다. 일본에서도 '공전'이란 용어를 씁니다. 아울러 이 공전 작성자들이 각기 주재국 미 대사관을 통칭할 때는 보통 The Post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보통 미 신문이나 미디어 사이에서 워싱턴포스트지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The Post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국무부 문건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알카에다, 탈레반, 다른 테러 단체들에게 중요한 재정적 지원 기지로 남아있다"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오는 테러리스트 자금 문제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취급하자고 사우디 관리를 설득하는 일은 계속된 도전 과제 중에 하나였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이 동 정보 메일을 보냈던 2014년 8월 당시는 이라크 거점 이슬람 국가와 레반트는 아직 사후事後 양상처럼 강세를 띠지는 않았지만, 몇 주 전에 이미 자신들 스스로 글로벌 칼리프라고 선언했다. 지난 6월 IS 극단주의 집단은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모술을 침공하고 점령했다.

앞서 몇 개월 전에 IS는 지난 2월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인 자브하트 알 누스라와 연대를 끝냈다. 이데올로기로 보면 두 그룹은 거의 동일하지만, 전술은 달랐다. IS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고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로부터 침탈한 지역에서 즉각 파시스트 스타일의 정권을 세웠지만, 개명한 알 누스라는 보다 점진적 접근 방식을 선호했다.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알 누스라)는 민심을 사로잡는 전략을 추구하여 시리아 정부와 대전對戰하는 반대파의 주축이 되었다.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는 지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반란군이 되었고,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전투원임이 입증되었다. IS와는 달리 알 누스라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독자적인 스타일의 칼리프를 만드는 것을 선호했다. 2012년 알 누수라 지휘관은 샤리아 법률이 "점진적으로 도입될 것"이라고 한 기자에게 밝혔다.

2014년 8월 클린턴 이메일을 보면 시리아 반군 상당수는 극단주의 세력의 지배를 반대한다고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다만 해당 반군 세력은 미국이 소위 "온건파" 반군 단체를 지원해 달라고 여전히 요청하고 있다. 미 정보 당국은 미국이 IS와 싸워야 하지만, "바샤르 알아사드(Bash*e*r al Assad)가 미국의 작전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하게"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 문서에는 IS를 격퇴함으로써 시리아의 수니파 저항 세력을 재건하고, 자유 시리아군과 같은 온건 세력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우리는 약화한 IS를 상대할 수 있도록 자유 시리아군이나 온건파 군대에 장비를 제공하고, 시리아 정권에 맞설 작전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IS 부상 초창기에는 여타 이슬람 시라아 반군 단체가 IS와 협력했다. IS는 또 쿠르드족 대항 전투에서 외견상 온건파 반란군과 함께 싸웠다. 최근 6월과 7월 존 케리 미 국무 장관은 걸프만 국가과 터키가 지지하는 대표적인 시리아 반란군 아라르 알샴과 아흐라르 알-샴을 거론할 때 IS와 알카에다의 "하위 집단"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으로 반군을 무장시키고 훈련하게 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썼던 CIA는 비밀 자금 조달을 위해 사우디 자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IS의 성공적인 영토 점령은 리비아와 레바논, 심지어 요르단 거점 여타 전투원까지 영감을 불어 넣었다.

미 정보 당국은 IS 격퇴를 위해 쿠르드족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늘린 것을 제안했다. 그에 따라 "카타르 사람들과 사우디 사람들은 수니파 세상 지배권 경쟁을 지속하는 것과 미국의 심각한 압박에 따른 후과 사이 정책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동 이메일은 IS 퇴치를 위해 쿠르드족 전투원을 지원한다는 미국이 그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추구해온 전략에 관해 설명한다. 이 이메일에는 '쿠르드족 페슈메르가' 전투원이 "CIA 관리와 특수 부대 요원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적혀있다. 아울러 터키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미국은 앞서 '페슈메르가' 전투원에 중무기를 보내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IS가 급부상하자 "이 정책은 쓸모없어졌다."고 같은 문건에 적혀있다.

다만, 미 정보원은 쿠르드족에 대한 과도한 지지를 보내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였다. 그들 미 정보원은 이라크의 수니파 지역과 정부가 쿠르드족이 통제하는 영토 확장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당(當) 서방 정보원들은 "자치권 확대를 대가로 [쿠르드 자치 정부]가 키르쿠크 주변 유전과 모술댐 수력 발전소 경영에서 이라크 정부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도록 관련 이해 당사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페슈메르가 지휘부의 참모들과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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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문보기: Leaked Hillary Clinton emails show U.S. allies Saudi Arabia and Qatar supported ISIS SALON

2018년 4월 29일 일요일

미국은 어떻게 시리아 테러리스트를 무장했나

군사위원회와 외무위원회 소속 3선의 털시 개버드 여성 하원 의원은 시리아 내부 테러리스트 조직뿐만 아니라 그들 조직과 직접 협력하는 조직에 대해 미국의 지원을 완전히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똑같이 중요하게 이 법안은 테러 분자들과 협력자에게 무기를 공여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와의 군사 협력이나 다른 형태의 군사 협력을 금지하도록 한다.

