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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4일 금요일

의도하지 않은 결과: 트럼프가 중동을 중국과 러시아에 넘겼을까?


워싱턴은 최근 몇 달간 이라크와 중동 전역에서 벌인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 미국에서 떨어져 나가 중국으로, 일정 부분 러시아로 전략적 방향 전환을 (역내 국가에) 강요했다.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사건이 흘러간다면 지역 정치의 완전 초토화라는 워싱턴의 시책에는 못 미치더라도 예고된 이란-이라크-시리아 가스관을 저지하기 위해서 워싱턴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불안정을 지원했던 주된 명분이 이제 유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자연이 진공을 혐오한다면 지정학도 매한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몇 달 전 시리아와 중동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발표했을 때 러시아와 특히 중국은 조용히 이 지역의 주요 국가들과의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석유 개발 및 기타 인프라 사업에 대한 중국의 개입은 규모는 컸지만,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영토의 3분의 1을 점령함으로써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2019년 9월 워싱턴은 이라크 정부에 이슬람국가(IS)의 전쟁으로 파괴된 핵심 인프라 사업을 완성하는 대가로 이라크 석유 수입의 50%를 내놓으라는 점잖게 표현하자면 터무니없는 요구했다. (이슬람국가 전쟁은 미국뿐만 아니라 앙카라(터키 정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도 은밀하게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이라크 중국행


이라크 거절하다. 대신 아딜 압둘마흐디(Adil Abdul-Mahdi, عادل عبد المهدي المنتفكي) 이라크 총리는 55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가서 중국의 이라크 재건 참여를 논의했다. 그의 중국 방문을 워싱턴이 간과했을지가 없었다. 그 이전에도 이라크와 중국의 관계는 비중이 켰다. 중국은 이라크의 1위 교역국이었고 이라크는 사우디와 러시아에 이어 중국의 3위 석유 공급국이었다. 2019년 4월 바그다드에서 이준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중국은 이라크 재건에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압둘마흐디에게 베이징 방문은 큰 성공이었다; 그는 이에 대해 양국 관계의 '양자 비약'이라고 칭했다. 이번 방문에서 광범한 8개 양해각서와 기본신용협정(수출입금융 지원)을 체결했고, 중국의 일대일로 시책에 이라크가 합류할 계획도 발표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라크 유전 개발뿐만 아니라 이라크의 인프라 재건에도 중국이 참여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양국으로선 중국인들이 즐겨 말하듯 명백한 "상생"이었다.

압둘마흐디 총리의 베이징 회담 이후 불과 며칠 만에 이라크 정부와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고 반대파는 압둘마흐디의 사임을 외쳤다. 로이터통신은 2014년 2월 키예프의 마이단이나 2011년 카이로에서 미 중앙정보부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발 탄압의 인상을 풍기려고 시위대에 사격해서 폭력 시위를 정밀하게 부채질하려는 저격수를 목격했다.

현재 중국의 회담과 압둘-마흐디 정부에 대한 갑자기 불거진 2019년 10월 시위 시기가 연관되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 연결고리다. 페데리코 피에라치니의 보도(번역)에 따르면 "압둘마흐디는 의회 연설에서 미국인들이 이라크를 어떻게 망쳤는지 성토하고, 아울러 (압둘마흐디 총리가 거부한 바 있는) 원유 판매고의 50%를 미국에 약속하지 않는다면 이라크의 기반시설 및 전력망 사업을 완료하지 않겠다고 미국이 거부한 것에 대해 언성을 높여 성토했다." 그는 이어 압둘마흐디 총리의 아랍어 발언을 번역해 인용했다: "내가 중국을 방문해 (미국) 대신 공사를 맡도록 그들과 중요한 협정을 체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귀국하자마자 트럼프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과의) 합의를 거부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거절하자 그는 나의 총리직을 끝장낼만한 거대한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나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정말로 현실화하였고 트럼프는 다시 전화를 걸어 만약 내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고층 건물 위에 해병대 저격수들이 시위대와 보안 요원을 가리지 않고 겨냥하게 될 거라고 위협했습니다. 나를 압박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재차 거절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오늘 이 시점까지 미국인들은 우리가 중국인들과의 거래를 해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압둘-마흐디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중재하는 임무를 띠고 바그다드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카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قاسم سلیمانی) 소장에 대한 미국의 암살은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거론되는 와중에 역내 전체를 정치적 혼돈에 빠뜨렸다. 이란의 부드러운 '보복' 미사일 발사가 있었고, 아울러 우크라이나 상업 항공기를 사고로 격추했다고 놀랍게도 이란이 시인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와 로하니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비밀회담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많은 이들의 머리를 긁적거리게 한다.

조용한 '실크' 잠입


한 가지는 분명하다. 베이징은 앞날을 내다보며, 러시아와 함께 2003년 침략 전쟁 이후 워싱턴이 유지해온 이라크 정치 지배를 대체하려고 한다. 오일프라이스닷컴(OilPrice.com)은 압둘-마흐디의 베이징 회담이 성공한 직후인 10월부터 이라크가 양국 간 합의된 20년간의 석유-인프라 협정의 일환으로 하루에 10만 배럴의 원유를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석유부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석유와 가스 투자를 시작으로 이라크 노동력을 비롯해 중국 기업 및 인력을 활용한 공장, 철도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이라크에서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건설한 공장들은 중국의 유사한 공장들과 통합하기 위해 동일한 조립 라인과 구조를 사용할 것이다.

이란의 에스하그 자항기리(Eshaq Jahangiri (Kouhshahi), اسحاق جهانگیری کوهشاهی) 부통령은 테헤란을 투르크메니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의 북동부 도시 마슈하드까지 연결하는 900km에 달하는 주요 철도 구간을 전철화하는 사업을 시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자한기리는 또 테헤란-콤-이스파한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하고 이를 타브리즈를 통해 북서쪽으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일프라이스(OilPrice.com)는 이렇게 전했다. "석유, 가스, 석유화학 등 여러 핵심 시설이 터를 잡은 곳이고, 아울러 타브리즈-앙카라 가스관의 출발점이기도 한 타브리즈는 우루무치(중국 서부 신장성의 수도)를 테헤란과 연결하고, 도중에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 메니스탄을 연결하는 2,300km의 신설 실크로드의 중심점이 될 것이다. 일단, 이 계획이 상당한 진전을 이루면 중국은 이라크와 서방으로의 수송망을 확대할 것이다."

아울러 루이 알-카테브 이라크 전력부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장기적인 전략적 파트너로써 기본 옵션이다. …우리는 일부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제한된 양의 석유 대비 100억 달러의 기축 재정 틀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나 이라크 석유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중국 자금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라크 석유를 더 많이 추출할수록 중국은 더 많은 이라크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오늘날 이라크는 가스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발전기에 공급할 가스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그 점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석유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이 카타르와 공유하고 있는 거대 페르시아만 남파르스 가스전을 출발해 이란-이라크-시리아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조용히 정지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대리전쟁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앞서 카타르가 제안했던 대체 노선을 거절하고 이란과 이라크가 함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직후인 2011년에 시리아를 상대로 시작되었다.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수십억 달러의 은밀한 자금을 알카에다와 이후 IS 등 테러 단체에 쏟아부으며 아사드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허사였다.

종잡을 수 없는 미국의 외교 정책 탓에 미국의 예전 우방들이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 이라크와 중동 전역에서 노력한 것은 중국뿐만이 아니다. 터키 에르도안과 함께 막 리비아 휴전을 중개한 러시아는 몇 주 전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제안인 S-400 트리움프 방공 시스템을 이라크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이라크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방종한 바그다드 솔레이마니 암살사건의 여파로 미국과 이란을 포함한 모든 외국군의 이라크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 가결) 표결한 마당에 이라크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이(중국과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하는 러시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사려고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와 협의하고 있다. 터키는 이미 샀다.

솔레이마니의 미국 암살 이전에는 미국이 교사(敎唆)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 사이 아랍의 봄 이래로 중동 전역에서 격화한 값비싼 전쟁을 해소하려는 무수한 막후 긴장 완화 노력이 존재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정학적 긴장 상황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점에서 어떤 정직한 파트너라는 측면에서 워싱턴의 신뢰도는 마이너스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제로다.

우크라이나 항공기 격추를 이란이 시인한 이후 뒤따른 일시적 고요함은 미국이 조용히 넘어가리라는 암시가 전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에스퍼 국방성 장관은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라는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미 대통령은 파르시에서 발생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를 방금 트위터에 올렸다. 미국이 최근 중동에서 벌인 행동에 따른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처리하는 가운데 우리는 분명히 중동에서 난처한 궁지에 빠진 상태이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원문 보기: Unintended Consequences: Did Trump Just Give the Middle East to China and Russia?

2019년 11월 6일 수요일

세계 제국주의자의 쿠르드 카드와 서구의 위선


영국과 프랑스는 쿠르드를 상대로 정복을 위한 갈라치기 정치를 동원해왔다. 이후 다수의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 행태를 시도해왔는데, 이는 쿠르드 집단이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자들의 유용한 도구였음을 방증한다.

터키군은 2019년 10월 9일 '평화의 샘 작전'의 실행에 나섰다.

동 작전은 시리아의 영유권과 유엔 헌장 제51조(1) "자위권"의 틀과 국제법에 근거한 터키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과 올리브 가지 작전과 마찬가지로, 작전의 계획과 실행 중에 표적이 되는 건 오직 테러리스트와 그들의 요새, 참호, 진지, 무기, 차량 및 장비만 해당하며, 작전 지역의 민간인/무고한 사람들과 역사, 문화, 종교 건물 및 인프라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있을 가능성이 있는 우호적이고 동맹관계인 세력들도 해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2019년 10월 7일 백악관은 이 지역에서 예상되는 터키군의 군사작전을 앞두고 미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단히 충격을 받은 전 세계의 반응을 보면 서구 국가들이 마약 테러 조직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와 쿠르드노동자당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틀림없다: 미국 사람들이 충성스러운 우방 쿠르드족을 버렸나? 그러나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터키군은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했다. 이로써 갑작이 벌집을 들쑤셔 놓은 듯 전 세계 주류 매체와 소위 대안 언론의 터키 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선전이 넘쳐났다.

터키 공화국은 시리아를 침공하고 있지 않다. 터키군은 이 지역에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와 이슬람 국가(다에시) 등 온갖 테러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충지대를 건설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터키를 침략국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침략국이 45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들을 환영하고, 심지어 거기에는 쿠르드족도 포함되어 있으며, 안전하게 터키에 머물도록 해 주겠나. 나머지 세계가 수치스럽게도 그들을 무시하고 방치하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아니올시다. 터키인들은 인종적으로 쿠르드족들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고, 터키 자국 내부나 시리아나 이라크 같은 이웃 나라에서도 청소하고 있지 않다. 터키 군대의 임무는 테러 단체와 싸우는 것이며, 그중 상당수가 쿠르드족이지만, 개중에는 용병 및 다른 민족 집단도 섞여 있다. 우리 군대와 내부의 치안 부대는 1974년부터 쿠르드노동자당의 테러에 맞서 싸워왔다. (2)

터키인과 쿠르드인은 수천 년 동안 함께 살아왔다. 터키공화국 100년 동안 12명의 대통령 중 2명은 쿠르드 출신이었고 많은 육군 장성, 고위 공직자, 관료, 정치인도 쿠르드족 출신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많은 결혼이 행해진다. 오늘날 터키 의회의 3분의 1 이상이 쿠르드족 출신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쿠르드족은 오스만 제국 내의 수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 소수 민족을 활용해 분열을 조장해 정복하는 정치를 동원했고, 그 이후로 다른 여러 국가도 똑같이 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유용한 도구였다.

2019년 9월 3일부터 쿠르드족 17명이 터키 디야르바키르에서 친 쿠르드족 인민민주당(HDP) 지역사무소 밖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대다수가 쿠르드 사회의 가난한 지역 출신으로 터키 정부와 수십 년간 전투를 벌이고 있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자기 아이들을 전투원으로 모집하거나 납치한 것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아이들이 디야르바키르에 있는 쿠르드족 인민민주당의 지역 당사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기 때문에 인민민주당을 비난한다. (3)

쿠르드노동자당은 40여 년 동안 터키를 상대로 민간인과 보안군 모두를 대상으로 한 테러 캠페인을 벌여왔다. 젊은 교사들은 고문을 당해 숨지고, 학교와 식물, 작업 기계가 불에 탔으며, 생후 6개월된 아기와 쿠르드족 출신 시민들까지 민간인이 불태워져 숨졌다. 터키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러시아 그리고 모든 유럽연합 국가들에게 몇 년 동안 40,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불행을 야기시킨 쿠르드노동자당과 인민수호부대의 테러 공격에 대해 항상 무지하다고 경고해 왔다.

쿠르드노동자당은 터키, 미국, 28개 유럽 국가 및 일본에 의해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정되어있다. 인민수호부대는 프락치 군대이며, 프랑스, 영국, 호주, 독일, 덴마크, 아르메니아 및 아프리카와 같은 많은 외국인 전투원과 비 쿠르드 세력을 포함하는 쿠르드노동자당의 시리아 지부로 받아들여진다. (4)(5)(6)(7)(8)

미국 중앙정보국이 민주동맹당(PYD)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테러 집단 쿠르드노동자당의 시리아 편제로 본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중앙정보부의 "월드 팩트북" 하위 절 시리아 하위 카테고리에 보면 시리아 거점 민주동맹당은 외국계 테러 단체의 하위 단체로 분류되어 쿠르드노동자당 산하 단체로 등재되어 있다. (9)

시리아 정부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라크와 터키의 쿠르드족 단체를 지원했다. 1970년대에 시리아는 이라크 쿠르드족, 특히 쿠르디스탄애국동맹(PUK) 회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시리아 정부는 시리아가 장악하고 있는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전투원에게 무기와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터키에 대항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지원했다. 1998년 터키의 강력한 압력을 받은 시리아는 쿠르드노동자당에 대한 지원을 끝내고 다마스쿠스에 있는 쿠르드노동자당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을 그의 집에서 추방하고 시리아가 통제하는 레바논 소재 쿠르드노동자당 캠프를 폐쇄했다.

2011년부터 휴먼라이츠워치, 국제앰네스티 등 주요 인권단체는 시리아 북부 및 북서부에서 테러 단체 민주동맹당/쿠르드노동자당에 의한 수백 건의 인권 침해 및 국제법 위반 사례를 문서화하고 있다(11)(12)(13). 국제 단체들은 인민수호부대-민주동맹당/쿠르드노동자당의 사법권 침해, 마약 밀매, 민주동맹당/쿠르드노동자당의 경찰 및 무장 단체에서 18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소년병으로 이용, 죄수 학대 및 미해결 피랍 및 살인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자의적인 체포와 쿠르드족, 아랍인, 터키인, 아시리아인 등 다른 집단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수백 명의 사람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아프린과 아인 알-아랍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되는 등 시리아에서 발생한 다른 많은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시리아인권네트워크가 발표한 또 다른 보고서에는 2017년 쿠르드노동자당/민주동맹당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에서 58명의 어린이와 54명의 여성을 포함해 316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인권네트워크는 또한 2017년 민주동맹당/쿠르드노동자당 테러 집단이 어린이 47명과 여성 46명을 포함하여 647명을 가뒀으며, 반면에 다에시(이슬람 국가)는 539명을 가뒀다고 밝혔다.

수십만 명의 시리아 쿠르드족도 터키나 이라크 북부에 피난처를 찾아 집을 버려야 했다. 일부는 시리아의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떠났고 일부는 민주동맹당-인민수호부대/쿠르드노동자당의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떠났다.

