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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일 화요일

트럼프 북한에 발을 내딛은 첫 현직 대통령이 되다


판문점, 코리아 ― 31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남한의 비무장지대에서 김정은을 만나 잠시 북한으로 월경하면서 고립무원의 북한을 방문하는 최초의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사람이 53분간 비공개 회담을 갖고 북핵 협상에서 진전이 있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속도가 목표가 아닙니다. 진짜 포괄적이고 좋은 합의를 할 수 있는지 전망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마친후 말했다. "아무도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지만, 확실히 멋진 날이었습니다. 매우 전설적이고, 매우 역사적인 날입니다."

"뭔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나온다면 더욱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회담은 하노이에서 열린 두 정상 간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4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트럼프는 하노이 정상 회담은 북한 지도자와의 관계가 깊어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현지 시각 30일 오후 3시 45분에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남북한을 갈라놓은 분단선까지 걸어 들어갔다. 이어 김 위원장은 트럼프에게 북한 월경을 초대하였다. 두 사람은 도로까지 몇 야드를 걸어가 몇 초간 머무른 뒤 되돌아 남한으로 월경했다.

"반갑습니다."라고 검정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말했다. "이런 곳에서 각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김 위원장은 상봉 자체가 뜻 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오늘 판문점 분리선을 넘은 것은 두 나라 사이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좋은 앞날을 개척하려는 남다른 용기의 표현"이라고 그는 말했다. "두 나라가 이렇게 평화의 악수를 하는 것 자체가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표현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분리선을 넘어 북한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나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정말 훌륭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만났고, 우리는 첫날부터 서로를 좋아했으며,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국경 너머 남측 지역 자유의 집에 자리한 회담장으로 들어서기에 앞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만났다.

회담 시작에 앞서 자리에 앉은 김 위원장은 재차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으로 이런 훌륭한 관계가 남들이 예상 못 하는 그런 계속 좋은 일들을 만들면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될 일들, 맞닥뜨리는 그런 난관과 장애들을 극복하는 그런 신비로운 힘으로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 트럼프도 김 위원장에 대해 따뜻한 언명을 했다.

"우리는 매우 좋은 관계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매우 잘 이해합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한다고 믿으며, 나는 아마도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들이 아주 좋은 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2~3주 안에 (북핵 실무 협상) 업무를 시작하기 위한 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팀이 업무에 착수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게 될겁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미국 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통솔하에 스티븐 비건 특사가 주도할 예정이다.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로는 폼페오와 비건의 북한 측 상대역들이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징계 또는 강등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이 "우리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을 책임자로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역시 이번 회담에 대해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오늘 만남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프로세스가 큰 고개를 하나 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와 우리 남북 칠천만 겨레에 큰 희망을 줬습니다.”

트럼프는 24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개국(G20) 정상회의 자리에서 트위터를 통해 국경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자는 제안을 내보냈다. 북한의 한 고위 관리는 이 제안이 "흥미롭다"라고 응답했다.

이번 회담이 정말로 단 24시간 만에 주선된 것인지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두 사람은 이달 초에 서진을 교환한 바 있다) 트럼프는 29일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어제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 올 것이니 김정은에게 인사할 수 있는지 보자.'"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트위터에) 그 말을 꺼냈자 그가 마음을 돌리더니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고 했고, 나 역시 그랬습니다."

트럼프는 나중에 양측이 그렇게 짧은 시간의 통고로 회담을 조직하기 위해서 "산을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두 강대국 정상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회담을 주선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인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지 않으면서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고안된 "쇼"라고 묘사했다.

"그들은 본질에는 약하지만, 시각적으로는 강렬한 장면 같은 것이 필요했다."라고 그는 말한다. "제한된 시간에 본질을 달성하기는 어렵고 불가능할 만큼 고통스러운 문제가 걸려있어 계속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긴장 격화로 비난이 폭주하는 가운데 자신이 북한과의 전쟁을 예방한 외교관으로 그려지길 원했다고 란코프는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 한반도가 다시 대결 국면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예방하고 싶었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 모색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국내 비판을 물리치길 원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 뒤이어 김 위원장과 국경에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두 사람만의 회담에는 함께하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주 "남한 당국의 참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남한 당국자들에게 "남한 당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트럼프는 30일 당일 하루 내내 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이 한반도 긴장을 진정시켰다"라고 거듭 밝히면서 그가 대통령에 선출되지 않았다면 이 지역이 전쟁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2년 반 전과는 상당히 다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뉴스 매체들이 달리 말할 수 있다니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비무장지대는 그간 "매우 위험"했지만, 자신이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현재는 훨씬 (위험이) 덜해졌다고 말했다.