개버드의 "테러리스트 무장 금지법"은 의회가 오래전에 경종을 울렸어야 했을 시리아 내전 속 분쟁과 관련된 미국의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2012~13년 오바마 행정부는 바샤르 알 아사드 권력을 강제 퇴출할 수 있도록 수니파 동맹국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시리아와 비 시리아 무장 단체에 무기를 공여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2013년에 미 행정부는 CIA가 판단하기엔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 아사드 집단에 무기를 공여하기 시작했다. 즉, 정도가 제각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규합했다는 의미다.

아사드 정권을 보다 민주적인 대안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 해당 정책은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 전선를 아사드를 위협할 주축 세력으로 키우는 일을 실제 도왔다.

반군을 무장하는 이 정책의 지지자들은 시리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반감시킬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대(對)시리아 미국 정책의 역사에서 제기되는 진짜 문제를 빠트리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정책은 알카에다와 테러 단체의 근절이라는 "테러와의 전쟁"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내다 버렸다. 미국은 그 대신 대테러 관련 미국의 이해관계를 수니파 동맹국들의 이해관계에 종속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중동의 심장부에 새로운 테러리스트 위협의 생성을 도와왔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의 전복을 다짐하는 군사 단체를 무장하는 정책이 처음 2011년 9월에 시작될 당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사드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라는 수니파 동맹국의 압력을 받을 시점이다. 아사드 반군 수립 의지가 확고한 이들 수니파 동맹국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이다. 터키와 걸프만 수니파 정권들은 미국이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을 반군에 공여하기를 원했다고 중동 문제에 관여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직 관리가 밝혔다.

오바마는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공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다만 그는 반(反)시리아 단체 무장을 위한 비밀 군사 지원 캠페인 수행을 돕는 미국 병참 지원을 제공하기로 동의했다. CIA가 관여한 반 아사드 병력 무장은 벵가지에 비축되어 있었던 카다피 정권의 무기고에서 무기를 이송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시모어 허시의 2014년 탐사 보도에 상세히 나와 있듯이 CIA 통제를 받는 무기 회사들은 병참을 관리하는 미군 요원을 활용하여 벵가지 군사 항구에서 시리아의 소규모 항구 두 곳으로 무기를 이송했다. 반군 무장 프로그램의 기금은 주로 사우디 사람들이 조달했다.

기밀 해제된 2012년 10월 국방정보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8월 말 선적한 무기는 저격용 소총 300정과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 100기와 유탄 300발, 곡사포 400기가 포함된다. 무기 수송마다 많게는 10개의 컨테이너 선적을 취급했으며 각 컨테이너에는 약 4만 8천 파운드의 화물을 적재했다고 국방정보국 보고서는 적시했다. 이는 선적 당 최대 250t의 총 무기 탑재량을 의미한다. CIA가 한 달에 한 차례의 수송을 기획했더라도 2011년 10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총 2,750t의 무기가 결국에 시리아로 향했다. 아마도 실제 무기 선적량은 언급한 숫자의 갑절일 공산이 크다.

2012년 9월 CIA의 비공식 무기 선적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그 때가 미 CIA의 무기 수송 작전을 지원을 위해 사용되었던 벵가지의 대사관 부속 건물을 리비아 무장 세력이 공격하고 불 태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이다. 그러나 그즈음에 반 아사드 세력을 무장하기 위한 더 큰 채널이 열리고 있었다. CIA는 1990년대 발칸 전쟁에서 남은 대량의 무기를 팔겠다고 제안한 크로아티아 고위 관리와 사우디 사람들이 접촉하도록 주선했다. 그리고 CIA는 여러 다른 구소련 국가 정부와 무기 판매상이 출처인 무기의 쇼핑을 사우디에 알선했다.

CIA 리비아 프로그램과 크로아티아로부터 조달한 무기가 넘쳐나면서 사우디와 카타르 사람들은 2012년 12월 터키행 군용 화물기 운항 횟수를 증편했고 다음 두 달 반 기간에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았다. 뉴욕 타임스는 2013년 3월 중순까지 총 160편의 항공편이 그런 이유로 운항했다고 보도했다. 걸프만에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화물기인 일류신 Il-76 항공편은 회당 대략 50t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고로 2012년 말과 2013년에 터키 국경에서 시리아로 8000t의 무기가 쏟아져 들어갔다.

한 미국 관리는 새로운 차원의 무기 배달을 시리아 반란군에 제공한 것을 일컬어 "무기 폭포수"라고 했다. 발칸 조사 네트워크와 조직범죄 및 부패보고 프로젝트는 1년에 걸친 조사에서 사우디가 강력한 재래식 군대를 시리아에 건설할 작정이었음을 밝혀냈다. 2013년 5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소재 무기 회사에서 구매한 무기의 "최종소비자증명"에는 중무장한 탱크도 관통할 수 있는 소련이 설계한 PG-7VR 로켓 발사기 500기와 탄두 2백만 개가 적시되어 있다; 콘커스 대전차 미사일 발사대 50문과 미사일 500개, 장갑차에 장착한 대공포 50문, 중장갑차를 관통할 수 있는 OG-7 로켓 발사기 파쇄탄 10,000발; 트럭에 장착된 BM-21 GRAD 다중 로켓 발사기 4기, 이 4기 중 1기당 1회 사격에 사거리가 12 ~ 19마일인 로켓을 40발과 GRAD 로켓을 20,000발 발사한다.