시리아 북부 지역에 사는 현지 민간인들은 강제 퇴거와 가택 철거 등 민주동맹당-인민수호부대/쿠르드노동자당 테러범들에 의해 심각히 유린당했었으며, 일부 사례에서는 북부 시리아 민주연맹의 관할 지역에 있는 아랍인, 시리아 투르크멘, 쿠르드족 민간인들의 마을 전체에 이 같은 조치가 자행되었다.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는 강제적인 퇴거와 철거, 그리고 "전쟁 범죄"를 구성하는 민간 재산의 몰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 6월 유엔 인권 이사회는 시리아 투르크멘 사람들이 하사카와 탈 아비아드의 남쪽 마을에 있는 그들 집에서 퇴거당한 사실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14)

시리아 북부 투르코만 공동체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군에 의한 희생된 사건을 러시아가 확인해 준 일은 중요한 이정표였다. (15)

시리아 북동부에 있던 아랍 및 쿠르크멘 사람들을 인종 청소하듯 먼저 학살한 것이 다름 아닌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시리아 북동부를 점령했고 원유와 가스와 같은 자원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터키군 덕분에 해당 지역은 아랍인, 투르크멘, 쿠르드족과 다른 종족 등 정당한 소유자들에게 반환되고 있다.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 소속 쿠르드족은 다른 부족들과 거주민들을 몰아내는 지독한 방식으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침해했으며, 이는 그 시작부터 끔찍한 인권 침해였다. 또한,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는 다른 소수 민족을 희생시키면서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 테러리스트 쿠르드족(민간인 말고)과 이스라엘인들은 협력 관계이다. (16)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는 영웅도 아니고 미디어에서 묘사하듯 용맹한 전사도 아니다. 아직도 이슬람국가 혹은 다에시를 소탕하지 못했나? 여전히 7만 명 이상의 이슬람국가-다에시 요원들이 시리아 북부와 이라크 북부 전역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마약 테러 조직이며 3대 마약 카르텔 중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다면, 어떻게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민주동맹당의 인신매매와 마약 밀매 테러조직에 침투한 온갖 서방 비밀조직의 지원을 받는 것일까?

쿠르드노동자당은 세계 3대 마약 테러 조직이다.

쿠르드노동자당의 대표적인 수입원은 마약 거래(헤로인과 대마초)와 담배, 인신매매 등이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의 추산에 따르면 쿠르드노동자당은 연간 약 7,500만 달러를 마약 거래로 벌어들인다고 한다. 쿠르드노동자당은 그들의 활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마초 재배, 유럽 행 마약 선적 및 유럽 국가에서 마약 유통 등 마약 밀매의 모든 단계에 관여하고 있다. 여기에다 강제 세금 징수와 무역업자의 "보호"(마피아들의 방식과 동일), 유럽의 쿠르드 디아스포라로부터의 기부와 원조 등이 그들의 자금원으로 기여하고 있다. (17)

쿠르드 테러 집단은 마약을 수송하거나 밀반입하는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서비스 제공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창출한다. 그것과 관련하여 쿠르드노동자당은 마약 밀매 사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인터폴은 유럽 내 불법 마약 시장의 최대 80%가 쿠르드노동자당이 통제하는 밀매조직에 의해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 삼각지대는 마약 거래의 세계적인 온상이다. 쿠르드노동자당은 아프가니스탄-이란에서 터키, 유럽까지 수년 동안 마약 밀매 루트를 통제하고 있다. 쿠르드노동자당과 시리아의 민주동맹당/쿠르드노동자당과 같은 분파는 코카서스, 아프리카, 발칸 등 주요 국제 마약 루트를 이용해 유럽 마약 시장에 진출하는 웹 기반 범죄 네트워크다. 동 단체는 유럽에서의 마약 밀매 활동만으로 연간 최대 15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터키는 1980년대부터 이 단체의 테러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쿠르드노동자당에 대한 과단성 있는 마약 퇴치 작전을 펼쳐 왔다. (19)(20)(21). 미 국무부의 연례 테러 보고서와 나토 정보 부서가 발표한 특별 보고서에서도 이 주제를 광범위하게 문서화했다.

최근 나토 테러위협정보단(TTIU) 보고서는 쿠르드노동자당이 밀수와 탈세 등 불법적인 경제활동과 마약과 위조지폐 밀거래, 불법 외환거래 등 조직범죄에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보고서는 쿠르드노동자당이 자금 징수할 때 강제력을 동원했다고 명시했다. (22)

2015년 유로폴은 벨기에 소재 쿠르드노동자당 훈련캠프의 존재는 물론 2017년 스위스 알프스 기슭에 있는 쿠르드노동자당 훈련캠프의 존재를 인정했다. (23)

마약 밀매와 테러는 분리할 수 없는 불법 행위다. 조직범죄와 테러조직의 사업은 작동 방식이 이런 식이다. 한쪽에선 마약이 나가고 다른 쪽에선 무기가 도착한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4년 이래로 인민수호부대/쿠르드노동자당은 갈수록 세력이 커지면서 현재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으로부터 받은 지원에 힘입어 시리아의 약 1/3을 통제하고 있다. 2018년 초부터 민주동맹당/인민수호부대는 터키군의 군사 작전의 결과로 아프린 지역을 잃었다. 이제 그들은 유프라테스 서쪽의 만비지, 타브카, 탈리파트 지역을 통제할 뿐이다. 쿠르드노동자당/민주동맹당-인민수호부대는 이 지역의 마약 소비를 증가시킨 책임자이며, 이러한 양상은 현지 생산을 통해 촉진되었다. 마약은 여러 곳에서 쉽게 팔린다. 마약 가격은 담배 가격보다 훨씬 싸다. 대마초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 애용되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약물은 캐피톨(Capitol)이다. 아프린 작전 당시 터키군(TAF)은 수백만 개의 캡티톨 알약을 압수하고 여러 지역에 있는 생산시설도 압수했다. (24)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이슬람국가의 석유 밀매 사업에 대한 자국민들의 인식을 크게 높였다. 그때마다 그들은 터키가 (이슬람국가와) 공모했다고 비난했다. 슬프게도 그들이 아인 알 아랍(코바니)을 떠날 당시 쿠르드노동자당/민주동맹당이 남긴 수백 킬로그램과 수백 헥타르의 대마초 밭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재 터키군 작전은 10월 17일 터키-미국 간의 최근 합의에 따라 120시간 동안 중단된 상태이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오는 10월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최근의 사태 추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만약 쿠르드노동자당/인민수호부대-민주동맹당의 마약 테러 조직이 그때까지 영토를 떠나지 않는다면, 터키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작전을 계속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역주: (1)~(24) 번호는 관련 기사가 있다는 표시로 아래 원문 링크에 들어가면 하단에 해당 기사의 링크 리스트가 나열되어 있다. 너무 많아 여기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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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The Global Imperialist Kurd Card & The Hypocrisy Of The West

2019년 11월 5일 화요일

'7인의 내부고발자'의 폭로 사실이라면 트럼프 사위에 치명타


7인의 신부(Seven Brides for Seven Brothers). 매그니피센트 7(위대한 7인방)(The Magnificent Seven.). 칠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할리우드는 숫자 7이 들어간 영화 제목과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7인의 내부고발자는 어떻까? 듣기 좋지 않나요. 왜 그런고 하니 도널드 트럼프를 탄핵하려는 민주당 하원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국 정부와의 거래에 대해 증거를 제시할 용의가 있거나 이미 증거를 제시한 7명 이상의 첩보원 출신 내부 고발자가 있다고 한 소식통이 콕번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우리가 이미 아는 내용도 있다. 원조 내부 고발자가 있다. 그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건 통화를 최초 보고한 백악관 근무 중앙정보부 요원이다. 공화당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공표"할 것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이름은 인터넷 전역에 널려있다. 그는 조 바이든과 존 브레넌 모두를 위해 근무했던 민주당 당적자로 예일대를 졸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악관에 이로울 수밖에 없는 이 사실은 대통령 쪽 사람들이 국회의사당에 유포한 '문건'에 들어 있는 사실이다. 또한 국가안보회의의 우크라이나 선임 전문가인 알렉산더 빈드만(Alexander Vindman) 중령이 있는데, 그는 3살 때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인 브루클린에 있는 리틀 오데사로 도미했다. 그는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검푸른 육군 복장 유니폼을 착용하고 군용 리본을 패용한 체 하원 정보위에 출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이의 통화 기록에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며, 빠진 '중요한 단어와 구절'을 포함하려고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나는 애국자며 정당이나 정치와 상관없이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고 지키는 것이 나의 신성한 의무와 명예다.' 그리고 국가안보회의 유럽 및 러시아 담당 국장 팀 모리슨이 있다. 그는 문제의 통화를 청취했던 소그룹에 속한 일인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선임한 고든 손드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가 자신에게 우크라이나가 바이든을 조사하지 않으면 미국 무기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내부 고발자 3인은 나왔다. 나머지 4명은 어떻게 된 건가? 콕번의 소식통에 따르면 적어도 하나는 우크라이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트럼프와 사우디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살만 사이의 전화를 보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내부고발자는 대통령의 사위이자 조언자인 재러드 쿠슈너에 관한 통화 내용에 대해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쿠슈너 자신은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콕번은 예전 글에서 모하메드 빈살만에 관해서라면 쿠슈너가 코스모의 말을 빌리자면 '과도한 공유자'였을 수 있다고 적었다. 불행하게도, 그가 공유하고 있던 것은 미국의 비밀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쿠슈너가 CIA에 요청했던 정보는 (아마도) 사우디 왕족들 간의 통화에 대한 미국의 도청 내용으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을 것이다. 한 소식통은 쿠슈너가 한동안 정보 취급 허가를 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7인의 내부고발자에 관해 콕번의 소식통이 전하기론 내부고발자가 더 있다. 쿠슈너가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에게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체포해도 좋다는 청신호를 주었으며(의혹), 카슈끄지는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서 나중에 토막 살인의 희생자가 되었다. 두 번째 소식통은 콕번에게 이것은 사실이라고 했으며, 결정적인 반전이 되는 이야기 하나를 추가했다. 소식통은 터키 정보부가 쿠슈너와 모하메드 빈살만 사이 통화 내용을 도청해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걸 활용해 트럼프가 두 손 들게 했고, 터키의 침공을 앞두고 시리아 북부지역에서 미군 부대를 철수하게 했다. 콕번은 하원 정보위원회 조사관들이 이 모든 이야기와 그런 내용을 말하는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런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다른 문제이지만,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 아담 쉬프가 요즘 흡족한 미소를 짓는 일이 확실히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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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Seven whistleblowers’ And a story that — if true — could be deadly for Jared Kushner

2018년 7월 26일 목요일

미국이 무슬림에 대해 신경 써 줄라치면 미국인들은 수백만 살육을 멈췄을 것

트럼프의 여행자 금지 조치가 미치는 대상 국가는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표적으로 삼은 국가이다. 이 조치는 "대상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다." 국무성의 "반대파"들의 성명에는 "세계 평화를 성원하는 단어는 일절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의 주권에 대한 일말의 존중심도 없다."

"2001년 이후 전쟁 특히 무슬림과의 전쟁은 일상화되었다."

2017년 2월 2일 "인포메이션클리닝하우스" - "블랙아젠다리포트" ―미 국무부 직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시적인 이민 금지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이는 현 행정부의 여러 정책에 대한 내부자 반대의 가장 극적인 표현이다. 행정명령은 7개 주요 이슬람 국적 사람들이 미국 영토에 발붙이지 못하게 막는 법안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직원이 18,000명인 미 국무부의 반기가 절정이었던 또 다른 사례는 작년 6월에 있었다. 당시 51명의 외교관은 시리아 정부 바샤르 알 아사드에 대한 미국의 공습을 촉구했었다.

그러나 이란,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등에서 수백만 명이 살해되고, 그 나라 사람들을 실향민으로 만든 미국의 전쟁과 경제 제재에 대한 반대 의견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되레 지난 여름 외교관들의 "항거"는 시리아 상공에서 러시아와의 대결을 위해 힐러리 클린턴과 전쟁 추구 매파로 가득찬 그녀의 "빅 텐트"에 합류하도록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압력 행사가 목적이었다. 반면 이번 국무부 직원 사이에 지금 회람되고 있는 연판장은 "핵심적 미국 가치와 헌법 가치"를 옹호하고, "미국인에 대한 선의"를 지키내며, "외국인 여행자 및 유학생으로부터 나오는 재정 손실에 따른 미국 경제에 미칠 잠재적 피해"를 방지하자고 주장한다.

어느 연판장에서도 세계 평화에 대한 지지의 말이나 다른 민족의 주권에 대한 일말의 존중심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아마도 현재 "핵심적 미국 가치와 헌법 가치"가 아니며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던 까닭이다.

지난 여름 외교관들의 "항거"는 시리아 상공에서 러시아와의 대결을 위해 힐러리 클린턴과 전쟁 추구 매파로 가득찬 그녀의 "빅 텐트"에 합류하도록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압력 행사가 목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미 국무부의 "반대의견수렴채널"은 "평화"가 인기를 얻었던 미국 역사상 드문 순간 중 하나였던 1971년에 수립되었다. 1971년 당시는 패전한 미국의 전쟁 기계가 마지 못해 월남 괴뢰 정권에 대한 지원을 줄이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과 미국 정부의 귀화 시민은 최소한 400만 명의 동남아시아 인의 희생을 대가로 일궈낸 베트남 사람들의 승리로 인해 도래하기 시작한 "평화"에 대한 공을 인정받길 원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다. 지금은 실질적 "핵심적 미국의 가치" 중 최고로 꼽히고 있는 무슬림 반대 전쟁은 미국에선 2001년 이래로 일상화되었다. 너무 많은 미국인의 증오심이 무슬림을 향하고 있는 관계로 민주당과 기득권 공화당 사람들은 러시아를 미국 대중의 심리 속 "증오 영역"안에 가둬 두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공식 재가가 떨어진 두 가지 증오 극장은 물론 상호 연관되어 있다. 특히 미국의 시리아 진격전을 러시아가 가로막아 선 이후로 그렇다. 미 제국의 보병 역할로 이슬람 지하디스트를 투입하려던 미국 정부의 수십 년 전략을 망가뜨리는 결과가 된 까닭이다.

미국은 언제나 제국 건설 프로젝트였다. 조지 워싱턴은 이를 두고 "신생 제국"이라고 불렀고 토머슨 제퍼슨은 "확장하는 제국"을 추구하면서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준주(準州)를 매입했다. 브로드 웨이 버전과는 반대로 진짜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제국"으로 생각했다. 세계 200만 백인 정착민(그리고 50만명의 아프리카 노예)의 식민지 전초 기지는 세계의 다른 백인 유럽 제국과 경쟁하기 위해 자체적인 무한한 통치권을 모작(模作)하기 위해 영국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오늘날 미국은 모든 (신)식민주의자들의 어머니이며, 그 어머니의 장갑 치마 아래에서 노소를 가릴 것 없는 이전 시대의 전 연령 대에 걸친 제국주의자들이 모였다.

"미국은 언제나 제국 건설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미국의 약탈적 성격과 신화적인 자기 이미지 사이의 거대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거대 하이퍼 제국은 정반대의 가면을 써야만 했다. 바로 세계 야만에 반대하는 자비롭고, "예외적인", "불가결"의 보루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야만인들은 발명되고 육성되어야 했다. 1980년대 미국과 사우디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드 네트워크를 창설했던 것처럼, 뒤를 이어 세속주의 "야만족" 국가인 리비아와 시리아에 투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현대 미국 관료 집단은 걱정스러운 야만족 국가를 "관심 국가 또는 관심 지역"이라고 부른다. 이 문구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2015년 테러리스트 여행 방지법에 따라 7개 대상 국가를 지정하는 데 사용된 언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의 현행법을 활용해 해당 국적의 여행자를 금지하는 자신의 행정 명령의 기초로 삼았고 단지 시리아만 특별히 거명했을 뿐이다. 따라서 작금의 혐오증은 해당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제국 정책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며, 강조하자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 태양은 오래된 브리타니아 상처럼 미국 제국에는 결코 해가 지지 않는다.)

제국은 절멸의 위협에 의해 뒷받침되는 무기 및 강제 경제 제재를 통해 스스로를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제국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희생자 중 극소수는 제국에 대한 그들의 개별 가치에 기초하여 미국 국경 내에서 피난처를 구하게 된다.

"거대 하이퍼 제국은 정반대의 가면을 써야만 했다. 바로 세계 야만에 반대하는 자비롭고, "예외적인", "불가결"의 보루가 된 것이다."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 차별적 행정 명령은 약 2만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에 약 5만명의 리비아 사람을 살해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민간인 단 한 명의 생명도 앗아갔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은 그가 시리아를 상대로 지하디스트 기반 전쟁을 시작한 이래로 그해에 사망한 50만 명의 시리아인에 대한 책임이 있다. 미국이 1980년대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한 이후 7개 대상 국가의 인구에 가한 총 사상자는 4백만 명에 달한다. 이는 2년 전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가한 홀로코스트의 사상자 수보다 크다. 바로 그 시절에 미 국무부는 최초로 '반대의견수렴채널'을 수립했다.