"나는 언론 매체에 그렇게 말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미 매체들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사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일도 없습니다."

트럼프는 앞서도 북한이 핵실험을 중단했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또한, 그는 북한이 탄도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한국 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 복무자의 유해를 계속 송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실험한 바 있다. 미 국방성은 유해 송환과 관련 북한 정부와의 접촉이 중단되었다고 말한다.

비평가들은 트럼프가 사실은 그의 임기 초 몇 개월 만에 위험천만하게 긴장을 격화시켰다고 말한다. 지금은 오히려 일각에서 그가 반대 방식으로 너무 많이 나갔기 때문에 빠르게 핵보유국의 정당성을 북한에 부여해주고,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 중에 속하는 대규모 인권 침해국이란 멍에를 벗겨주고 있다고 경고한다.

"처음에는 나와 김정은 사이 많은 분노가 있었습니다."라고 트럼프는 말했다. "뭔가 모를 일이 벌어졌습니다. 뭔가 모를 일이 벌어진 시점이 있었는데, 갑자기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트럼프가 과거만큼 자주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걸 이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관리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골대를 옮기기 시작했다."

스테파니 그리샴 신임 백악관 대변인이 북한 경호원과 미국 기자단 멤버들 간의 몸싸움 과정에서 멍이 들었다고 에이피 통신이 보도했다. 남북 사이 자리한 자유의 집(회담장)에 미국 기자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북한 경호원이 밀치고 젖혀내자 미 경호대(SS)가 개입했다고 미 에이피 통신은 전했다. 이 일은 부분적으로 비디오에 담겼다.

트럼프가 김 위원장을 만난 사이 그의 딸과 사위(이방카 트럼프와 제러드 쿠시너)도 역시 북한으로 잠시 넘어갔다.

이방카 트럼프는 이번 방문을 '초현실적'이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데니어가 보도했다. 서울에서 김민주도 이 보도에 기여했다. 사진은 로이터/케빈 라마르크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원문 보기: Trump becomes first sitting president to set foot into North Korea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대북 긴장을 유발하려는 정보 관련 계약업체의 새로운 시도

비핵화와 북한과의 평화적 대화 개념에 반대하도록 여론과 도널드 트럼프의 의견을 돌리기 위한 이번 시도는 1주일 만에 두 번째인데 코미디 같기는 처음과 매한가지다.

미국 공영방송(NPR)의 2019년 3월 8일 보도는 선정적이고 오해를 살 주장을 담고 있는 엔비씨 뉴스 보도에 이어 나왔다. 요는 정부의 방위 및 정보기관들과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민간 기업들이 발표한 위성 이미지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북한 산음동에 있는 시설에서 미사일 실험 또는 인공위성 발사 준비에 착수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제공된 사진을 검토한 결과 이러한 활동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I. 산음동 시설의 위성 영상에는 발사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없다


민간 계약자인 디지털글로브가 미국 공영방송(NPR)에 제공한 이미지는 두 개의 저해상도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산음동 단지에 있는 건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철도 선로에 놓여 있는 열차 이미지다. 어느 사진에도 이상 동향으로 봐줄 만한 것이 없다.
크레디트: 이미지 ©2019 디지털글로부 주식회사. 그래픽: 앨리슨 허트/미국 공영방송(NPR)
"생산 홀"이라는 첫 이미지는 2018년 7월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당시 보도에는 이름 없는 정보 당국자들의 주장이라며, 액체 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 2기를 건설 중이라고 했는데, 현시점에 전혀 현실화되지도 않았고 발사에 사용된 적도 없다. 이런 혐의 제기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상봉한 지 1개월 만에 나온다.