사우디가 발주한 같은 세르비아 무기 회사의 다른 최종사용자증명 내역에는 탱크 300대,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 2000기, 다른 로켓 발사기 16,500기, ZU-23-2 대공포 탄두 1백만 발, 기타 다양한 총기류 탄창 3억 1500만 개가 열거되어 있다.

두 차례 해당 구매는 사우디가 발칸 8개국으로부터 이후 몇 년에 걸쳐 획득한 무기 총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탐사 기자들은 사우디가 2015년에 가장 많은 무기 거래를 구소련 국가들과 했으며, 당시 거래된 무기에는 공장 생산 설비에서 막 나온 무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사우디 사람들이 구매한 무기 중 거의 40%는 2017년 초까지도 인도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우디 사람들은 수 년 앞을 내다보고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지속하기에 충분한 무기 계약을 이미 마쳤다.

지금까지 사우디의 가장 중요한 무기 구매를 하나만 꼽자면 발칸 제국의 무기가 아니라 미국산 무기 구매였다. 다름 아닌 10억 달러 상당의 토우 대전차 미사일 15,000기를 사우디에 판매한 미국의 2013년 12월 거래이다. 이 거래는 그해 반아사드 무장 단체에 살인 무기 지원을 금지했다가 번복한 오바마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아울러 미국의 재량에 의해서만 이들 대전차 미사일을 시리아 단체에 나눠 주기로 합의했다. 토우 미사일은 2014년 시리아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시리아 군사 균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로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봇물 터지듯 유입된 무기와 외국 전투원 2만 명 유입이 더해져 시리아 분쟁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했다.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 알 누스라 전선(현재는 타흐리르 알샴 혹은 레반트 자유인민위원회로 개명)과 동맹 단체를 가장 강력한 반아사드 시리아 단체로 만드는 것을 돕고, 이슬람 국가(ISIS)의 부상을 가져온 것은 이런 군비 조달이었다.

2012년 말 즈음, 그해 초 시리아에 유입되기 시작한 상당량의 무기로 인해 알카에다의 시리아 점유가 앞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이 미국 관리가 보기에 자명해졌다. 2012년 10월 미국 당국자들이 뉴욕 타임스에 처음으로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내용을 보면 전년도 미국의 병참 지원과 함께 시리아의 반군 무장 단체에 이송된 무기 대부분이 "이슬람 강경파 지하디스트"에 넘어갔다. 이 말은 자명하게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를 의미한다.

사우디, 터키, 카타르 사람들은 유입된 해당 무기를 정부 목표물 공격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군대에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알 누스라 전선과 동맹 단체가 유입 무기의 주요 수령자가 되었다. 그리고 터키 국경 너머로 쏟아져 들어간 외국인 지하디스트 수천 명의 지원을 받던 알 누스라 전선(Al Nusra Front)는 2012년 여름 무렵 이미 "자유 시리아군" 여단과 공조해 대 시리아 정부 공격을 주도하고 있었다.

2012년 11월과 12월 알 누스라 전선은, 찰스 리스터가 그의 저서 "시리안 지하드"에서 기록한 대로, 자칭 "자유 시리아군"이라는 사람들과 여러 전선에서 공식적인 "공동작전실"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권이 선호한 이에 적합한 사령관은 압둘 자바바 알 오카이디 대령이 있다. 그는 전직 시리아 군부 장교로 소위 알레포 혁명군사위원회의 수장이었다. 시리아에서 퇴거한 후에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한 로버트 포드(Robert Ford) 대사는 2013년 5월 오카이드를 공개적으로 방문하여 자유 시리아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오카이드와 그의 부대는 알레포 연합의 손아래 파트너였다. 알레포 연합 중 알 누스라가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반군 집단이었다. 그런 현실은 "이슬람 국가"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하는 비디오 장면이나, 2013년 9월 시리아 정부의 메나그 공군 기지 점령을 기념하는 알레포 지역의 지하디스트 사령관과 합류하는 모습에 분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2013년 초 무렵 기실 어떤 군대와도 합류한 적이 없던 군사 조직인 "자유 시리아군"은 시리아 분쟁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잃었다. 새로운 반(反) 아사드 무장 단체는 대표적인 분쟁 전문가가 관측한 바론 자신을 스스로 식별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래서 터키로부터 무기가 여러 전장에 도착했을 때 모든 비 지하드 단체는 유입 무기를 알 누스라 전선과 그들과 친한 반군 동맹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을 이해한 상태였다. 시리아 북부 한 도시를 다룬 2013년 초 맥클라치 신문 기사는 "자유 시리아군"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알 누스라와 그들 여단 간의 군사 합의체가 어떻게 무기 분배를 관장했는지 보여준다. 그들 부대 중 하나인 승리 여단(Victory Brigade)은 알카에다의 가장 중요한 군사 동맹인 아흐라르 알-샴(Ahrar al Sham)과 함께 "공동작전실"에 참여하며 몇 주 전 전략 소도시에 대한 성공적인 공격을 치렀다. 방문 기자는 승리 여단과 아흐라르 알-샴이 러시아산 RPG27 어깨 거치 로켓 추진 대전차 유탄과 RG6 유탄 발사기를 포함하는 새롭고 정교한 무기를 과시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승전 여단이 아흐라르 알-샴과 새로운 무기를 공유했는지 질문을 받자, 아흐라르 알-샴 대변인은 대답했다. "물론 그들은 우리와 무기를 공유한다. 우리는 함께 싸운다."