그러나 평화 운동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 스타일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은 난민의 파도를 일으키는 학살을 중단하는 대신에 공격 대상이 된 "관심 국가들"을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끔찍한 의식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는 색으로 구분하는 미국의 인종주의와 이슬람 혐오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이 제국의 시민들은 미국이 성토하는 인구의 극소수만 점유한 지위를 젠체하며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 유일의 "예외적인" 인간이 된 것을 자축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류는 미국의 민낯을 보고 있으며, 심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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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문 보기: If U.S. Cared About Muslims, They Would Stop Killing Them by the Millions Information Clearing House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다시는 김정은을 미치광이라고 부르지 말라

싱가포르 정상 회담이 끝난 이후로 북한 지도자를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면 단순히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싱가포르 정상 회담은 장시간의 극장 관람이었고 전형적인 트럼프식 퍼주기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본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 사람들의 실체가 없는 실천 약속의 대가로 (남한 정부에 통보도 하지 않은 체) 충동적으로 남한과의 군사 연습 중단을 제시했다. 자칭 협상의 대가가 이런 식으로 계속 거래를 성사시킨다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들어서기 전에 호놀룰루에 김정은의 힐튼이 들어설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나온 가장 중대한 변화는 김 위원장의 변신이었다. 이제까지 김 위원장은 비밀스럽고, 다소 익살스럽고, 다분히 살기등등하고, 비이성적인 "은자의 왕국"의 지도자에서 일정한 명망을 갖춘 신중하고 진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도자로 탈바꿈하였다. 뉴욕타임스는 북미 정상회담 전날 공개한 "김정은 이미지 변화: 핵 미치광이에서 재간 있는 지도자로"란 제하의 기사에서 이런 견해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은 적들을 비이성적이고, 제정신이 아니고, 기만적이고, 위험한 일을 도모하거나, 자멸적이거나 단순한 얼간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려주지 김에 대해선 별로 알려주지 않는다. 경험 많은 노련한 미국의 관리들이나 학식 높은 학자들조차도 다른 나라와의 외교적 갈등을 이해관계 혹은 정치적 가치의 충돌로 보지 않고 인격의 결함, 편집증, 혹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견해의 발현으로 보기 십상이다. 김 위원장 가족은 미치거나 비이성적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70년 동안 권력을 유지해 왔다.

적을 미치광이 취급하는 미국의 이러한 경향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국인들은 러시아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비이성적인 광신자로 여겼다. 에드워드 랜싱 전 미 국무장관은 볼셰비키 이데올로기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흉측하고 끔찍한 내용”이라고 표현했다. 1960년대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중국을 “공격적인 오만함과 스스로에 대한 집착의 결합체”라고 규정한 뒤 “중국의 행동은 세상과 삶 자체를 공상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중공 지도부의 행동만큼이나 난폭하고, 화를 잘 내고, 고집 세고, 적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1970~1980년대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소련 지도자들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소련의 주요 도시를 모두 파괴하고, 소련사람 수천만 명을 죽이더라도 그들이 핵전쟁에서 "싸워 승리"하는 일을 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사례를 들자면 미국 전문가들은 사담 후세인이 비이성적이고, 저지하기 어려운 연쇄 침략자라면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했다. 이란 전쟁 찬성론자들은 테헤란 신정 정권에 대해서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한때 이란 지도자들을 “대량학살 미치광이”들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브레트 스티븐스는(Bret Stephens,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 소속) 이란을 "순교에 집착하고, 비서구 문화권"이라고 묘사하며 예방 전쟁을 정당화했다. 미국기업연구소의 마이클 루빈(Michael Rubin)은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주장을 했다. 그는 이란 지도부는 핵 보복 공격을 당하더라도 이슬람 권익은 지킬만한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핵 전쟁) 억지력이 작동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야톨라는 그가 이슬람 전파에 도움이 된다면 핵 공격으로 죽거나 이란이 파괴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미국인은 국제 테러리스트를 정신 장애가 있고, 비합리적인, 기만적이거나, 단순히 미친 개인으로 간주하지, 그들을 정치적으로 동기 부여되고, 계산적이며, 정치적 목표를 실현할 최상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믿음에 따라 (자살 폭탄을 이용하는 등) 특정 전략을 채택하는 합리적인 주체로 보지 않는다. 일부 개별 테러 행위자들은 실제로 전적으로 허구적 신념에 따라 움직였을 수 있지만, 그들 단체와 지도부를 단순히 미치광이로 매도하는 것은 그들이 보유한 강한 저항력, 전략적 행동, 적응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견문이 넓은 미국인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 미국만이 유일하게 고결하고, 예외적이고, 현명하고, 사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모든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고 미국 정책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 취급하기에 십상이다. 미국의 적이 제정신이고 합리적이며 식견이 있다면 우리 목표의 숭고함을 틀림없이 인식하고 우리의 이니셔티브에 투신하리라 생각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우리 미국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고는 매우 놀랐다"고 인정했다.

불행하게도 미국인들이 적들은 원래 비이성적으로 타고 났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첫째, 만일 적들이 정말로 비이성적인 미치광이라면 그들은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에 겁을 집어먹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미국의 통상적인 억지력 전략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예방 전쟁이 보다 매력적인 옵션으로 부상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바로 정확하게 이런(예방 전쟁) 사례였다. 이는 또한 미국의 매파들이 최근 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처방전의 핵심 사항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대북 군사 타격을 선호하는 이들 역시 최근까지 김에 대해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왔다. (김이 최근에 "미치광이"에서 "정치가"로 변모하기 이전에)

둘째, 적들의 행동을 비이성적인 행태 탓으로 돌리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진짜 이유를 보지 못하게 된다. 미국인들은 종종 북한과 이란, 리비아 등의 국가가 추구하는 대량 살상무기가 일종의 제멋대로 일탈이거나 혹은 악의적인 의도 때문으로 본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북한과 같은 가난한 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미친 일이며 김 위원장 가족이 얼마나 기괴하고 편집증적이면서 위험한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도 모두 외세의 침략을 걱정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런 까닭에 그들도 믿을 만한 억지력을 추구할 일부 근거가 있다. (절대 강자 미국이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수천의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훨씬 약한 이들 국가가 핵무기를 유용한 보험 정책으로 여기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김 위원장의 경우 핵무기 보유는 미국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었음을 입증했다.

셋째, 만일 어떤 적이 미쳤거나, 비이성적이거나, 혹은 터무니없이 잘못된 정보에 빠져있거나 한다면 그들이 당근이나 채찍, 혹은 합리적인 논쟁에 사리에 맞게 대응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비이성적이고, 심하게는 이성적 사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정상적인 외교는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미친 사람이나 미친 정권과 얘기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적의 비합리성을 과장함으로써 긍정적인 외교 협상 시도는 말할 것도 없고 협상 타결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우리가 비이성적인 행동이라 간주하는 것에 관해 얘기할 적에 미국인들은 스스로 좀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적들을 비이성적이고 무모한 존재로 간주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나 우리 자신들 역시 그간 미친 행동을 적지 않게 해 온 과오가 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예를 들어 NATO 확장의 순 비용과 이익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나토의 동진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미친 짓이다. 그러나 동진 찬성론자들은 러시아 정부가 반대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러시아의 반대는 진정성이 없다거나 근거가 미천하다는 주장을 고집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에) 안정과 번영, 친미 민주주의를 가져다줄 것이며 역내 전역에 민주주의 바람을 촉발하리라는 생각은 긍정적인 망상이었다, 그러나 많은 현명한 사람들은 2002년과 2003년에 그런 주장을 또다시 펼쳤다. 무하마르 카다피 전복이나 "아사드는 사라져야 한다"는 요구는 리비아나 시리아를 막론하고 약이 된다는 생각은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고위 관리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같은 짓을 계속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광기를 정의한다면, 미국 정치 및 군사 지도부의 "합리성"에 대해 미국의 아프간 정책은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나?

마지막으로 경시할 수 없는 게 있다. 하루도 뻔한 거짓말 없이 (혹은 여러 거짓말) 그냥 보내지 않는 대통령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는 우리 우방국 지도자에게 단지 한 번에 그치지 않은 반복적인 모욕 행위이다. 또한, 대통령은 자주 일의 진행 방향을 변경해서 우방이든 적국이든 오늘 합의가 내일 준수될 것인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다른 일부 비평가와는 다르게 트럼프 대통령이 미쳤다거나 치매 초기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애적 성격 장애에 대한 임상 전문의의 설명을 보니 조금 걱정스럽긴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활약상을 토대로 판단컨데, 왜 주요 세계 지도자들이 트럼프과 같은 변덕스럽거나 복수심에 가득 찬 지도자에 대해 수용적이거나, 달래러 하거나, 비위를 맞추려 하거나, 타협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 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보다 그를 무시함으로써 존경심을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을 입증한 듯이 보인다. 다른 지도자들도 같은 결론에 이르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덜 기울일 것이고 대신 서로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 시점에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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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문 보기: Never Call Kim Jong Un Crazy Again FOREIGN POLICY

2018년 6월 14일 목요일

힐러리 클린턴 유출 이메일: 美 동맹국인 사우디와 카타르가 IS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누출된 힐러리 클린턴의 2014년 이메일에 등장하는 서방 정보기관의 인용을 통해 미국이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정권이 IS를 지원했음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외교적이고 전통적인 정보 자산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는 IS와 여타 급진적인 수니파 그룹에 비밀리에 재정적 지원과 병참(보급품)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안 그래도 신정 걸프 군주제 국가가 중동 전역의 극단주의자 집단의 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던 마당에 이번 문건이 더해졌다.

2016년 1월 새로 공개된 또 다른 이메일에는 2013년 10월 비공식 연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클린턴은 해당 연설에서 "사우디는 지난 30년간 지구상의 다른 어떤 곳보다 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수출했다"고 인정한다.

클린턴은 같은 연설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대적할 수 있고, 아울러 불행히도 시리아에 유입된 알카에다 관련 지하디스트를 대적할 수 있는 시리아 "반란군 간부들을 검증하고, 발굴하고, 훈련하게 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더 강력하고, 은밀한 조치를 추진하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사우디 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기를 대량으로 무차별적으로 (시리아로) 보내고 있어 우리가 추진하는 조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듯 미래에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온건파 세력은 (그들 생각에선) 전혀 무기를 보내는 대상이 아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역시 2016년 1월 이메일 메시지에서 발췌한 2013년 6월 골드만삭스 연설 내용을 보면 그녀는 "특히 사우디는 결코 지구상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정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이메일은 투명성 기관인 위키리크스가 금주에 공개한 자료 일부이다. 구금 상태의 내부고발자 줄리언 어산지가 설립한 단체인 위키리크스는 클린턴 선대본부장이며 클린턴의 최측근인 존 포데스타가 주고 밭은 수천 통의 이메일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무부 장관 임무를 마친 다음 해인 2014년 8월 클린턴은 포데스타에게 보낸 "내가 언급했던 그 내용"이란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시리아와 이라크, 미국 정책에 관한 문건 목록을 보냈다.

클린턴은 해당 메시지의 정보는 서구 정보원, 미국 정보원 및 중동의 정보원에 근거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누가 해당 문건을 작성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문서에 사용된 표현은 미 국무부가 작성한 여타 문서의 표현과 유사하다. 이 문건은 시리아 대통령을 지칭하는 "Bash*e*r al Assad"라는 식의 비전통적인 형식과 똑같은 철자법을 사용했다. 이는 시드니 블루멘탈 전 보좌관이 클린턴에게 보냈던 예전 형식의 정보 문건(일부는 기밀 분류된 것)와 동일하다.

문건에 요약된 전략에 대한 응답으로 포데스타는 "내 생각에 우리가 이라크의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요소들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클린턴은 "동의하되 이라크 건이 개선됨에 따라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썼다.

클린턴의 메시지는 또한 미국이 대량 학살 집단인 이슬람 국가의 부상을 기회로 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비극적인 측면에도 이라크를 통한 IS의 진군은 미국 정부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혼란스러운 안보 상황을 다루는 방식을 바꿀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당 문건에 나온다. "이 문제에서 정보 자원과 특수 작전 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캠페인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이메일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부정한 바가 없다. 그러나 기자들이 이번 주 클린턴을 상대로 문건에 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월스트리트를 상대로 한 그녀의 유료 연설문 발췌를 포함하는 2016년 1월 메시지를 사실로 확인하였다.

살롱(잡지)은 클린턴 캠프에 연락해 해당 이메일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글랜 캐플린 대변인은 이메일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계속해서 개별 이메일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겠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캠프와 위키리크스가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혐의를 제기하면서, 이 일이 클린턴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저해하기 위한 거대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2014년 8월 이메일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친미 우방이 이슬람 국가와 여타 극단주의 단체를 지원한다는 혐의를 최초로 제기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다.

사실, 클린턴이 정보 문건을 포데스타에 보낸 지 불과 몇 주 후인 2014년 10월 조 바이든 부통령은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를 강하게 비난했었다. 그는 "그들은 아사드 타도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그에 대적할 만하다면 누구에게도 수억 달러와 수십 톤의 무기를 부었다. 다만, 다른 세계에서 유입되는 알 누스라와 알카에다, 등 지하디스트의 극단주의 집단에 제공되는 무기는 예외이다." 그는 "우리는 우리 동지들이 그들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하게 설득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바이든은 나중에 터키에 사과했지만, 그가 말한 것은 절대적으로 사실이었다. 우익 이슬람교도 리셉 타입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은 수천 명의 살라피(수니파 이슬람 강경파) 무장 세력이 터키 국경을 맘대로 넘어가도록 방치했다. 전문가들과 전직 IS 전투원들은 터키가 쿠르드족 반군과 시리아 정부를 약화시키기 위해 간접적으로 IS를 수년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말한다.

미국 당국자들과 많은 분석가와 뉴스 보도들은 오랫동안 군주제 국가 사우디와 카타르가 IS를 지원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오히려 그들은 IS 지원은 그 나라의 부유한 기부자들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은 2014년 9월 CBS와의 인터뷰에서 카타르와 다른 걸프만의 부유한 "엔젤 투자가"들이 IS에 돈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8월 유출된 이메일은 서방 정보원은 (사우디, 카타르) 정권 자체가 이슬람 국가에 대한 지원을 제공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모두 샤리아 또는 이슬람법의 근본주의적 해석에 근거한 억압적인 신정 정치 체제이다. 인권 단체들은 (사우디, 카타르) 양국에 대해 엄청난 규모의 구조적인 인권 유린에 대해 비난해왔다.

IS의 이데올로기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펴진 극단주의 수니파 이데올로기인 와하비즘과 매우 유사하다. 사실, 이슬람 국가(IS)가 시리아 수도인 락까의 어린이들을 위한 교과서를 필요했을 때 이 극단주의 단체(IS)는 온라인으로 찾은 사우디 국정 교과서 사본을 인쇄하여 사용했다.

이슬람 국가가 근대적 형태로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과 다른 서방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신정 걸프만 국가들이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자 그룹을 지지했다는 것을 인정했었다.

살롱Salon(잡지)이 이전에 보도한 바와 같이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성 장관이 서명한 2009년 공전公電(위키리크스 공개)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부자가 전세계 수니파 테러 단체들에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용어 해설: 위키리크스 공전公電과 전보문電報文, 전문電文의 구분

한국에서는 위키리크스에 누출된 국무부와 전 세계에 주재한 미 대사관 사이 오간 공전(公電)을 가리켜 보통 전문(전보문의 줄임말)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정확한 용어는 사전상의 의미을 볼 때 공전이 맞습니다. 일본에서도 '공전'이란 용어를 씁니다. 아울러 이 공전 작성자들이 각기 주재국 미 대사관을 통칭할 때는 보통 The Post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보통 미 신문이나 미디어 사이에서 워싱턴포스트지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The Post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국무부 문건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알카에다, 탈레반, 다른 테러 단체들에게 중요한 재정적 지원 기지로 남아있다"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오는 테러리스트 자금 문제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취급하자고 사우디 관리를 설득하는 일은 계속된 도전 과제 중에 하나였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이 동 정보 메일을 보냈던 2014년 8월 당시는 이라크 거점 이슬람 국가와 레반트는 아직 사후事後 양상처럼 강세를 띠지는 않았지만, 몇 주 전에 이미 자신들 스스로 글로벌 칼리프라고 선언했다. 지난 6월 IS 극단주의 집단은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모술을 침공하고 점령했다.

앞서 몇 개월 전에 IS는 지난 2월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인 자브하트 알 누스라와 연대를 끝냈다. 이데올로기로 보면 두 그룹은 거의 동일하지만, 전술은 달랐다. IS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고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로부터 침탈한 지역에서 즉각 파시스트 스타일의 정권을 세웠지만, 개명한 알 누스라는 보다 점진적 접근 방식을 선호했다.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알 누스라)는 민심을 사로잡는 전략을 추구하여 시리아 정부와 대전對戰하는 반대파의 주축이 되었다.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는 지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반란군이 되었고,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전투원임이 입증되었다. IS와는 달리 알 누스라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독자적인 스타일의 칼리프를 만드는 것을 선호했다. 2012년 알 누수라 지휘관은 샤리아 법률이 "점진적으로 도입될 것"이라고 한 기자에게 밝혔다.

2014년 8월 클린턴 이메일을 보면 시리아 반군 상당수는 극단주의 세력의 지배를 반대한다고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다만 해당 반군 세력은 미국이 소위 "온건파" 반군 단체를 지원해 달라고 여전히 요청하고 있다. 미 정보 당국은 미국이 IS와 싸워야 하지만, "바샤르 알아사드(Bash*e*r al Assad)가 미국의 작전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하게"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 문서에는 IS를 격퇴함으로써 시리아의 수니파 저항 세력을 재건하고, 자유 시리아군과 같은 온건 세력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우리는 약화한 IS를 상대할 수 있도록 자유 시리아군이나 온건파 군대에 장비를 제공하고, 시리아 정권에 맞설 작전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IS 부상 초창기에는 여타 이슬람 시라아 반군 단체가 IS와 협력했다. IS는 또 쿠르드족 대항 전투에서 외견상 온건파 반란군과 함께 싸웠다. 최근 6월과 7월 존 케리 미 국무 장관은 걸프만 국가과 터키가 지지하는 대표적인 시리아 반란군 아라르 알샴과 아흐라르 알-샴을 거론할 때 IS와 알카에다의 "하위 집단"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으로 반군을 무장시키고 훈련하게 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썼던 CIA는 비밀 자금 조달을 위해 사우디 자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IS의 성공적인 영토 점령은 리비아와 레바논, 심지어 요르단 거점 여타 전투원까지 영감을 불어 넣었다.

미 정보 당국은 IS 격퇴를 위해 쿠르드족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늘린 것을 제안했다. 그에 따라 "카타르 사람들과 사우디 사람들은 수니파 세상 지배권 경쟁을 지속하는 것과 미국의 심각한 압박에 따른 후과 사이 정책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동 이메일은 IS 퇴치를 위해 쿠르드족 전투원을 지원한다는 미국이 그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추구해온 전략에 관해 설명한다. 이 이메일에는 '쿠르드족 페슈메르가' 전투원이 "CIA 관리와 특수 부대 요원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적혀있다. 아울러 터키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미국은 앞서 '페슈메르가' 전투원에 중무기를 보내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IS가 급부상하자 "이 정책은 쓸모없어졌다."고 같은 문건에 적혀있다.

다만, 미 정보원은 쿠르드족에 대한 과도한 지지를 보내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였다. 그들 미 정보원은 이라크의 수니파 지역과 정부가 쿠르드족이 통제하는 영토 확장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당(當) 서방 정보원들은 "자치권 확대를 대가로 [쿠르드 자치 정부]가 키르쿠크 주변 유전과 모술댐 수력 발전소 경영에서 이라크 정부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도록 관련 이해 당사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페슈메르가 지휘부의 참모들과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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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문보기: Leaked Hillary Clinton emails show U.S. allies Saudi Arabia and Qatar supported ISIS SALON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나치 선동꾼을 전쟁 범죄자로 기소한 뉘른베르크 재판소와 미디어의 역할

지금도 계속되는 미국의 중동 침략은 현대 사회 안에서 대중 매체의 역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라크 침공의 길목에서 미국 언론은 이라크 공격을 위해서라면 거짓말, 왜곡, 반 진실에 기초한 부시 행정부의 주장을 무 비판적으로 내보냈다. 보도 매체는 대규모 반전 시위에 관한 뉴스를 전혀 보도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비판적인 견해를 사실상 배제했다. 또한, 백악관과 국방부의 선전과 배치되는 그 밖의 사실 뉴스도 마찬가지다.

매체의 목표는 분명하다. 여론을 조작하고 허위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미 정부의 전쟁 정책에 반대하는 미국 내 수천만의 미국 사람들을 작고 무력한 소수자로 각인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큐 신호가 떨어진 듯 순종적인 미국 매체는 시리아에 관심을 돌렸다. 미군의 다음 표적임이 분명하다. 백악관과 국방부의 초점이 북한이나 이란으로 옮겨져야 한다면 그들 정권이 제기하는 미국 국민의 안전에 대한 위중한 위협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 미디어에는 중동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관한 진지한 분석이 거의 없다. 미국 미디어는 전통적으로 "제4 계급"란 이름에 걸맞는 비판적 장치를 수행하거나 대중을 교육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일말의 책임은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예로 감시견 기능이나 정부의 권력 남용과 사실 변조에 대한 견제 기능이 없다. 대신에 미국의 지배 계급이 할당한 기능을 노예처럼 실행에 옮긴다. 바로 미국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고 협박해서 워싱턴 우파 도당의 반동적인 계획에 저항할 여지를 줄이는 역할이 미디어에 할당된 기능이다.

텔레비전 네트워크와 주요 신문은 미국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와 정보의 주요 원천이다. 그러나 이들 공공 자원은 거대 기업의 손에 맡겨져 있고 그들의 이익과 재산을 방어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엄청나게 부유한 개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수천 명의 시체 혹은 필요하다면 수백만 명의 이라크인, 시리아인, 이란인 등은 미디어 억만장자들의 입장에선 미국의 군사 및 경제적 세계 지배력을 달성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작은 대가에 불과하다.

그런 관계로 미국 미디어는 이라크에서 수행되었던 범죄 사실 전후에 액세서리가 되었고, 그 밖의 중동이나 전 세계 사람을 상대로 한 미래 범죄에도 액세서리가 될 뿐이다. 황폐해된 이라크 도시와는 동떨어진 잘 차려진 중역 회의실에 앉아 있는 미디어 거물들은 그런 혐의에 절대 직면하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의 역사적 선례나 유사 사례가 있다.

뉘른베르크 선례


선전과 선동꾼의 역할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당 지도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소집된 뉘른베르크 전쟁 범죄 재판소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연합국 정부가 조직한 기관인 전범 재판소는 전범 국가의 지배 계층에 대한 최종 분석을 제공한다.

그렇긴 하지만, 미국 검찰은 대학살 관련 반세기 동안의 국제 경험에서 기인하는 민주적 법리를 내세웠다. 침략 전쟁의 계획과 개전은 범죄 행위에 해당하며 선전 노력을 통해 그런 전쟁 준비를 도운 자는 전투 계획을 작성하거나 군수품을 제조한 자 만큼이나 죄가 인정된다.

나치 신문과 라디오 선전의 주요 책임자였던 한스 프리츠셰에 대한 공소 제기는 특히 의미심장했다. 프리치셰는 1900년 베스트팔렌 보훔에서 태어나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군대에서 복무했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학위없이 대학을 그만두었다. 그는 나치를 포함한 우익 "국가"당을 지지하는 신문사 체인인 휴겐 버그 프레스에서 언론인으로 근무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프리츠셰는 1932년 9월 정치 사건을 논하는 "한스 프리츠셰가 말한다"라는 주중 프로그램에서 라디오 논평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프란츠 폰 파펜 정권은 그를 정부 기관인 무선[라디오] 뉴스 부장으로 임명했다. 프리츠셰는 대개 나치주의에 동조했지만, 나치당의 당원은 아녔다.

히틀러 교도들은 라디오를 중요한 선전 도구로 보았다. 나치가 정권을 잡던 1933년 1월 30일 저녁에 장래에 대중계몽선전부 장관이 되는 요제프 괴벨스의 밀사 2명이 프리츠셰를 예방한다. 프리츠세는 모든 유대인과 나치당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한 모든 사람에 대한 즉각적인 해고를 포함하여 괴벨스에 의해 설정된 특정 조건을 거부했음에도 무선 라디오 부서의 책임자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뉘른베르크 법정은 프리츠셰에 대한 공소제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프리츠셰는 당시 현존하던 국가사회주의 연합 정부였던 나치당 시절에 라디오 방송을 제작했으며 그는 나치당을 지지했다."

1933년 4월 괴벨스는 프리츠셰를 개인 방문했을 때 1933년 5월 1일 자로 새로 설립되는 대중계몽선전부 관할하에 무선 뉴스 서비스를 배정하겠다는 결정을 프리츠셰에게 알렸다. 첫 회동 결과에 만족한 괴벨스는 두 번째 회동 자리를 마련하고 그 자리에서 프리츠셰는 무선 뉴스 서비스를 "개편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단행한 조치를 괴벨스 선전부 장관에게 알렸다. 그 조치에는 유대인 직원을 해고하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괴벨스는 곧바로 독일 선전부의 통제하에 독일의 모든 뉴스 서비스를 재편성하고 현대화하기를 원한다고 프리츠셰에게 알렸다. ... 그는(프리츠셰) 괴벨스의 정신이 깃든 무선 뉴스 서비스의 재편을 마쳤으며, 1933년 5월 1일에 나머지 직원들과 함께 대중계몽선전부에 합류했다. 같은 날 프리츠셰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에 합류하여 지도부에 대한 전형적이고 조건없는 충성을 맹세했다."

선전부에 들어선 프리츠체는 "독일 언론부"를 위해 일했다. 1933년부터 1942년까지 프리츠셰는 선전부에서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였다. 그가 독일 언론부를 이끌던 4년 기간에 나치 정권은 이웃 국가에 대한 침략을 시작했었다. 뉘른베르크 검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독일 언론사의 기능 덕분에 독일 언론은 독일인의 마음과 심리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를 상대하는 외교 정책과 심리적 전쟁의 수단으로써 나치 공모자들의 중요하고도 유일한 도구가 되었다."

프리치셰의 진술서에 따르면 : "1933년에서 1945년까지 전체 기간 내내 신문사를 감독하는 것이 독일 언론부의 임무였고 이 부서가 독일 지도부의 수중에서 효율적인 도구가 되도록 해주는 지침을 신문사에 제공하는 것도 역시 독일 언론부의 임무였다. 2,300개 이상의 독일 일간지가 독일 언론부의 통제를 받았다. ... 독일 언론부의 책임자는 모든 독일 신문의 대표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기자 회견을 매일 개최했다. 거기서 나온 모든 지시는 언론 대표에게 전달된다.

공소 사실: 침략 수단으로서의 선전


미국인 드렉셀 스프레처가 제기한 기소건을 보면 히틀러 정권이 침략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할 수 있게 해준 미디어 선전의 역할에 상당한 방점을 두고 있다. "나치의 공모자들이 심리전을 활용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신속성에 기초한 몇 가지 예외적 경우를 빼고는 주요 침략에 앞서 희생 상대를 약화하고 독일 사람들이 독일의 공격을 심리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계산된 대언론 캠페인을 시작했다. 독일의 전쟁 초기 승전 이후 외국 정치에 영향을 확대하고 후속 침략 전술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도 매체를 이용하였다.

프리치셰는 그의 전임자인 알프레트 잉게마르 베른트의 "초보적인 군과 같은" 수법 이후 1938년 독일 언론부의 책임자로 임명되면서 "언론에 대한 독일 국민의 신뢰성에 현저한 위기"가 조성되었다.

뉘른베르크 재판 검사는 독일 미디어가 다양한 외국 침략 행위와 관련해 프리치셰의 직속 감독 아래 채택한 선전 캠페인을 상세히 설명한다. 예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편입(1939년)과 폴란드(1939년)와 유고슬라비아 침공(1941)을 사례로 들 수 있다.

폴란드 침공에 앞서 나치 언론의 선전을 보면 폴란드 내부 독일 소수자의 불만을 조장하거나 조작하는 내용이 있다. 프리치셰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선전과 관련해 독일의 주요 신문은 소위 '일일 지도(daily parole)'이라고 전달받은 지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보도를 크게 강조했다. (1) 폴란드 현지 독일인 대상 잔혹한 테러와 독일인 말살; (2) 폴란드 현지 수천 명의 독일 남성과 여성의 강제 노동; (3) 노역과 무질서의 땅 폴란드; 폴란드 군인들의 탈영; 폴란드의 인플레이션 확대; (4) 폴란드 정부의 지시에 따른 국경 충돌의 도발. 폴란드 사람들의 정복 야욕; (5) 체코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의 박해"

유고 슬라비아 사건을 둘러싼 나치 선전과 관련해 뉘른베르크 재판 검사는 "관행적인 합리화, 거짓, 선동과 위협, 희생자를 분열시키고 약화하려는 통상적인 노력"에 주목했다.

프리치셰는 1941년 6월 소련 침공 직전에 어떻게 명령을 받았는지 설명한다. "[외무부 장관 요아킴 폰] 리벤트로프는 소련을 상대로 한 전쟁이 바로 그날 시작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통보했으며, 소련에 대한 전쟁은 조국의 수호를 위한 예방 전쟁으로, 독일에 대한 소련의 공격의 즉각적인 위험을 통해 우리에게 강요된 전쟁으로 전달할 것을 독일 언론에 요구했다. 독일의 침략 전쟁이 예방 전쟁이라는 주장은 나중에 독일 신문을 통해 반복되었는데 그건 제국 언론의 총장의 통상적인 일일 지도에 참석 중이던 나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나도 내 정규 방송에서 전쟁의 원인에 대해 그런 내용으로 전달했다."

따라서 외국의 불법 침략에 대한 "예방" 또는 선제공격 전쟁이란 말은 부시나 체니 또는 럼즈펠드에서 유래하지 않았다.

프리치셰 기소건은 오늘날 상황에도 대단히 관련성이 깊은 문제를 제기해 준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만들고, 실제로 전쟁 범죄를 독려하는 나치 미디어 선전의 역할이 그것이다. 기소장 내용: "프리치셰는 잔악 행위를 선동하고, 무자비한 점령 정책을 독려했다." 난치 공모자들의 무기 역할을 한 선전의 결과는 나치 음모의 모든 측면에 녹아들어 있다. 점령 국가에서 잔학 행위 및 무자비한 착취도 그런 사례이다. 많은 일반 독일인들이 상시적인 나치 선전에 휘둘리지 않고 자극을 받지 않았다면 유럽 전역에서 자행된 잔학 행위에 결코 참여하지 않았거나 용인하지 않았을 수 있다. 잔학 행위를 실제로 자행한 사람들의 냉혹함과 열의는 프리치셰와 그의 업무 관련자들이 끊임없이 파고드는 선전의 영향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 미국 언론은 60%~70%의 인구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여론조사를 보도한다. 그런 여론조사는 사상의 사회적 기반 확대라는 목적과 이해관계가 없는 단체가 실시하지 않았다. 면담자가 선택되고 질문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여론조사 결과를 얻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 있는 권세가들은 대통령과 군대 뒤에 단결된 국가라는 허구를 유지하는 일에 비상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적개심과 전쟁 반대 여론이 널리 퍼져 있다. 부시 행정부는 언론에서 민주당이나 미국의 공공 기관에서 발언 기회가 없어졌다.

그렇지만, 인구의 저변 깊숙한 곳에는 전쟁에 찬성하는 유권자층도 있다. 거의 모든 전쟁에 찬성하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우익 광신도를 도외시하더라도 이라크 공격에 찬성했던 그들의 동료 미국인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이렇게 믿는다. a) 사람 후세인 정권이 뉴욕시나 워싱턴에 대한 2001년 9월 11일 공격을 거들었다. b) 이라크인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미국이나 이웃 국가에 대항할 목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 그 밖에도 c) 이라크 사람들이 미국의 힘을 빌려 "해방"되길 원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이 기사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세 가지 주장은 모두 전쟁 발생 그 자체로 거짓으로 판명되었으며, 앞으로 사건의 전개 양상에 따라 거짓이 추가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이 이라크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모든 비극적인 결과에도 이러한 주장을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설명해야 할까? 이는 수개월, 심지어 수년에 걸친 (1차 걸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미디어의 "끊임없이 파고드는 선전"에 따른 것이 분명하다. 미 미디어의 성공적인 여론 조작은 전쟁 범죄에 동조한 죄과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에 속한다.

프리치셰 기소 검사의 결론을 폭넓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 결론은 더 이상 미국 지배 계층 내에서 중요시되지 않는 감각인 나치 전범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감각뿐만 아니라 현대 시대의 언론의 역할에 대해 상당히 구명(究明)하였다.