터키와 카타르는 의식적으로 알카에다와 최측근 동맹인 아흐라르 알-샴을 무기 체계의 수령자로 선택했다. 2013년 말과 2014년 초에는 터키 국경 바로 남쪽에 있는 하타이 주를 향해 무기를 싣고 가던 트럭 여러 대를 터키 경찰이 차단했다. 나중에 터키 경찰의 법정 증언에 의하면 해당 트럭에는 터키 정보 기관원이 탑승해 있었다. 하타이주는 아흐라르 알-샴이 장악했다. 실제로 터키는 아흐라르 알-샴을 주요 시리아 고객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고 아틀란틱 카운슬의 중동 라피크하리리센터 수석 연구원인 페일살 이타니는 말한다.

리비아 극단주의자 집단에 무기를 수송하는 일에 관여한 카타르 정보 당국자는 터키에서 시리아로 유입되는 무기 흐름을 감독한 핵심 인물이었다. 지난 수십 년 간 터키 시리아 국경 근처의 외부 무기 공급업자들 사이 논의에 익숙한 한 아랍 정보 기관원은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David Ignatius)에게 말하길, 참가자 중 한 명이 외부 이슬람 세력이 지하디스트리스트의 덩치를 키워주고 있지만, 비(非) 이슬람 단체는 그 존재가 미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하자, 카타르 작전 책임자는 "도움만 된다면 알카에다에 무기를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카타르 사람들은 중동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알 누스라 전선과 아흐라르 알-샴 모두에 무기를 몰아 주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A) 참모들은 미국이 시리아와 리비아 거점 극단주의자들을 무장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을 카타르에 표시하기 위해 카타르 알-우데이드(Al-Udeid) 미국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중대를 철수하자고 2013년에 제안했다. 그러나 미 국방성은 카타르 기지 접근권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NSA의 가벼운 압력을 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허쉬 기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2013년 5월 백악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리셉 타입 에드로안 정부가 지하디스트를 지원하는 것을 놓고 터키 총리와 정면으로 붙었다. 오바마는 "우리는 당신이 시리아에서 급진주의자들과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안다"고 말했다고 허쉬 기자는 전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중반에 한시적으로만 터키와 알 누스라(Al Nusra)의 상호 협력 문제를 다뤘다. 프랜시스 리치아돈(Francis Ricciardone) 미 대사는 앙카라를 떠난 직후 터키는 "솔직히 말해서 상당 기간에 걸쳐 알 누스라(Al Nusra)를 포함해 (시리아 반군) 단체와 협력해 왔다."고 런던 소재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 밝혔다. 그는 2011년부터 2014년 중반까지 터키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터키의 최대 우방인 미국은 시리아 거점 테러리스트를 무장한 터키를 공개적으로 견책하게 된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2014년 10월 터키의 역할에 대해 비판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사로 나선 바이든은 즉석해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동맹국이다"고 불평했다. 바이든은 우리 동맹국이 무기를 공급한 세력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알 누스라와 알카에다, 지하디스트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의도적으로 지하드 운동을 도왔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당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신속히 사과했다. 그러나 포드 대사는 BBC 방송에 출연해 "바이든의 발언 취지는 동맹국이 극단주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6월에 오바마 대통령은 반란군 여단에 대한 직접적인 미국의 살상 무기 군사 원조를 처음으로 승인했다. 2014년 봄까지 사우디로 옮겨진 1만 5천 기의 미국산 BGM-71E 대전차 미사일이 선별된 반(反) 아사드 단체의 수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CIA는 무기를 전달 받는 단체는 알 누스라 전선과 반군 연맹과는 협력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부과했다.

그 조건에 비추어 미국 정부가 알 누스라 전선과는 분리 독립을 유지하기에 충분히 강한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CIA 검증 명단에 오른 반군 단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무장 단체로 알카에다 계열 단체의 강제 흡수에 매우 취약했다. 2014년 11월 알 누스라 전선은 CIA 지원 단체 중 가장 강력한 2대 무장 단체인 하라카 하즘(Harakat Hazm)과 시리아혁명전선을 연일 공격했고, 토우 대전차 미사일과 GRAD 로켓를 포함한 중무기를 탈취했다.