"프리치셰는 포고령에 서명한 공모자의 유형이 아니며 전반적인 거대 전략을 짜는 내부 자문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도 아니다. 선전의 기능은 대부분 그러한 전략 설정의 영역과는 별개이다. 선전 기관의 기능은 광고 대행사 또는 홍보 부서와 다소 유사하다. 광고 대행사 또는 홍보 부서의 임무는 제품을 판매하고 해당 기업이 시장을 점유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나치 음모 세력이다. 사기를 수단으로 하는 음모에 있어서, 공모자 그룹의 영업 사원은 모든 기본 전략의 수립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이 아니라 이 전략의 실천을 현실화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마스터 기획자만큼이나 중요하고 처벌 대상이다. 이 공소건에서 선전은 나치 음모에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무기였다. 게다가, 선전 선동가는 이 음모에서 주요한 공범자였다. 그리고 프리치셰는 그들 중 하나였다.

프리치셰는 독일 신문 기자단의 지도부에서 추락했던 전임 베른트 (Berndt)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았다. 그가 추락한 까닭은 부분적으로 그는 수데텐란트 선전을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손질했기 때문이다. 프리치셰는 독일 사람과 편집자 모두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인한 공백을 메우고 더 많은 기술과 정교함을 동원해 직무를 수행했다. 괴벨스가 말했듯이, 그가 "나라 전체의 귀를 종끗 세우게 하는" 그의 영민함과 믿음을 주는 능력이 그를 공모자보다 유용한 종범자로 만들었다…

"프리치셰는 자유 언론인으로서 피고석에 선 것이 아니라 독일인에 대한 나치의 속박을 옥죄는 일에 지대한 공을 세운 선동가로서 피고석에 선 것이다. 그는 공모자 집단의 과당한 요구를 독일 국민의 구미에 맞도록 만들었다. 그는 독일 나라 전체에 분노를 조장하고 사람에 대한 범죄를 교사(敎唆)했다. 프리치셰의 선전을 들은 독일인들에게 그 사람들은 인간 이하였다.

"나찌 국가의 선전기구가 없다면, 세계는 당시의 대참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나찌 공모자들과 그들의 기만적이고 야만적인 관행을 대신한 프리치셰의 역할 때문이며 그가 전에 국제 군사 재판소에 불려나와 추궁을 당하는 이유이다."

재판소는 프리치셰가 나치 정권이 추진한 선전 운동을 공식화하거나 발족시키기에 충분한 위상을 갖지 못했다는 의심스러운 근거에 따라 유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또한 프리치셰가 유대인 말살에 대해 알았거나 그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뉴스를 전달했다는 점을 검찰이 증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프리치셰는 즉시 체포되어 독일 법원에 의해 여러 가지 범죄로 기소되었으며 1950년에 강제 노역 9년 형을 선고받고 1950년 감옥에서 석방되었으며 3년 후 암으로 사망했다.)

검찰은 피고인 프리치셰의 "근거없는 석방"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그들의 주장을 끈질기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검찰은 본 평결이 프리치셰가 "그의 말대로 1942년까지 실질적인 독일 언론의 감독자였으며 결국 1942년에 그가 '독일 라디오의 사령관'이 되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지적은 계속된다. "한스 프리츠셰 피고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성격 규정을 위해서는 히틀러와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들(예로 괴링과 같은)이 일반적인 선전과 특히 라디오 선전에 상정한 중요성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침략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로 판단된다."

히틀러의 독일에서는 평결에 대한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선전은 침략 행위를 준비하고 수행하며 독일 대중을 훈련하여 독일 파시즘의 범죄 기획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한 요인이었다. ...

"나시 선전 활동의 기본 방식은 거짓 사실 발표에 바탕을 두고 있다. ... 노골적인 거짓말의 보급과 체계적 여론 기만은 군 병기의 생산과 군사 계획의 초안 작성 만큼이나 히틀러 무리가 그들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출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철저한 침탈의 토대 위에 세워진 선전이 없었다면 독일 파시즘의 침략 의도를 실현할 수 없었을 것이며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인 범죄를 실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히틀러 국가의 선전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일간지와 라디오가 있었다."

이 선고 이유에 추가할 것이 거의 없다. 모든 유사한 역사의 반복을 논하는 데에 제한이 있게 마련이지만, 독일 언론 매체에 대한 전쟁 범죄 기소장은 현대 사회의 시사 문제에서 미국 언론 권력의 역할에 대해 시사해 주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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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The Nuremberg tribunal and the role of the media  WSWS.ORG

2018년 5월 24일 목요일

이슬람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달러에 대한 위협

2014년 9월 10일 ― 중동에 이슬람 국가(IS)의 출현, 눈에 띌 정도로 쉽게 이라크와 시리아의 영토 상당 부분을 점령, 이슬람 국가 전투원이 적을 상대할 때 잘 알려진 야만성 등은 중동에서의 새로운 군사 개입 요구가 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주 최근에야 이슬람 국가로 인한 위협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이유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국가의 활동에 대한 우려보다는 지금 이슬람 국가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전에 제기되는 위협에 대해 우려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40년 동안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주춧돌이었다. 만일 사우디아라비아란 국가가 무너지면 준비 통화로서의 미 달러의 몰락도 매우 빨라질 것이다.

1971년 항금 유리창을 폐쇄한 이후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미 달러를 지탱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판매를 달러로 표기하는 대가로 미합중국은 사우디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 중의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 때문에 원유 판매를 달러로 표기한다는 것은 국제 시장에서 원유를 구매하고자 하는 외부 국가들이 달러를 매입하고 달러 보유고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관계로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인해 달러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의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국제 준비 통화에 걸맞는 달러 수요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사우디와 미국의 공생 관계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걸프 아랍 국가(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등)는 자체적으로 상당한 달러 보유고를 유지해왔다. 공식적인 추산에 따르면, 석유 수출국들은 여전히 ​​2,600억 달러 이상의 미 재무성 채무(채권)중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아랍 국가의 국부 펀드 규모에 비교하면 왜소해 보인다.

거의 2조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이 국부 펀드는 전 세계에 원유 재원으로 투자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 연방은 미국 군사 장비의 최대 구입처이다. 진정 아랍 지도자들은 닉슨 대통령과의 초기 약정으로 인해 엄청난 이익을 얻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슬람 국가의 출현으로 격랑에 휩쓸리게 되었다. 사우디 정부는 오랫동안 내부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 압력에 직면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부 살라피즘/와하비즘의 뿌리, 사우디아라비아가 독립 국가로 출현하는 배경이 되는 사건, 사우디 왕족의 호화로운 생활 양식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정권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갈수록 희박해지는 균형감 회복을 위한 활동에 나서는 상황을 초래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슬람교가 성장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직자들과 군인들 사이에서 이슬람 국가에 대한 지지가 확대됨에 따라 이슬람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이 명백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체적으로 이슬람 국가라는 외부 위협에 대처할 수 없거나 이슬람 국가에 대한 내부 동조자로부터 기인한 내부 위협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낌을 받게 된다면 미군의 개입이 크게 증가하게 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페트로달러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사우디 정부의 몰락은 국제 원유 시장을 심각하게 교란할 수 있다. 그리고 석유 시장에서 달러가 통화 지위 우선권을 상실한다면 달러는 세계를 대표하는 준비 통화의 지위를 급속하게 잃을 수 있다.

달러 지위에 대한 방어는 미국이 이슬람 국가에 개입하게 된 진정한 이유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개입하게 된 동기를 인도주의적인 이유라거나 이슬람 국가에 대항하기 위함이라거나 소수 민족과 종교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등으로 오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야 한다. 미국의 개입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지킴으로써 달러의 준비 통화 지위를 방어하기 위한 순전한 사익 추구 활동이다.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있기 얼마 전에 원유 대금 결제에서 유로화를 받기 시작했던 일을 상기하자. 이란은 자체 원유 거래에서 달러 이외의 통화를 받기로 합의하자 그 뒤에 미국의 혹독한 제재 대상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러시아가 달러에서 벗어나려고 중국과 합의를 이루자 미국과 유럽 연합의 제재 대상이 되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달러를 버리지 못하게 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와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의 개입을 지지한다는 식의 인도적인 구실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 그런 구실은 미국 정부가 준비 통화로서의 달러 지위를 지키려고 자국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해 내거는 간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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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6일 수요일

갈림길에 선 미국 패권

다극 체제의 한 단면


미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기이한 대선을 치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현재 '세계'는 관심 밖이다. 자유당 개리 존슨 후보는 자신이 존경한다는 해외 지도자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는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장벽'을 건설하고 이라크 석유를 뺏어야 한다는 의중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 사는 세계에 대한 약간의 소개 글을 마련했다. 다극 체제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세상이 더 이상 "유일 슈퍼 파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증거를 원한다면 시리아 내전에 참전해 미국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축출 계획을 좌절시키고 시리아 내전의 판도를 바꾼 러시아의 역할부터 살펴볼 수 있다. 러시아 사례는 군사 및 외교 분야 모두에서 미국의 전지구적 패권이 축소되는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에 하나이다. 평화적 측면을 주목한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 또는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거국적인 수송 및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 아시아와 유럽의 수많은 국가를 중국과 연결하는 계획의 구현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은행과 비견될 수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중국의 수단을 보라. 그런 변화 양상 속에서 과거 압도적인 경제 패권을 갖고 있던 미국이 점차 국제적으로 도전받고 축소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리아는 러시아 손바닥에


러시아와 미국이 10개월간의 어려운 협상 끝에 타결한 9월 10일 시리아 휴전 합의는 또다시 깨지면서 지금은 엉망진창이지만, 이목을 받지 못하는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이 있다. 구소련이 내부적으로 붕괴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가 미국과 대등한 외교적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지금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의 발언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여기가 막다른 길이 아니며 …단지 새로운 대미 관계의 시작이다" 미·러 관계가 지금은 지체하고 격화한 상황이지만, 러시아의 제한적인 시리아 개입이 전쟁으로 유린당하고 황폐해진 땅에서와 국제 외교 무대 모두에서 결실을 보는 승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맞춤 전략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2015년 8월은 모든 측면에서 아사드 대통령은 궁지에 몰린 상태였고 왜소해진 시리아군의 사기도 최저였다.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란의 지원만으로는 아사드 대통령의 위태로운 정권 장악력을 회복하기에는 불충분했음이 확연했다.

러시아 군사 전략가들은 와해 중인 시리아 공군력이 남긴 커다란 공백을 메우고 영공 방어를 보강함에 더해, 탱크와 장갑차 등 고갈된 시리아 무기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막자는 취지였다. 그런 목표에 맞게 러시아의 마지막 거점 중의 하나인 라타키아 항구 인근 공군 기지를 발진 기지로 변모시켜 그곳으로 전투기와 공격헬기, 탱크, 야포, 병력호송장갑차를 운반했다. 또한, 러시아는 그곳에 첨단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했다.

4천~5천 명으로 추산되는 러시아 병력이 파견되었다. 그 가운데 지상군은 전혀 없지만, 러시아 근현대사에 전례가 없는 행보다. 러시아가 해외에 상당 규모의 병력을 파견한 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오판으로 판가름 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0년 후에 철군과 함께 종식되었고, 1991년 12월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 석상에서 "러시아와 이란이 아사드를 지탱하고 군사력으로 평화를 수립하려는 시도는 자진해서 수렁에 빠져드는 것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2014년 9월 이후 IS가 장악한 시리아 영토에 있는 복수의 표적에 폭격한 이래로 오바마는 이 주제라면 전문가가 돼야 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도 미 국방성은 쌍방의 항공기에 대한 안전 조치에 관한 양해각서를 러시아와 곧바로 서명했다. 이제 양국은 시리아 상공을 공유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지상 통신 회선도 구축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지속한 공습에서 러시아는 9,000회 이상 출격해 (IS가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209개 원유 생산 및 운송 시설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시리아군은 8,860 제곱 마일에 걸친 400개 거점을 탈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인 5명만 희생되었다.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결정적인 역할이 계속 커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자 백악관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2016년 3월 중순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다. 회담에 따른 시리아의 향방을 보자면 캐리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시리아 문제에서 러시아 입장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IS 격퇴를 위한 양국 지도부의 긴밀한 공조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러시아의 군사 작전이 시작된 지 1년, 대다수 시리아의 주요 도시는 시리아 정부 수중으로 돌아왔고 (종종 쑥대밭이 된 채로) 반군 거점인 동부 알레포는 러시아의 공습을 받고 있다. 시리아군의 전체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아사드 정권의 사기는 진작되었다. 아사드 정권은 이제 축출될 위험도 없어졌고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의 영향력도 강화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에겐 적지 않게 중요한 점은 그들이 중동 지역에 다시 등장했다는 점이다. 5년 반의 시리아 내전으로 최대로 추산해 거의 5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병원에 대한 폭격마저 일상이 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러시아가 쌓아온 중추적인 위치를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나라들조차 인식하게 됐다. 러시아 군사 작전 1주년에 푸틴은 더 많은 전투기를 시리아에 파견했다. 이는 러시아를 수렁에 빠트릴 여지도 있다. 그러나 당분간 푸틴의 전략이 러시아의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앞다퉈 푸틴 찾는 반(反)아사드 진영 아랍국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 사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터키의 최고위 관리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푸틴과 회담을 열었다. 10월에 첫 테이프를 끊은 건 살만 러시아 국왕의 아들인 모하메드 왕세제였다. 그들은 소치의 흑해에 있는 러시아 대통령의 별장에서 회동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CIA가 조달한 토우 대전차 미사일 매입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제 양국은 "테러 집단(IS)이 우위를 점유하지 못하게"하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다는 합의를 이뤘다. 아딜 주바이르 사우디 외무 장관은 러시아의 표적이 되는 반군 단체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다. 푸틴은 이에 정보 공유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향후 양국의 군사 및 안보 분야 협력을 의미한다.

당일 얼마 후 세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 겸) 통합군 부총사령관은 푸틴을 방문했다. "나는 러시아가 중동 문제에서 매우 심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겠습니다."고 그는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양국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2016년 1월 크렘린궁에서 푸틴을 만난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러시아가 세계 안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카타르는 요르단과 함께 반 아사드 반란군 무장과 훈련기지를 CIA에 제공해왔다. 한 달 뒤엔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가 소치에서 푸틴을 만났다. 바레인은 1971년부터 미 해군 제5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다. 그는 러시아 지도자 푸틴에게 다마스쿠스 철로 만든 "승리의 검"을 선물했다. 회담 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두 나라가 경제적, 군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에는 리셉 타입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이 "소중한 친구" 푸틴을 면담하기 위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다. 2015년 터키가 시리아 북부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했을 때만 해도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추락했었다. 서방 지도자들과 달리 푸틴은 개인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7월 터키 군사 쿠데타 시도를 저지한 일에 대해 그를 축하해주었다. "헌법에 반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철저하게 반대한다"고 그는 밝혔다. 3시간이 걸친 대화 이후 두 사람은 양국의 위축된 경제 관계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갑자기 아사드 퇴진 요구를 거둬들이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뤄졌다.

요약하자면 제한적인 군사 개입이지만, 그의 시리아 개입 덕택에 푸틴은 중동의 미래를 결정할 영향력을 강화해주는 지렛대를 확보하였다. 그 덕에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위기에 쏠린 국제적 이목을 돌리게 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직후 오바마는 "러시아는 인접 국가(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지역 강국에 불과하며 이는 힘의 표출이 아니라 연약함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틴은 그런 오바마의 주장을 격퇴할 만큼 만족스러운 타당한 근거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였다. 

푸틴은 그 덕분에 추가 보너스로 국내 지지 기반도 공고히 다졌다. 그는 크림반도와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지지율이 역대 최고인 89%로 치솟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제재와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2015년 러시아는 국내총생산이 -3.7%로 위축되어 경기 침체로 이어진 시절이었다. (독자의 양해를 먼저 구하고) 강력한 지도자는 경제 현실도 극복할 수 있다는 대중적 인식을 국내 정치적으로 극명하게 증명해 보여준 사례이다. 올해 러시아 경제는 또다시 하락해 -1%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총선에서 푸틴이 지지하는 통합러시아당이 54%의 득표율로 승리해 450석 중의 343석을 차지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수렴


어느 정도는 서방의 제재 결과로 러시아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한층 결속하고 있다. 2016년 6월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이 된 이후 푸틴은 네 차례나 베이징을 방문했다. 양국 정상은 교역과 투자,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하나로 수렴하는 상호 양립하는 공동의 목표를 강조하였다.

시 주석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직면해 푸틴 대통령과 나는 2001년 중러 전략적 파트너십과 협력 관계의 정신을 더 끈기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러시아와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매우 밀접하고 합치된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96년 상하이협력기구(SCO)의 공동 창설국인 양국은 그들 스스로 '유라시아 파워'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 6월 베이징 방문 중에 푸틴은 500억 달러 상당의 58개 거래를 양국 간에 논의하고 있다고 당시에 언급했다. 러시아는 또한 10억 달러 규모의 위안화 표시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며 중국의 전자결제망을 러시아 신용카드 시스템에 연결하려는 계획도 고려하고 있다. 양국은 이미 4000억 달러 규모의 합의 당사국이다. 합의 내용을 보면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은 향후 30년간 천연가스를 중국에 제공하기로 했다.