2015년 3월 초 하라카 하즘 알레포 지부는 자진해서 해체되었고, 알 누스라 전선은 거기서 확보한 토우 미사일과 기타 장비를 사진에 담아 자랑했다. 2016년 3월 알 누스라 전선은 이들리브 지역의 13사단 본부를 공격해 모든 토우 미사일을 탈취했다. 그달 이후 알 누스라 전선는 포획한 토우 미사일을 사용하는 그들 병력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공개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 누스라 전선이 CIA의 유익한 선물을 획득한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알 누스라 전선은 2014~15년 겨울 가까운 연맹인 아흐라르 알-샴과 함께 이들리브 지방의 완전한 점령을 위한 군사 캠페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와의 거리 두기 가면을 벗어던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알카에다 지부와 연맹 단체로 구성된 '정복의 군대'(Army of Conquest)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군대 창설을 위해 알 누스라와 협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이 통합 캠페인을 위해 더 많은 무기를 제공했으며 터키는 무기 이동의 편의를 도왔다. 3월 28일 반군 통합 캠페인이 출범한 지 4일 만에 "정복의 군대"는 이들리브시를 성공적으로 장악하였다.

CIA 원조로 선진 무기를 확보했던 비(非) 지하드 무장 단체는 이들리브시에 대한 초기 공격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리브를 점령한 이후 시리아 소재 미군 주도의 공동작전실은 시리아의 잔여 지방 통제의 통합을 위한 반군 통합 캠페인에 지금 합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이들리브 소재 CIA 지원 무장 단체에 보냈다. CIA 지원 단체인 지하디스트 및 다른 무장 단체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인 연구가 리스터에 따르면 정의의 기사 여단과 13사단은 미 CIA의 제지 없이 알 누스라 전선과 함께 이들리브 통합 캠페인에 합류했다.

이들리브 공세가 시작됨에 따라 CIA 지원 단체는 토우 미사일을 더 많이 확보해 나갔으며 이제는 토우 미사일을 사용하여 시리아군 탱크에 매우 효과적으로 대항하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정책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단체와 알 누스라 전선 사이의 연맹을 지지하는 시리아 전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

이들리브 신 연맹은 알레포로 이어졌는데 그곳에서 누스라 전선과 가까운 지하디스트 단체는 CIA 지원을 받는 알레포 지역 9개 무장 단체와 파타 할랍("알레포 정복")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령부를 구성했다. CIA 지원 단체들이 알 누스라 전선과 협력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알카에다의 지부가 새로운 사령부(파타 할랍) 참여 명단에 공식적으로 올라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령부에 대한 보도가 분명히 암시한 것처럼, 이 캠페인은 CIA가 자기 고객에게 계속 무기를 공여하는 방식의 하나 일 뿐이다. 사실상 알카에다와의 동맹이지만, 상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의 수니파 동맹국이 알 누스라 전선과 연맹 단체에 무기를 공여할 수 있도록 돕고, 정교한 무기를 시리아 전쟁터에 쏟아부어 필연적으로 알 누스라의 수중에 떨어지게 하거나 무장 단체 전반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해 주는 등 시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알카에다의 권력을 확장해준 주된 책임이 미국의 정책에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국방부는 미국이 천명한 테러 대테러 작전에 대한 이 같은 배신을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털시 개버드의 법안에 따라 강제하든, 의회나 백악관이 그런 노골적인 배신에 맞서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가 패망했더라도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의 권력 통합을 계속 공모할 것이다.

가레스 포터(Gareth Porter )는 독립적인 기자이자 2012 마사 겔혼(Gellhorn) 저널리즘 상 수상자이다. 그는 "가공의 위기: 이란 핵 공포 속 숨겨진 이야기"(저스트 월드 북, 2014년 작)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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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How America Armed Terrorists in Syria Gareth Porter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미국이 시리아 전략을 망쳐버린 진짜 배경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사드 정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미국 국가 안보 엘리트와 미디어로부터 맹공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진짜 전략적 실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또다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시리아 반군을 창설하고, 무장하게 시키고 시리아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수니파 동맹국들의 야욕에 동조하기로 한 애초의 결정이다.

시리아 정책에 대한 내부 논의에 정통한 전직 오바마 행정부의 한 관리가 익명을 조건으로 필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자면 운명적 결정이 어떻게, 어떤 이유로 정해졌는지 새로운 시각을 조명해준다.

이 전직 관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 세력의 무장 지원을 위한 첫 번째 조치를 취했을 때 이란이나 러시아가 외부 무장 세력에 대한 대응으로 시리아 정권을 대신하여 직접 개입할 위험이 있다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바마의 참모들은 그럴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 정책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2011년 봄과 여름에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저항이 발생한 이후에 시작된다.

2011년 8월, 미 국가 안보 관리들은 오바마에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사임 요구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오바마는 아사드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오바마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할 의향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반군 무장 정책이 굳어진 정책이 아니라 단순한 제안으로 판단했다."고 전 관리는 말했다.