중러 간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하나로 수렴하는 사례로 구안 유페이 국제군협력사무소장이 최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최근 파드 자셈 알 프레이즈 시리아 국방장관을 만났고 대(對)시리아 군사 지원을 담당하는 러시아 장성과 함께 회담을 열었다. 구안과 알 프레이즈는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인도주의 원조와 훈련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푸틴의 6월 베이징 방문 기간에 시진핑은 세계 여론 상에 미칠 양국 미디어의 "영향력 증진을 병행"할 수 있도록 양국의 보도 기관 사이 긴밀한 협력을 요청했다. 양국은 이미 실질적으로 국제 정보 바다에 상당히 침투해 있다. 중국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State Administration of Radio, Film, and Television)은 중국 중앙 텔레비전을 통한 중국 이야기 "전달" 사업을 2001년에 출범했다. 2009년 총국 산하 외국어 부서는 인공위성과 케이블을 통해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로그램을 전세계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푸틴이 2006년에 설치한 러시아투데이(RT)는 노보스티 브랜드 중의 하나로 러시아 통신사 노보스티가 설립한 자치 비영리 기관이며 다. 3천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국제 사건에 대한 러시아의 관점을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2006년 이후 RT 인터내셔널은 24시간 내내 속보와 다큐멘터리, 토크쇼, 토론, 스포츠 뉴스, 문화 프로그램 등을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힌두어, 터키어 등 12개국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RT 아메리카"와 "RT UK"는 각각 2010년과 2014년부터 현지 기반 콘텐츠를 송출하고 있다.

2013년~2014년 동안 1년 예산 3억 달러로 운영되던 RT는 BBC 월드서비스그룹에 비해 여전히 뒤처져 있다. BBC 월드서비스그룹은 3억 6700달러 예산을 가지고 36개 언어로 서비스한다. 푸틴은 2013년 모스크바에 있는 RT의 첨단 스튜디오를 방문한 자리에서 방송국 직원들에게 "앵글로색슨이 독점하고 있는 대중 미디어 독점을 깰 것"을 촉구했다.

중국의 글로벌 군사력 투사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패권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을 출범했다. 이에 맞서 시진핑은 국가 주석에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야심 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일대일로 사업의 목표는 그야말로 국내 정치를 지리적 전략 양상으로 재편하는 한편, 유라시아 경제 재건을 촉진하는 데 있다. 국내적으로 과도하게 치중했던 해안 지역 개발에서 서부 내륙을 개발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겠다는 취지다. 또한, 중국,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철도와 에너지 파이프라인 망으로 유럽과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2015년 2월 이우(義烏)시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1만6,156마일 노선을 달리는 첫 화물 열차 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수송 시간의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중국은 2014년 400억 달러(약 44조8천억 원)를 투자해 실크로드 펀드를 조성했다. 펀드의 목적은 일대일로 사업의 여러 길목에 있는 나라에 대한 투자 확대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또한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2008년 1.9조 달러에서 2015년 3.3조 달로 늘어났다. 이는 아직 모자란 액수이긴 하지만 중국 미래 계획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또한 2015년 1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베이징에 설립했다. 두 달 뒤, 미국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방 최초로 영국이 AIIB의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곧바로 영국의 뒤를 따랐다. 이들 국가는 다른 무엇보다도 힘차게 경제 영토를 확장하며 세계 최대의 무역 국가로 변모하는 중국을 무시할 수 없었다. 2015년 중국의 총 수출입 규모는 3.87조 달러로 미국을 추월하였다. 미국은 3.82조 달러를 기록해 60년 동안 지켜온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었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국(아세안) 10개 회원국 일부를 비롯해 29개국 상대로 제1의 교역국이 되었다. 제1 교역국 지위는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법정이 7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에 반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에도 아세안이 만장일치로 회원국 필리핀을 지지하기로 합의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판결 직후 중국은 열흘간의 일정으로 남중국해에서 러시아와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했다.

GDP의 성장을 반영하듯, 중국의 방위비 지출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 동향에 관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방위비는 2006년부터 매년 9.8%씩 증가해 2015년에 1800억 달러에 도달해 GDP의 1.7%를 차지했다. 반면 미 국방성의 2015년 예산은 5850억 달러로 미국 GDP의 3.2%다.

중국군의 4대 총부 가운데 중국 정부는 특히 해군 능력 향상과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이유는 자명하다.

해군 교리에 관한 연구에서 보여주듯 중국은 19세기 후반 미국, 독일, 일본이 정한 고전적인 패턴을 따라 세계 강대국이 되려고 한다. 첫째, 자국의 해안 방위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영해 및 해운의 안전 확보; 셋째,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해로의 보호. 중국의 경우 해로의 보호는 페르시아만 원유를 남중국해 항만으로 들여오는 일이다.

세계 강국의 포부를 향한 이러한 4단계 과정과 그 궁극적 목표는 먼 대륙으로의 군사력 투사이다. 현재 3단계에 도달한 중국은 버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에 항만을 건설하는 해상 실크로드 계획으로 마지막 4단계 목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중국 해군의 중기적 목적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누리고 있는 독점적 지위를 약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잠수함 함대를 서둘러 구축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의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지부티에 첫 해외 전진기지 건설을 위해 90에이커 부지를 10년간 임대 승인을 획득하였다. 미 국방성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74개국에 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중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기 10개국과 7개국에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확실히 중국이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적인 목표


중국 지도부는 향후 수십 년 동안에는 미국의 세계 지도력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0년 전 베이징 거점의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싱크탱크인 중국 사회과학원은 "종합국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종합국력은 100점 만점으로 면밀하게 산출한 단일 수치이다. 2015년 종합국력 수치는 미국, 중국, 러시아가 각각 91.68점, 33.92점, 30.48점이다.

일본이 35.12점으로 종합국력 2위를 기록했다. 인도는 12.97점을 받아 10위이다. 다만 굽힐 줄 모르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여망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선언했고 21세기 후반부는 인도의 시대가 될 거라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모디의 주장은 환상 속의 세상이지만, 향후 수십 년 도래할 세상이 얼마나 다극 체재의 모습을 띨 것인지 환기해 준다. 원거리 전력 투사를 논하자면 인도는 중국의 해운 상선과 군함을 감시하기 위해 인도양의 마다카스카르와 세이셸 제도, 몰디브, 스리랑카에 레이더망을 구축한 게 전부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대통령은 현실적인 관계로 1815년 나폴레옹의 패퇴 이후 한 세기 동안 유럽에 존재했던 일종의 권력 균형을 닮은 글로벌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1815년 운명의 해를 뒤로하고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러이센 군주들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같이 강력한 유일 유럽 국가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결의가 있었다. 그 결과물인 "유럽의 협조 체제"는 1815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지속되었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소련의 붕괴 직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 전까지(1992년~2008년 여름) 거침없이 행사해온 글로벌 패권을 더는 행사 못 하도록 책임지고 있다. 2008년 8월 초, 친 서방 성향의 미하일 사카쉬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분리 독립을 요구하던 남오세티야를 무력 진압으로 쟁취했지만, 러시아의 군사 행동으로 원점으로 돌아가자 부시 정부는 말로만 비판에 그쳐야 했다.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군사 점령 등 산적한 과제로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무소불위 미국 패권이 견제를 받지 않았던 일극 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하나의 이정표로 그 사건을 바라보라. 그렇게 바라봤다면 이젠 9년 차 다극 체제의 세상을 환영하라.

딜립 히로는 톰디스패치의 정규 맴버이자 저술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 <제국은 가고: 다극 체제라는 세계의 탄생>이 있다. (네이션 북스), 그의 36번째이자 최신 저서의 타이틀은 <여망의 시대: 세계화된 인도의 권력과 부, 대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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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American Power At The Crossroads huffingtonpost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 오바마 2016년에 26,000개 폭탄 투하

미카 젠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과 국가 안보 전문가인 제니퍼 윌슨 외교협회 연구원이 추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에 26,000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시리아는 12,192개의 폭탄을 맞았는데, 이는 오바마의 폭격 대상 국가 중에 가장 높은 수치다. 간발의 차로 2위가 된 이라크는 12,095개의 폭탄을 맞았다. 오바마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작년에 7개국을 상대로 모두 합쳐 최소 26,171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젠코와 윌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추산치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한 해 임기에만 7개 국가에 26,171개 폭탄을 투하했다. 이 수치는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리비아에 대한 공습 데이터만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로 제공된 것을 고려할 때 의심할 바 없이 낮게 평가된 것이다. 국방부의 정의에 따르면 1회 '폭격'에는 다수의 폭탄과 탄약이 관여되어 있을 수 있다. 2016년에 미국은 2015년보다 3,027개 더 많은 폭탄을 투하했다. 그리고 이는 리비아가 공습 대상 국가로 하나 더 추가된 결과다.

젠코의 2015년 추산치는 낮았었다. 그는 2015년은 2016년에 비해 거의 3,000개가 적은 23,144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고 추산했다. 이는 폭격 대상은 변함이 없지만, 선진 무기 사용에 관해서는 오바마의 방아쇠 행복이 급격히 증가했음을 말해준다: 2015년 투하된 폭탄 대다수(22,100건)가 이라크와 시리아에 떨어졌다.

평화상 수상자 대통령이 7개국 이상에 이렇게 많은 폭탄을 터트릴 수 있었으니 우리는 모두 앞으로 있을 폭격은 어떨지 매우 우려해야 한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원문 및 참조 링크

  1. A Nobel Peace Prize Winner Dropped 26,000 Bombs in 2016 AntiMedia
  2. Donald Trump Is Dropping Bombs at Unprecedented Levels Foreign Policy


2018년 4월 29일 일요일

미국은 어떻게 시리아 테러리스트를 무장했나

군사위원회와 외무위원회 소속 3선의 털시 개버드 여성 하원 의원은 시리아 내부 테러리스트 조직뿐만 아니라 그들 조직과 직접 협력하는 조직에 대해 미국의 지원을 완전히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똑같이 중요하게 이 법안은 테러 분자들과 협력자에게 무기를 공여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와의 군사 협력이나 다른 형태의 군사 협력을 금지하도록 한다.

개버드의 "테러리스트 무장 금지법"은 의회가 오래전에 경종을 울렸어야 했을 시리아 내전 속 분쟁과 관련된 미국의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2012~13년 오바마 행정부는 바샤르 알 아사드 권력을 강제 퇴출할 수 있도록 수니파 동맹국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시리아와 비 시리아 무장 단체에 무기를 공여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2013년에 미 행정부는 CIA가 판단하기엔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 아사드 집단에 무기를 공여하기 시작했다. 즉, 정도가 제각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규합했다는 의미다.

아사드 정권을 보다 민주적인 대안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 해당 정책은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 전선를 아사드를 위협할 주축 세력으로 키우는 일을 실제 도왔다.

반군을 무장하는 이 정책의 지지자들은 시리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반감시킬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대(對)시리아 미국 정책의 역사에서 제기되는 진짜 문제를 빠트리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정책은 알카에다와 테러 단체의 근절이라는 "테러와의 전쟁"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내다 버렸다. 미국은 그 대신 대테러 관련 미국의 이해관계를 수니파 동맹국들의 이해관계에 종속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중동의 심장부에 새로운 테러리스트 위협의 생성을 도와왔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의 전복을 다짐하는 군사 단체를 무장하는 정책이 처음 2011년 9월에 시작될 당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사드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라는 수니파 동맹국의 압력을 받을 시점이다. 아사드 반군 수립 의지가 확고한 이들 수니파 동맹국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이다. 터키와 걸프만 수니파 정권들은 미국이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을 반군에 공여하기를 원했다고 중동 문제에 관여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직 관리가 밝혔다.

오바마는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공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다만 그는 반(反)시리아 단체 무장을 위한 비밀 군사 지원 캠페인 수행을 돕는 미국 병참 지원을 제공하기로 동의했다. CIA가 관여한 반 아사드 병력 무장은 벵가지에 비축되어 있었던 카다피 정권의 무기고에서 무기를 이송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시모어 허시의 2014년 탐사 보도에 상세히 나와 있듯이 CIA 통제를 받는 무기 회사들은 병참을 관리하는 미군 요원을 활용하여 벵가지 군사 항구에서 시리아의 소규모 항구 두 곳으로 무기를 이송했다. 반군 무장 프로그램의 기금은 주로 사우디 사람들이 조달했다.

기밀 해제된 2012년 10월 국방정보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8월 말 선적한 무기는 저격용 소총 300정과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 100기와 유탄 300발, 곡사포 400기가 포함된다. 무기 수송마다 많게는 10개의 컨테이너 선적을 취급했으며 각 컨테이너에는 약 4만 8천 파운드의 화물을 적재했다고 국방정보국 보고서는 적시했다. 이는 선적 당 최대 250t의 총 무기 탑재량을 의미한다. CIA가 한 달에 한 차례의 수송을 기획했더라도 2011년 10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총 2,750t의 무기가 결국에 시리아로 향했다. 아마도 실제 무기 선적량은 언급한 숫자의 갑절일 공산이 크다.

2012년 9월 CIA의 비공식 무기 선적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그 때가 미 CIA의 무기 수송 작전을 지원을 위해 사용되었던 벵가지의 대사관 부속 건물을 리비아 무장 세력이 공격하고 불 태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이다. 그러나 그즈음에 반 아사드 세력을 무장하기 위한 더 큰 채널이 열리고 있었다. CIA는 1990년대 발칸 전쟁에서 남은 대량의 무기를 팔겠다고 제안한 크로아티아 고위 관리와 사우디 사람들이 접촉하도록 주선했다. 그리고 CIA는 여러 다른 구소련 국가 정부와 무기 판매상이 출처인 무기의 쇼핑을 사우디에 알선했다.

CIA 리비아 프로그램과 크로아티아로부터 조달한 무기가 넘쳐나면서 사우디와 카타르 사람들은 2012년 12월 터키행 군용 화물기 운항 횟수를 증편했고 다음 두 달 반 기간에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았다. 뉴욕 타임스는 2013년 3월 중순까지 총 160편의 항공편이 그런 이유로 운항했다고 보도했다. 걸프만에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화물기인 일류신 Il-76 항공편은 회당 대략 50t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고로 2012년 말과 2013년에 터키 국경에서 시리아로 8000t의 무기가 쏟아져 들어갔다.

한 미국 관리는 새로운 차원의 무기 배달을 시리아 반란군에 제공한 것을 일컬어 "무기 폭포수"라고 했다. 발칸 조사 네트워크와 조직범죄 및 부패보고 프로젝트는 1년에 걸친 조사에서 사우디가 강력한 재래식 군대를 시리아에 건설할 작정이었음을 밝혀냈다. 2013년 5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소재 무기 회사에서 구매한 무기의 "최종소비자증명"에는 중무장한 탱크도 관통할 수 있는 소련이 설계한 PG-7VR 로켓 발사기 500기와 탄두 2백만 개가 적시되어 있다; 콘커스 대전차 미사일 발사대 50문과 미사일 500개, 장갑차에 장착한 대공포 50문, 중장갑차를 관통할 수 있는 OG-7 로켓 발사기 파쇄탄 10,000발; 트럭에 장착된 BM-21 GRAD 다중 로켓 발사기 4기, 이 4기 중 1기당 1회 사격에 사거리가 12 ~ 19마일인 로켓을 40발과 GRAD 로켓을 20,000발 발사한다.

사우디가 발주한 같은 세르비아 무기 회사의 다른 최종사용자증명 내역에는 탱크 300대,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 2000기, 다른 로켓 발사기 16,500기, ZU-23-2 대공포 탄두 1백만 발, 기타 다양한 총기류 탄창 3억 1500만 개가 열거되어 있다.

두 차례 해당 구매는 사우디가 발칸 8개국으로부터 이후 몇 년에 걸쳐 획득한 무기 총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탐사 기자들은 사우디가 2015년에 가장 많은 무기 거래를 구소련 국가들과 했으며, 당시 거래된 무기에는 공장 생산 설비에서 막 나온 무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사우디 사람들이 구매한 무기 중 거의 40%는 2017년 초까지도 인도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우디 사람들은 수 년 앞을 내다보고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지속하기에 충분한 무기 계약을 이미 마쳤다.