그러나 그 직후 미 행정부의 정책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아사드 전복을 돕겠다는 공약을 하라고 미국을 압박하는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에 대한 대처 방법이 그것이었다.

2011년 9월 사우디와 터키는 미국이 시리아 반군 세력에 무기를 제공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미국이 대공 미사일과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하기를 원했다"고 전 관리는 회고했다.

터키는 심지어 아사드 전복을 위해 시리아에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미국과 나토군이 터키를 보호하기 위해 "비행 금지 구역"을 만들기로 합의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시리아 반군에게 미국 무기를 제공하기를 거부했고, 아울러 아사드의 적인 수니파 집단에 중무기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군소 무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동조할 생각이 없었다."고 전직 관리는 밝혔다.

데이빗 페트리우스(David Petraeus)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수니파 동맹국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리비아 정부가 벵가지에 보관 중인 군소 무기를 터키로 옮기는 계획을 고안했고, 오바마는 이를 승인했다.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의 2014년 기사를 공인하듯 이 전직 관리는 "최고의 비밀 사안이었지만, 중동 관계자는 입소문을 통해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 두 정책 결정의 조합은 반신반의 하던 오바마로 하여금 아사드 정권의 무장 전복을 약속하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문관들은 아사드의 몰락을 불가피하다고 믿었다고 전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과 전 국방부 당국자 데릭 콜렛(Derek Chollet) 회고가 맞다고 전 행정부 관리는 확인하였다.

일부 고문관은 아사드가 콜레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간교와 강기"가 없다고 믿었다.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과소평가


더 중요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9월 중요한 ​​시리아 정책 결정을 내렸을 때 이란 사람들이 참전을 각오할 만큼 아사드 정권 유지가 중요한 국가 안보상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그 누구도 오바마에게 경고하지 않았다고 전직 관리는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문관들은 대신에 이란이나 러시아가 아사드 권력 유지를 위해 상징적인 원조 그 이상을 제공할리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끝없는 종파 간 유혈 전쟁의 위험이 없다고 봤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모두 아사드 대통령의 위기 대응에 대한 불만을 성토했으며,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는 아사드가 더 유연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그렇다면 아사드를 구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직 관리는 회고했다.

그러나 실상 이란은 시리아의 역할이 헤즈볼라의 물자 보충을 위해선 결정적이라고 여겼다. 헤즈볼라가 보유한 대용량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이란의 억지력에 필수 요소였다. "시리아는 이란과 헤즈볼라의 총체적인 안보 그 자체였다."고 전 관리는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고문관(보좌관)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국제 연합이 꾀하는 아사드 전복을 예방하는 것이 이란의 국가 안보상 최대 이해관계라는 점에 대해 "일말의 이해"도 없었다.

전쟁이 전개되면서 간과했던 주요한 실책이 확연해졌다. 2012년 7월 레바논 국경 인근 쿠사이르 시가 자유 시리아군에 의해 점령된 후, 시리아 남부의 반군 세력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온 군사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후 몇 달 안으로 알 누수라 전선 병력이 시리아 전쟁의 바로 그 전선에 깊이 개입했음이 확실해졌다.

헤즈볼라의 반격


2013년 5월, 베카 계곡 소재 헤즈볼라 병력은 쿠사이르 시 수복을 위해 아사드 정권의 반격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는 이란 당국의 요구에 따른 것임이 명백하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개입은 그때까지 전쟁에서 최대 패배를 반군 세력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오바마의 국가 안보팀은 수니파 연합의 체제 교체(레짐 체인지) 전략에 협조하겠다는 애초 결정의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 결정의 판돈을 두배로 올렸다.

존 케리(John Kerry) 미 국무부장관은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여 군사력을 이용하라는 강력한 압력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가했다.

이에 따라 2013년 6월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으로 시리아 반군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이 결국 나왔다. 미국의 공약이 한층 깊어지다가 2013년 8월 다마스쿠스 교외 지역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 직후인 9월 미국은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심지어 알 카에다의 누스라 전선(Nusra Front)이 공공연히 지배하고 있는 무장 반군에게 대전차 무기를 제공하겠다는 수니파 국가들의 제안에 동의하기까지 했다.

개입 확대


그 일로 누스라 전선이 이끄는 사령부는 이들리브 지방을 정복했고, 그 후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국가 안보팀이 분명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고문관들은 극히 위험한 전쟁 상황에 휘말리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들의 판단 착오로 인해 시리아 문제를 망쳤다.

그러나 오바마와 그의 고문관들은 기껏해야 체제 교체(레짐 체인지) 정책에 대해 반신반의한 게 전부였고 미국의 직접 개입도 제한을 두었지만, 시리아 체제 교체(레짐 체인지) 정책이 내포한 위험을 않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선 더 심도 있는 설명이 존재한다.

미 행정부는 수니파 동맹국들과의 상호 목적이 상치(相馳)되는 것을 기피했다고 전 관리는 회고했는데, 그 까닭은 해당 세 국가와의 동맹 관계에 직접적인 미국의 군사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바레인 거점 미 해군 기지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터키는 인시를릭(Incirlik) 공군 기지를 통제했으며, 카타르는 역내 미군 작전의 중심이 된 육상 기지와 공군 기지를 통제했다.

따라서 시리아 국민에 미친 후과로 보자면 재난과도 같은 실수였지만, 영원한 전쟁 국가가 돼버린 미국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강력한 국가 안보 기관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들의 제일 관심사는 기존의 군사 및 정보 체계와 군사 관계가 위태롭게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가져온 역효과를 상기해 볼 때 아사드 반군 무장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있음에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가레스 포터(Gareth Porter )는 독립적인 탐사 기자이자 2012 마사 겔혼(Gellhorn) 저널리즘 상을 받았다. 그는 새로 발간된 "가공의 위기: 이란 핵 공포 속 숨겨진 이야기"의 저자이다.

이 기사에 포함된 견해는 저자에게 귀속하며 미들이스트아이(Middle East Eye)의 편집 방침을 반드시 반영하지는 않는다.

사진: 2016년 9월 4일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담 기자 회견에서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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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Behind the real US strategic blunder in Syria Gareth Porter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보도 매체가 언급하지 않는 시리아 전쟁에 관한 10가지 사실

(안티미디어) ― 언론기업은 시리아에서 진행 중인 역내 분쟁의 책임을 오롯이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만 전가하는 보도를 정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언론기업은 이러한 서술과 상반되는 사건 보도를 간헐적이되 하긴 한다. 다만 보도 비중이 작긴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모두 합치면 시리아 분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다.
10: 바샤르 알아사드는 버락 오바마보다 지지율이 높다.

아사드 정권이 합법적인 정권이 아니니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오바마는 주장하고 있지만, 기실 2011년 분쟁이 불거진 이래로 아사드는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왔다. 아사드 대통령이 어떤 (선거법)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국제 관측통이 밝힌 2014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그가 비록 심각한 인권 유린 혐의를 받고 있지만, 시리아 국민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면 오바마는 자신이 승리한 2012년 선거에서 투표율이 겨우 53.6%밖에 되지 않았는데, 겨우 1억 2,910만 유권자만 표를 행사했다. 이는 약 1억 8,980만 명의 미국민이 오바마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의 지지율은 현재 50%대에 머무르고 있다.

9: "온건"한 반대파가 실종됐다.

시리아에는 과거라면 모르겠는데 더는 "온건"한 반대파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소위 자유 시리아군(FSA)은 극단주의자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미국은 이를 파악하고도 시리아 반대 세력을 계속 지원해왔다. 뉴욕 타임스는 시리아에 보낸 무기 대부분이 지하디스트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2012년 보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기밀 분류된 DIA 보고서를 보면 이슬람 국가(ISIS)의 부상을 다음과 같이 예고한다:

"상황이 잘 안 풀리면 시리아 동부에 공식 혹은 비공식 살라피스트 공국이 수립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형국은 시리아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반대파를 지원하는 세력이 원하던 그대로이다.

또한 자유 시리아군(FSA)의 지휘관은 자신의 전투원들이 정기적으로 알 누스라(시리아의 알 카에다)와의 합동 작전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샤리아 법에 따른 시리아 통치를 보고 싶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온건파란 의미 역시 "알카이다 계열 광신도"가 될 수 있음이 자명하다.

8: 아사드는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전혀 없다.

2013년 초에 처음으로 자행된 대표적인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조사에서 유엔은 제시된 증거로 볼 때 해당 공격이 시리아 반대 세력이 자행한 공격일 공산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서방에서는 당시 잔악 행위를 아사드의 소행으로 낙인찍었다. 2013년 8월 공격에 대한 UN의 후속 조사에서는 아사드의 세력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역대 퓰리처상 수상자인 언론인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는 2013년 12월 당시 상황의 처리 방식상에 여러 결함을 부각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공격 직전 수개월 동안 미국 정보기관은 일련의 높은 수준으로 기밀 분류된 보고서를 생산했다.… (이 보고서는) 알 카에다와 계열의 지하디 단체인 알 누수라 전선(Nusra Front)이 사린 제조기술을 마스터했으며 사린을 대량 생산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언급하고 있다.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했을 때 알 누수라는 용의자였어야 했지만, 미 행정부는 아사드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했다."

7: 시리아 정권 타도는 9/11 직후 채택된 계획 일부였다.

9/11 테러 직후 웨슬리 클라크 4성 장군이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펜타곤은 5년 안에 7개 나라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채택했다. 해당 국가는 이라크,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이란이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이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 이스라엘은 2006년 레바논을 수중에 넣으려고 시도했었다. 리비아는 2011년에 파괴되었다. 서방의 개입 이전에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생활 수준이 높은 국가였다. 2015년 한 해에만 시리아의 유엔 인간개발지수 순위가 27계단 하락했다. 미국의 무인 비행기가 소말리아 상공을 날고 있고, 미군이 남부 수단에 주둔하고 있다. 수단은 잔인한 내전 이후 분단 상태이다. 2011년 이후 시리아는 치명적인 전쟁의 현장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란만 남아 있는데 밑에서 다루기로 한다.