지금까지 사우디의 가장 중요한 무기 구매를 하나만 꼽자면 발칸 제국의 무기가 아니라 미국산 무기 구매였다. 다름 아닌 10억 달러 상당의 토우 대전차 미사일 15,000기를 사우디에 판매한 미국의 2013년 12월 거래이다. 이 거래는 그해 반아사드 무장 단체에 살인 무기 지원을 금지했다가 번복한 오바마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아울러 미국의 재량에 의해서만 이들 대전차 미사일을 시리아 단체에 나눠 주기로 합의했다. 토우 미사일은 2014년 시리아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시리아 군사 균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로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봇물 터지듯 유입된 무기와 외국 전투원 2만 명 유입이 더해져 시리아 분쟁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했다.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 알 누스라 전선(현재는 타흐리르 알샴 혹은 레반트 자유인민위원회로 개명)과 동맹 단체를 가장 강력한 반아사드 시리아 단체로 만드는 것을 돕고, 이슬람 국가(ISIS)의 부상을 가져온 것은 이런 군비 조달이었다.

2012년 말 즈음, 그해 초 시리아에 유입되기 시작한 상당량의 무기로 인해 알카에다의 시리아 점유가 앞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이 미국 관리가 보기에 자명해졌다. 2012년 10월 미국 당국자들이 뉴욕 타임스에 처음으로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내용을 보면 전년도 미국의 병참 지원과 함께 시리아의 반군 무장 단체에 이송된 무기 대부분이 "이슬람 강경파 지하디스트"에 넘어갔다. 이 말은 자명하게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를 의미한다.

사우디, 터키, 카타르 사람들은 유입된 해당 무기를 정부 목표물 공격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군대에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알 누스라 전선과 동맹 단체가 유입 무기의 주요 수령자가 되었다. 그리고 터키 국경 너머로 쏟아져 들어간 외국인 지하디스트 수천 명의 지원을 받던 알 누스라 전선(Al Nusra Front)는 2012년 여름 무렵 이미 "자유 시리아군" 여단과 공조해 대 시리아 정부 공격을 주도하고 있었다.

2012년 11월과 12월 알 누스라 전선은, 찰스 리스터가 그의 저서 "시리안 지하드"에서 기록한 대로, 자칭 "자유 시리아군"이라는 사람들과 여러 전선에서 공식적인 "공동작전실"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권이 선호한 이에 적합한 사령관은 압둘 자바바 알 오카이디 대령이 있다. 그는 전직 시리아 군부 장교로 소위 알레포 혁명군사위원회의 수장이었다. 시리아에서 퇴거한 후에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한 로버트 포드(Robert Ford) 대사는 2013년 5월 오카이드를 공개적으로 방문하여 자유 시리아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오카이드와 그의 부대는 알레포 연합의 손아래 파트너였다. 알레포 연합 중 알 누스라가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반군 집단이었다. 그런 현실은 "이슬람 국가"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하는 비디오 장면이나, 2013년 9월 시리아 정부의 메나그 공군 기지 점령을 기념하는 알레포 지역의 지하디스트 사령관과 합류하는 모습에 분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2013년 초 무렵 기실 어떤 군대와도 합류한 적이 없던 군사 조직인 "자유 시리아군"은 시리아 분쟁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잃었다. 새로운 반(反) 아사드 무장 단체는 대표적인 분쟁 전문가가 관측한 바론 자신을 스스로 식별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래서 터키로부터 무기가 여러 전장에 도착했을 때 모든 비 지하드 단체는 유입 무기를 알 누스라 전선과 그들과 친한 반군 동맹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을 이해한 상태였다. 시리아 북부 한 도시를 다룬 2013년 초 맥클라치 신문 기사는 "자유 시리아군"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알 누스라와 그들 여단 간의 군사 합의체가 어떻게 무기 분배를 관장했는지 보여준다. 그들 부대 중 하나인 승리 여단(Victory Brigade)은 알카에다의 가장 중요한 군사 동맹인 아흐라르 알-샴(Ahrar al Sham)과 함께 "공동작전실"에 참여하며 몇 주 전 전략 소도시에 대한 성공적인 공격을 치렀다. 방문 기자는 승리 여단과 아흐라르 알-샴이 러시아산 RPG27 어깨 거치 로켓 추진 대전차 유탄과 RG6 유탄 발사기를 포함하는 새롭고 정교한 무기를 과시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승전 여단이 아흐라르 알-샴과 새로운 무기를 공유했는지 질문을 받자, 아흐라르 알-샴 대변인은 대답했다. "물론 그들은 우리와 무기를 공유한다. 우리는 함께 싸운다."

터키와 카타르는 의식적으로 알카에다와 최측근 동맹인 아흐라르 알-샴을 무기 체계의 수령자로 선택했다. 2013년 말과 2014년 초에는 터키 국경 바로 남쪽에 있는 하타이 주를 향해 무기를 싣고 가던 트럭 여러 대를 터키 경찰이 차단했다. 나중에 터키 경찰의 법정 증언에 의하면 해당 트럭에는 터키 정보 기관원이 탑승해 있었다. 하타이주는 아흐라르 알-샴이 장악했다. 실제로 터키는 아흐라르 알-샴을 주요 시리아 고객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고 아틀란틱 카운슬의 중동 라피크하리리센터 수석 연구원인 페일살 이타니는 말한다.

리비아 극단주의자 집단에 무기를 수송하는 일에 관여한 카타르 정보 당국자는 터키에서 시리아로 유입되는 무기 흐름을 감독한 핵심 인물이었다. 지난 수십 년 간 터키 시리아 국경 근처의 외부 무기 공급업자들 사이 논의에 익숙한 한 아랍 정보 기관원은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David Ignatius)에게 말하길, 참가자 중 한 명이 외부 이슬람 세력이 지하디스트리스트의 덩치를 키워주고 있지만, 비(非) 이슬람 단체는 그 존재가 미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하자, 카타르 작전 책임자는 "도움만 된다면 알카에다에 무기를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카타르 사람들은 중동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알 누스라 전선과 아흐라르 알-샴 모두에 무기를 몰아 주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A) 참모들은 미국이 시리아와 리비아 거점 극단주의자들을 무장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을 카타르에 표시하기 위해 카타르 알-우데이드(Al-Udeid) 미국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중대를 철수하자고 2013년에 제안했다. 그러나 미 국방성은 카타르 기지 접근권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NSA의 가벼운 압력을 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허쉬 기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2013년 5월 백악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리셉 타입 에드로안 정부가 지하디스트를 지원하는 것을 놓고 터키 총리와 정면으로 붙었다. 오바마는 "우리는 당신이 시리아에서 급진주의자들과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안다"고 말했다고 허쉬 기자는 전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중반에 한시적으로만 터키와 알 누스라(Al Nusra)의 상호 협력 문제를 다뤘다. 프랜시스 리치아돈(Francis Ricciardone) 미 대사는 앙카라를 떠난 직후 터키는 "솔직히 말해서 상당 기간에 걸쳐 알 누스라(Al Nusra)를 포함해 (시리아 반군) 단체와 협력해 왔다."고 런던 소재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 밝혔다. 그는 2011년부터 2014년 중반까지 터키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터키의 최대 우방인 미국은 시리아 거점 테러리스트를 무장한 터키를 공개적으로 견책하게 된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2014년 10월 터키의 역할에 대해 비판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사로 나선 바이든은 즉석해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동맹국이다"고 불평했다. 바이든은 우리 동맹국이 무기를 공급한 세력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알 누스라와 알카에다, 지하디스트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의도적으로 지하드 운동을 도왔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당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신속히 사과했다. 그러나 포드 대사는 BBC 방송에 출연해 "바이든의 발언 취지는 동맹국이 극단주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6월에 오바마 대통령은 반란군 여단에 대한 직접적인 미국의 살상 무기 군사 원조를 처음으로 승인했다. 2014년 봄까지 사우디로 옮겨진 1만 5천 기의 미국산 BGM-71E 대전차 미사일이 선별된 반(反) 아사드 단체의 수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CIA는 무기를 전달 받는 단체는 알 누스라 전선과 반군 연맹과는 협력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부과했다.

그 조건에 비추어 미국 정부가 알 누스라 전선과는 분리 독립을 유지하기에 충분히 강한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CIA 검증 명단에 오른 반군 단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무장 단체로 알카에다 계열 단체의 강제 흡수에 매우 취약했다. 2014년 11월 알 누스라 전선은 CIA 지원 단체 중 가장 강력한 2대 무장 단체인 하라카 하즘(Harakat Hazm)과 시리아혁명전선을 연일 공격했고, 토우 대전차 미사일과 GRAD 로켓를 포함한 중무기를 탈취했다.

2015년 3월 초 하라카 하즘 알레포 지부는 자진해서 해체되었고, 알 누스라 전선은 거기서 확보한 토우 미사일과 기타 장비를 사진에 담아 자랑했다. 2016년 3월 알 누스라 전선은 이들리브 지역의 13사단 본부를 공격해 모든 토우 미사일을 탈취했다. 그달 이후 알 누스라 전선는 포획한 토우 미사일을 사용하는 그들 병력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공개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 누스라 전선이 CIA의 유익한 선물을 획득한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알 누스라 전선은 2014~15년 겨울 가까운 연맹인 아흐라르 알-샴과 함께 이들리브 지방의 완전한 점령을 위한 군사 캠페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와의 거리 두기 가면을 벗어던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알카에다 지부와 연맹 단체로 구성된 '정복의 군대'(Army of Conquest)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군대 창설을 위해 알 누스라와 협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이 통합 캠페인을 위해 더 많은 무기를 제공했으며 터키는 무기 이동의 편의를 도왔다. 3월 28일 반군 통합 캠페인이 출범한 지 4일 만에 "정복의 군대"는 이들리브시를 성공적으로 장악하였다.

CIA 원조로 선진 무기를 확보했던 비(非) 지하드 무장 단체는 이들리브시에 대한 초기 공격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리브를 점령한 이후 시리아 소재 미군 주도의 공동작전실은 시리아의 잔여 지방 통제의 통합을 위한 반군 통합 캠페인에 지금 합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이들리브 소재 CIA 지원 무장 단체에 보냈다. CIA 지원 단체인 지하디스트 및 다른 무장 단체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인 연구가 리스터에 따르면 정의의 기사 여단과 13사단은 미 CIA의 제지 없이 알 누스라 전선과 함께 이들리브 통합 캠페인에 합류했다.

이들리브 공세가 시작됨에 따라 CIA 지원 단체는 토우 미사일을 더 많이 확보해 나갔으며 이제는 토우 미사일을 사용하여 시리아군 탱크에 매우 효과적으로 대항하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정책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단체와 알 누스라 전선 사이의 연맹을 지지하는 시리아 전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

이들리브 신 연맹은 알레포로 이어졌는데 그곳에서 누스라 전선과 가까운 지하디스트 단체는 CIA 지원을 받는 알레포 지역 9개 무장 단체와 파타 할랍("알레포 정복")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령부를 구성했다. CIA 지원 단체들이 알 누스라 전선과 협력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알카에다의 지부가 새로운 사령부(파타 할랍) 참여 명단에 공식적으로 올라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령부에 대한 보도가 분명히 암시한 것처럼, 이 캠페인은 CIA가 자기 고객에게 계속 무기를 공여하는 방식의 하나 일 뿐이다. 사실상 알카에다와의 동맹이지만, 상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의 수니파 동맹국이 알 누스라 전선과 연맹 단체에 무기를 공여할 수 있도록 돕고, 정교한 무기를 시리아 전쟁터에 쏟아부어 필연적으로 알 누스라의 수중에 떨어지게 하거나 무장 단체 전반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해 주는 등 시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알카에다의 권력을 확장해준 주된 책임이 미국의 정책에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국방부는 미국이 천명한 테러 대테러 작전에 대한 이 같은 배신을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털시 개버드의 법안에 따라 강제하든, 의회나 백악관이 그런 노골적인 배신에 맞서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가 패망했더라도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의 권력 통합을 계속 공모할 것이다.

가레스 포터(Gareth Porter )는 독립적인 기자이자 2012 마사 겔혼(Gellhorn) 저널리즘 상 수상자이다. 그는 "가공의 위기: 이란 핵 공포 속 숨겨진 이야기"(저스트 월드 북, 2014년 작)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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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How America Armed Terrorists in Syria Gareth Porter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미국이 시리아 전략을 망쳐버린 진짜 배경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사드 정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미국 국가 안보 엘리트와 미디어로부터 맹공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진짜 전략적 실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또다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시리아 반군을 창설하고, 무장하게 시키고 시리아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수니파 동맹국들의 야욕에 동조하기로 한 애초의 결정이다.

시리아 정책에 대한 내부 논의에 정통한 전직 오바마 행정부의 한 관리가 익명을 조건으로 필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자면 운명적 결정이 어떻게, 어떤 이유로 정해졌는지 새로운 시각을 조명해준다.

이 전직 관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 세력의 무장 지원을 위한 첫 번째 조치를 취했을 때 이란이나 러시아가 외부 무장 세력에 대한 대응으로 시리아 정권을 대신하여 직접 개입할 위험이 있다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바마의 참모들은 그럴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 정책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2011년 봄과 여름에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저항이 발생한 이후에 시작된다.

2011년 8월, 미 국가 안보 관리들은 오바마에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사임 요구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오바마는 아사드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오바마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할 의향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반군 무장 정책이 굳어진 정책이 아니라 단순한 제안으로 판단했다."고 전 관리는 말했다.

그러나 그 직후 미 행정부의 정책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아사드 전복을 돕겠다는 공약을 하라고 미국을 압박하는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에 대한 대처 방법이 그것이었다.

2011년 9월 사우디와 터키는 미국이 시리아 반군 세력에 무기를 제공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미국이 대공 미사일과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하기를 원했다"고 전 관리는 회고했다.

터키는 심지어 아사드 전복을 위해 시리아에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미국과 나토군이 터키를 보호하기 위해 "비행 금지 구역"을 만들기로 합의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시리아 반군에게 미국 무기를 제공하기를 거부했고, 아울러 아사드의 적인 수니파 집단에 중무기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군소 무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동조할 생각이 없었다."고 전직 관리는 밝혔다.

데이빗 페트리우스(David Petraeus)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수니파 동맹국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리비아 정부가 벵가지에 보관 중인 군소 무기를 터키로 옮기는 계획을 고안했고, 오바마는 이를 승인했다.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의 2014년 기사를 공인하듯 이 전직 관리는 "최고의 비밀 사안이었지만, 중동 관계자는 입소문을 통해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 두 정책 결정의 조합은 반신반의 하던 오바마로 하여금 아사드 정권의 무장 전복을 약속하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문관들은 아사드의 몰락을 불가피하다고 믿었다고 전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과 전 국방부 당국자 데릭 콜렛(Derek Chollet) 회고가 맞다고 전 행정부 관리는 확인하였다.

일부 고문관은 아사드가 콜레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간교와 강기"가 없다고 믿었다.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과소평가


더 중요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9월 중요한 ​​시리아 정책 결정을 내렸을 때 이란 사람들이 참전을 각오할 만큼 아사드 정권 유지가 중요한 국가 안보상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그 누구도 오바마에게 경고하지 않았다고 전직 관리는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문관들은 대신에 이란이나 러시아가 아사드 권력 유지를 위해 상징적인 원조 그 이상을 제공할리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끝없는 종파 간 유혈 전쟁의 위험이 없다고 봤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모두 아사드 대통령의 위기 대응에 대한 불만을 성토했으며,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는 아사드가 더 유연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그렇다면 아사드를 구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직 관리는 회고했다.

그러나 실상 이란은 시리아의 역할이 헤즈볼라의 물자 보충을 위해선 결정적이라고 여겼다. 헤즈볼라가 보유한 대용량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이란의 억지력에 필수 요소였다. "시리아는 이란과 헤즈볼라의 총체적인 안보 그 자체였다."고 전 관리는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고문관(보좌관)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국제 연합이 꾀하는 아사드 전복을 예방하는 것이 이란의 국가 안보상 최대 이해관계라는 점에 대해 "일말의 이해"도 없었다.

전쟁이 전개되면서 간과했던 주요한 실책이 확연해졌다. 2012년 7월 레바논 국경 인근 쿠사이르 시가 자유 시리아군에 의해 점령된 후, 시리아 남부의 반군 세력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온 군사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후 몇 달 안으로 알 누수라 전선 병력이 시리아 전쟁의 바로 그 전선에 깊이 개입했음이 확실해졌다.

헤즈볼라의 반격


2013년 5월, 베카 계곡 소재 헤즈볼라 병력은 쿠사이르 시 수복을 위해 아사드 정권의 반격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는 이란 당국의 요구에 따른 것임이 명백하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개입은 그때까지 전쟁에서 최대 패배를 반군 세력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오바마의 국가 안보팀은 수니파 연합의 체제 교체(레짐 체인지) 전략에 협조하겠다는 애초 결정의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 결정의 판돈을 두배로 올렸다.

존 케리(John Kerry) 미 국무부장관은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여 군사력을 이용하라는 강력한 압력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가했다.

이에 따라 2013년 6월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으로 시리아 반군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이 결국 나왔다. 미국의 공약이 한층 깊어지다가 2013년 8월 다마스쿠스 교외 지역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 직후인 9월 미국은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심지어 알 카에다의 누스라 전선(Nusra Front)이 공공연히 지배하고 있는 무장 반군에게 대전차 무기를 제공하겠다는 수니파 국가들의 제안에 동의하기까지 했다.

개입 확대


그 일로 누스라 전선이 이끄는 사령부는 이들리브 지방을 정복했고, 그 후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국가 안보팀이 분명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고문관들은 극히 위험한 전쟁 상황에 휘말리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들의 판단 착오로 인해 시리아 문제를 망쳤다.

그러나 오바마와 그의 고문관들은 기껏해야 체제 교체(레짐 체인지) 정책에 대해 반신반의한 게 전부였고 미국의 직접 개입도 제한을 두었지만, 시리아 체제 교체(레짐 체인지) 정책이 내포한 위험을 않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선 더 심도 있는 설명이 존재한다.

미 행정부는 수니파 동맹국들과의 상호 목적이 상치(相馳)되는 것을 기피했다고 전 관리는 회고했는데, 그 까닭은 해당 세 국가와의 동맹 관계에 직접적인 미국의 군사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바레인 거점 미 해군 기지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터키는 인시를릭(Incirlik) 공군 기지를 통제했으며, 카타르는 역내 미군 작전의 중심이 된 육상 기지와 공군 기지를 통제했다.

따라서 시리아 국민에 미친 후과로 보자면 재난과도 같은 실수였지만, 영원한 전쟁 국가가 돼버린 미국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강력한 국가 안보 기관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들의 제일 관심사는 기존의 군사 및 정보 체계와 군사 관계가 위태롭게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가져온 역효과를 상기해 볼 때 아사드 반군 무장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있음에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가레스 포터(Gareth Porter )는 독립적인 탐사 기자이자 2012 마사 겔혼(Gellhorn) 저널리즘 상을 받았다. 그는 새로 발간된 "가공의 위기: 이란 핵 공포 속 숨겨진 이야기"의 저자이다.

이 기사에 포함된 견해는 저자에게 귀속하며 미들이스트아이(Middle East Eye)의 편집 방침을 반드시 반영하지는 않는다.

사진: 2016년 9월 4일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담 기자 회견에서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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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Behind the real US strategic blunder in Syria Gareth Porter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보도 매체가 언급하지 않는 시리아 전쟁에 관한 10가지 사실

(안티미디어) ― 언론기업은 시리아에서 진행 중인 역내 분쟁의 책임을 오롯이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만 전가하는 보도를 정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언론기업은 이러한 서술과 상반되는 사건 보도를 간헐적이되 하긴 한다. 다만 보도 비중이 작긴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모두 합치면 시리아 분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다.
10: 바샤르 알아사드는 버락 오바마보다 지지율이 높다.

아사드 정권이 합법적인 정권이 아니니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오바마는 주장하고 있지만, 기실 2011년 분쟁이 불거진 이래로 아사드는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왔다. 아사드 대통령이 어떤 (선거법)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국제 관측통이 밝힌 2014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그가 비록 심각한 인권 유린 혐의를 받고 있지만, 시리아 국민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면 오바마는 자신이 승리한 2012년 선거에서 투표율이 겨우 53.6%밖에 되지 않았는데, 겨우 1억 2,910만 유권자만 표를 행사했다. 이는 약 1억 8,980만 명의 미국민이 오바마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의 지지율은 현재 50%대에 머무르고 있다.

9: "온건"한 반대파가 실종됐다.

시리아에는 과거라면 모르겠는데 더는 "온건"한 반대파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소위 자유 시리아군(FSA)은 극단주의자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미국은 이를 파악하고도 시리아 반대 세력을 계속 지원해왔다. 뉴욕 타임스는 시리아에 보낸 무기 대부분이 지하디스트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2012년 보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기밀 분류된 DIA 보고서를 보면 이슬람 국가(ISIS)의 부상을 다음과 같이 예고한다:

"상황이 잘 안 풀리면 시리아 동부에 공식 혹은 비공식 살라피스트 공국이 수립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형국은 시리아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반대파를 지원하는 세력이 원하던 그대로이다.

또한 자유 시리아군(FSA)의 지휘관은 자신의 전투원들이 정기적으로 알 누스라(시리아의 알 카에다)와의 합동 작전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샤리아 법에 따른 시리아 통치를 보고 싶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온건파란 의미 역시 "알카이다 계열 광신도"가 될 수 있음이 자명하다.

8: 아사드는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전혀 없다.

2013년 초에 처음으로 자행된 대표적인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조사에서 유엔은 제시된 증거로 볼 때 해당 공격이 시리아 반대 세력이 자행한 공격일 공산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서방에서는 당시 잔악 행위를 아사드의 소행으로 낙인찍었다. 2013년 8월 공격에 대한 UN의 후속 조사에서는 아사드의 세력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역대 퓰리처상 수상자인 언론인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는 2013년 12월 당시 상황의 처리 방식상에 여러 결함을 부각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공격 직전 수개월 동안 미국 정보기관은 일련의 높은 수준으로 기밀 분류된 보고서를 생산했다.… (이 보고서는) 알 카에다와 계열의 지하디 단체인 알 누수라 전선(Nusra Front)이 사린 제조기술을 마스터했으며 사린을 대량 생산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언급하고 있다.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했을 때 알 누수라는 용의자였어야 했지만, 미 행정부는 아사드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했다."

7: 시리아 정권 타도는 9/11 직후 채택된 계획 일부였다.

9/11 테러 직후 웨슬리 클라크 4성 장군이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펜타곤은 5년 안에 7개 나라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채택했다. 해당 국가는 이라크,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이란이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이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 이스라엘은 2006년 레바논을 수중에 넣으려고 시도했었다. 리비아는 2011년에 파괴되었다. 서방의 개입 이전에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생활 수준이 높은 국가였다. 2015년 한 해에만 시리아의 유엔 인간개발지수 순위가 27계단 하락했다. 미국의 무인 비행기가 소말리아 상공을 날고 있고, 미군이 남부 수단에 주둔하고 있다. 수단은 잔인한 내전 이후 분단 상태이다. 2011년 이후 시리아는 치명적인 전쟁의 현장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란만 남아 있는데 밑에서 다루기로 한다.

6: 이란과 시리아는 상호 방위에 합의했다.

2005년 이후 이란과 시리아는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했다. 이란 정부는 이 합의를 완전히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군대와 1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한도, 훈련 및 조언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시리아 정권에 제공했다. 그러나 시리아 분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시리아 편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국은 이란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러시아가 최근 몇 달에 걸쳐 시리아 군사 개입에 나선 것은 양국의 협박이 공치사가 아님을 증명해 준다. 그들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그들의 믿음을 입증했다.

이란은 그간 미국 외교 정책 집단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조지 부시는 자신의 임기 중에 이란 공격에 필요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시도가 부족했기보다는 제재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역내에서 이란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을 공격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이란의 역내 영향력 확산을 저해할 수 있는 열강이 존재한다면 궁극적으로 이란의 약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5: 전임 애플 CEO는 시리아 난민의 아들이다.

애플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시리아 사람의 아들이며 1950년대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런 사실이 특히 웃긴 것은 외국인 혐오증, 이슬람 혐오증, 인종주의 및 난민에 대한 증오의 크기를 볼 때 그렇고 스티브 잡스가 이민자에게, 심지어 대통령 도전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니 웃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래 기술 개척자들이 결코 미국에 당도하지 못할 조건을 만들 것인가? 트럼프의 수사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4: 이슬람 국가(ISIS)는 시리아 분쟁이 아니라 이라크 침공의 산물이다.

이슬람 국가는 애초에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로 알려졌으며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유명세를 크게 얻었다. 잘 알려졌듯이 이라크 침공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라크에 알 카에다의 존재가 없었는데 침공 이후 생겨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3년 5월 폴 브레머(Paul Bremer)가 대 이라크 대통령 특사 역할을 맡았을 때, 그는 경찰과 군대를 해산시켰다. 브레머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고위급 군 관계자들을 포함해 40만 명에 가까운 전직 군인을 해고했다. 해고된 장군은 현재 ISIS 내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대량 해고가 없었더라면 ISIS는 존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슬람 국가(ISIS)는 전부터 미국 안보 기관에 의해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라고 알려졌지만, 이들 전투원은 리비아시리아에서 서구의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아젠다의 주축이 되었다. 이라크인과 시리아인이 합세한 알 카에다 계열 단체는 2014년 시리아 국경이 접한 곳에서 통합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본격적인 테러 집단을 마주하게 되었다.

3: 터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원했지만, 아사드가 거절했다.

2009년 카타르는 사우디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시리아와 터키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제안했었다. 아사드 대통령은 카타르의 제안을 거부하고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경유지에서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완전히 배제하는 합의안을 이란과 이라크와 체결했다. 그 후로 터키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타도를 추구하는 반대 세력의 확고한 후원자였다. 전체적으로 그들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무기를 빌려주고, 광신적인 이데올로기 확산을 장려하고, 국경 너머로 전투원을 밀입국시키는 것을 도왔다.

이란-이라크 파이프라인은 역내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다른 주요 OPEC 산유국이며 라이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을 약화한다. 미국의 동맹국을 경유하지 않고 유럽으로 가스를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할 때, 이란은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미국 달러를 완전히 배제하는 협상에 합의할 수 있다.

2: 유출된 전화 통화 내용을 보면 터키는 이슬람 국가 전투원에게 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시리아 정권과 싸우는 강경파 이슬람 주의자들에 대한 터키의 지원은 광범위하다. 기실 지하디스트는 터키 국경을 "지하드의 관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6년 5월 터키는 도가 지나쳐 ISIS 전투원에게 값 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경이라는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터키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잠시 그 의미를 새겨보자.

1: 시리아 분쟁에 대한 서양 언론의 주요 정보원은 영국 코번트리(Copventry)에 있는 티셔츠 가게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당신이 뉴스를 읽는다면, 당신은 주류 매체가 인용하는 시리아인인권전망대(SOHR)라는 웅대한 이름의 단체를 당연히 들어봤을 것이다. 소위 "전망대"는 시리아 분쟁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잉글랜드 코번트리(Coventry)에 있는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운영되지만, 아직도 가장 존경받는 서구 보도 매체(예로 BBC, 로이터, 가디언인터네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그의 자격 증명서로는 동내 길가에 티셔츠 가게 주인이라는 것과 시리아 현직 대통령을 반대하는 악명 높은 반체제 인사라는 점도 포함된다.

***

이 기사에 실린 많은 정보가 주류 보도 매체에서 나왔음에도 기사 유통망 종사자들은 이 모든 줄거리를 한대 모아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대중에게 전달하길 거부한다.

아사드는 잔인할 수도 있으며, 파다한 인권 유린 의혹에 대해 재판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다른 정황이 비 사실이 되거나 무의미하게 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중동 전쟁의 길로 말려 들어가기 전에, 더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과 테러 공격 확대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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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본: 10 Facts the Media Won’t Tell You About the War in Syria The Anti-Media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독일 최대 공영 TV 뉴스 방송사: 시리아 화학 공격은 "연출 되었을 공산이 아주 크다"

독일 국영 방송사 제2텔레비전(ZDF)의 선임 특파원은 시리아 현지 두마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조사한 내용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전하는 과정에서 유럽인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베테랑 기자인 올리 각(Uli Gack)은 4월 7일 화학무기 공격 주장과 관련해 여러 목격자를 인터뷰한 뒤 그들의 증언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두마 화학무기 공격은 연출되었을 공산이 아주 큽니다. 엄청나게 많은 이곳 사람들은 매우 확신하는 듯합니다." 독일 공영방송 기자가 만난 모든 현지 시리아인들은 시리아 정부가 민간인을 상대로 가스 공격을 했다는 널리 퍼진 혐의에 대해 일언지하에 일축한 것으로 보인다. 소위 가스 공격을 빌미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다마스쿠스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제2텔레비전 호이쳐(프로그램): 세계는 금지된 화학 무기가 두마에서 사용되었는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올리 각 ZDF 특파원이 시리아 현지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대규모 난민 캠프에 갔었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했습니다. 그곳에서 문제의 공격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요?" 이에 각 특파원은 응답했다. "두마 화학무기 공격이 연출되었을 공산이 큽니다. 엄청나게 많은 이곳 사람들은 매우 확신하는 듯합니다."

독일 ZDF 보도는 서방 언론인 최초로 두마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던 베테랑 영국 언론인 로버트 피스크의 조사와 일치한다. 피스크는 이번 주 초 이렇게 보도했다. "폐허가 된 마을 사이에서 제가 많은 사람과 예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가스 관련 이야기는 '단 한번도 믿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가스 이야기는 보통 무장한 이슬람 단체가 떠드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독일 제2텔레비전(ZDF)는 독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영 채널 중 하나이다. 이 방송국은 시민들이 지불하는 가정용 라이센스 비용을 통해 일부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 호이쳐 프로그램은 아마도 독일 전역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중 뉴스 프로그램일 것이다.

생방송으로 전해진 해당 호이쳐의 보도에 따르면 일부 목격자들은 이슬람 반군이 희생자들을 염소로 살해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후 '아사드 화학무기 공격'이라고 주장했다고 ZDF에 말했다. 각 기자는 화학무기 공격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과 인터뷰했음에도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말한 현지 주민들의 전언에 대해 선별하지 않았다.

미 연합 미사일 공격도 마찬가지지만, 공습 직전에 미국 언론인들이 전하는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 주장에 대해 유수의 기자들과 방송인들이 이번 주 특집 기사를 내며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로 인해 주류 매체의 파수꾼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프로 레짐체인지 옹호하는 매체인 가디언과 데일리 비스트(Daily Beast)의 한 기자는 시리아 관련해 "허위 정보가 터를 잡았다"라고 한탄했다. 종종 '반군' 소식통이 무슨 말을 해도 앵무새처럼 따라 했던 '엠마 비얼스(Emma Beals)는 최근 영국의 주요 플랫폼에서 굳어진 기정 서술에 대해 최근 쏟아진 의문 제기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인디펜던트에 실린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의 파괴력 있는 기사 이후 일련의 트윗을 날렸다.

비얼스는 이렇게 적었다:


사리에 밝고 학식을 갖춘 내 친구들이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는 이메일을 저에게 대량으로 발송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진실을 밝히기가 너무 어렵기"때문입니다. 수년 간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는데 허위 정보가 터를 잡은 것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최근 묘사한 표현을 빌리자면 비얼스는 매우 단순한 "디즈니 버전"의 시리아 사건을 옹호한다.

생초보를 위한 시리아 전쟁: 디즈니 버전-- 옛날 옛적에 시리아라는 나라는 바샤르 알 아사드라는 무자비한 독재자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상대로 가스 테러를 자행한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시리아의 내전을 초래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치명적인 내전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많은 시리아 난민들을 너그럽게 수용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시리아에 가서 ISIS를 물리쳤고 이제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 버전은 많은 미국인과 유럽인 및 서양 주류 매체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다.

한편 독일 ZDF 호이쳐 프로그램의 시리아 현지 보도와 거의 동시에 독일 연방의회(Bundestag) 소속 법률가들은 시리아에 대한 미국 주도의 폭격에 관한 법률 브리핑을 발표했다. 연방 정부 법률가 보고서는 주로 다마스쿠스 안팎의 시설을 겨냥한 미국의 연합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좌파당(Die Linke)이 요청했다.

"국제 협약 위반을 이유로 한 국가를 처벌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은 폭력을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이다"라고 스푸크니크가 번역한 독일 언론 보도에 나온다.

법률 보고서에 따르면 (다만, 독일군은 참전하지 않았다지만,)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은, 유엔을 거치지 않은 미국 주도의 시리아 공격은 연방의회 법률 팀으로선 "납득이 안되는" 화학무기 공격에 근거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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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Germany's Largest Public TV News Broadcaster: Syria Chemical Attack "Most Likely Staged"  ―ZeroH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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