6: 이란과 시리아는 상호 방위에 합의했다.

2005년 이후 이란과 시리아는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했다. 이란 정부는 이 합의를 완전히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군대와 1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한도, 훈련 및 조언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시리아 정권에 제공했다. 그러나 시리아 분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시리아 편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국은 이란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러시아가 최근 몇 달에 걸쳐 시리아 군사 개입에 나선 것은 양국의 협박이 공치사가 아님을 증명해 준다. 그들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그들의 믿음을 입증했다.

이란은 그간 미국 외교 정책 집단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조지 부시는 자신의 임기 중에 이란 공격에 필요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시도가 부족했기보다는 제재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역내에서 이란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을 공격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이란의 역내 영향력 확산을 저해할 수 있는 열강이 존재한다면 궁극적으로 이란의 약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5: 전임 애플 CEO는 시리아 난민의 아들이다.

애플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시리아 사람의 아들이며 1950년대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런 사실이 특히 웃긴 것은 외국인 혐오증, 이슬람 혐오증, 인종주의 및 난민에 대한 증오의 크기를 볼 때 그렇고 스티브 잡스가 이민자에게, 심지어 대통령 도전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니 웃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래 기술 개척자들이 결코 미국에 당도하지 못할 조건을 만들 것인가? 트럼프의 수사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4: 이슬람 국가(ISIS)는 시리아 분쟁이 아니라 이라크 침공의 산물이다.

이슬람 국가는 애초에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로 알려졌으며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유명세를 크게 얻었다. 잘 알려졌듯이 이라크 침공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라크에 알 카에다의 존재가 없었는데 침공 이후 생겨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3년 5월 폴 브레머(Paul Bremer)가 대 이라크 대통령 특사 역할을 맡았을 때, 그는 경찰과 군대를 해산시켰다. 브레머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고위급 군 관계자들을 포함해 40만 명에 가까운 전직 군인을 해고했다. 해고된 장군은 현재 ISIS 내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대량 해고가 없었더라면 ISIS는 존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슬람 국가(ISIS)는 전부터 미국 안보 기관에 의해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라고 알려졌지만, 이들 전투원은 리비아시리아에서 서구의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아젠다의 주축이 되었다. 이라크인과 시리아인이 합세한 알 카에다 계열 단체는 2014년 시리아 국경이 접한 곳에서 통합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본격적인 테러 집단을 마주하게 되었다.

3: 터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원했지만, 아사드가 거절했다.

2009년 카타르는 사우디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시리아와 터키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제안했었다. 아사드 대통령은 카타르의 제안을 거부하고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경유지에서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완전히 배제하는 합의안을 이란과 이라크와 체결했다. 그 후로 터키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타도를 추구하는 반대 세력의 확고한 후원자였다. 전체적으로 그들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무기를 빌려주고, 광신적인 이데올로기 확산을 장려하고, 국경 너머로 전투원을 밀입국시키는 것을 도왔다.

이란-이라크 파이프라인은 역내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다른 주요 OPEC 산유국이며 라이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을 약화한다. 미국의 동맹국을 경유하지 않고 유럽으로 가스를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할 때, 이란은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미국 달러를 완전히 배제하는 협상에 합의할 수 있다.

2: 유출된 전화 통화 내용을 보면 터키는 이슬람 국가 전투원에게 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시리아 정권과 싸우는 강경파 이슬람 주의자들에 대한 터키의 지원은 광범위하다. 기실 지하디스트는 터키 국경을 "지하드의 관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6년 5월 터키는 도가 지나쳐 ISIS 전투원에게 값 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경이라는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터키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잠시 그 의미를 새겨보자.

1: 시리아 분쟁에 대한 서양 언론의 주요 정보원은 영국 코번트리(Copventry)에 있는 티셔츠 가게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당신이 뉴스를 읽는다면, 당신은 주류 매체가 인용하는 시리아인인권전망대(SOHR)라는 웅대한 이름의 단체를 당연히 들어봤을 것이다. 소위 "전망대"는 시리아 분쟁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잉글랜드 코번트리(Coventry)에 있는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운영되지만, 아직도 가장 존경받는 서구 보도 매체(예로 BBC, 로이터, 가디언인터네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그의 자격 증명서로는 동내 길가에 티셔츠 가게 주인이라는 것과 시리아 현직 대통령을 반대하는 악명 높은 반체제 인사라는 점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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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실린 많은 정보가 주류 보도 매체에서 나왔음에도 기사 유통망 종사자들은 이 모든 줄거리를 한대 모아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대중에게 전달하길 거부한다.

아사드는 잔인할 수도 있으며, 파다한 인권 유린 의혹에 대해 재판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다른 정황이 비 사실이 되거나 무의미하게 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중동 전쟁의 길로 말려 들어가기 전에, 더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과 테러 공격 확대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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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본: 10 Facts the Media Won’t Tell You About the War in Syria The Ant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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