미국 공영방송(NPR)의 주장에 따르면 동 이미지는 시설 주변에서 발생하는 "차량 동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진을) 정밀 검사해보면 "동향"으로 볼 수 있는 움직임이 없는 몇몇 차량이 확인될 뿐이다. 하나는 흰색 픽업트럭과 흰색 덤프트럭 혹은 평상형 트럭으로 보이는 것이 금속 더미 옆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동 장면은 구글 지도에서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있는 여느 기업체의 한가로운 공터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크레디트: 이미지 ©2019 디지털글로부 주식회사. 그래픽: 고코 나까지마/미국 공영방송(NPR)
미국 공영방송(NPR)에 따르면 두 번째 이미지는 "두 개의 크레인이 세워져 있는 곳 근처 조차장에" 철도 차량이 놓여있는 모습이다. 동 사진에는 움직임이 없는 철도 차량 1기와 함께 석탄으로 채워지거나 짐이 없는 개저식(開底式) 화물차와 빈 평상형 차량이 보인다. 두 번째 철도에는 개저식(開底式) 화물차와 평상형 철도 차량이 놓여 있다. 특히 개저식(開底式) 화물차는 미사일과 같은 군사 기술의 운송에 완전히 부적합하다.

왼쪽 하단 모서리의 선로는 눈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는 기차가 겨울 내내 수개월 동안 놓여 있었거나 그 위치로 돌려놨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국제 사회의 제재로 북한에 연료 부족이 극심해졌을 것을 고려할 때 디젤 엔진을 석탄이나 목재를 땔 수 있게 개조하지 않는 이상 해당 열차가 상당 기간 움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간단히 말해 북한 시설이 담긴 저해상도 사진에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녹슨 몇몇 차량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활동이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전혀 없다.

II. 미국 공영방송(NPR)의 위성 영상 소스는 미 중앙정보부와 국방부 계약업체들이다.


미국 공영방송(NPR)은 앞선 보도에서 디지털글로브 사와 플래닛 랩스 사가 제공한 위성 이미지를 나열하였다. 디스오비디언미디어는 앞선 보도에도 밝혔듯이, 디지털글로브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아래에서 미군의 스타워즈 대륙간 탄도미사일 방어에 종사한 과학자가 설립한 미국의 위성 이미지 공급 업체이다. 디지털글로브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창설되었고, 실리콘 밸리 출처와 북미, 유럽 및 일본 소재 기업이 창설 자금을 출자했다. 웨스트민스터에 본사가 있는 디지털글로브는 주로 방위 및 첩보 프로그램과의 협력 업무에 종사한다. 2016년에 디지털글로브는 미 중앙정보부와 칩 메이커인 엔비디아(NVIDIA), 아마존 웹 서비스 등과 협력하여 스페이스넷으로 알려진 인공지능(AI)-구동 감시 위성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플래닛 랩스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민간 위성 이미징 회사로, 자금력이 있는 고객에게 차세대 감시 기능에 액세스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16년 2월 연방 기술 소식통인 넥스트고브는 전직 미 중앙정보부 정보본부장과 고위 사이버 고문인 수 고든의 성명을 거론했다. 당 성명에는 플래닛 랩스와 디지털글로브, 구글 자회사 스카이박스 이미징 등의 업체 전체가 위치 첩보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 산하 국가대기권정보국과 업무 협력을 맺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플래닛 랩스의 자체 웹 사이트에는 국가대기권정보국와 함께 고해상도 이미지 접근권 구독에 관한 이전 계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보도 자료 목록도 있다.

북한과의 협상을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첩보 기관과 방위 산업체가 광범위하게 개입한다고 해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 준비 가능성과 관련해 이미 흔들린 미국 공영방송(NPR)의 혐의 제기에 신빙성을 더해 주진 못 한다. 이러한 논쟁은 근거가 실제 사실로 뒷받침 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 프로세스를 포기하는 주장과 압력이 계속 커질수록 미 행정부의 여러 파벌들이 대통령의 명문화된 목표와 정책을 실천하길 거부하거나 노골적인 모반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위험이 상당하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원문 보기: Intelligence Contractors Make New Attempt To Provoke Tensions With North Korea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세드니 부차관보 한국 국방부 장관과 면담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 1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회의에서 양측 대표단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우리측 합착전략기회부장 원태호 소장, 외교통상부 북미국 이백순 심의관, 수석대표인 전제국 국방부 정책실장, 데이비드 세드니 미국 국방부 아시아담당 부차관보, 미 국무부 한국과장 커트 통, 주한미군사령부 기참부장 팬터 소장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1. (기밀) 요약: 제19차 안보정책구상회의(개별 전문)를 끝난 후, 데이비드 세드니 부차관보와 버시바우 대사는 이상희 한국 국방장관과 회동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연말까지 한국군을 철수하는 것을 포함하는 연합군 감축에 관한 이라크 정부의 예고된 발표에 관한 참조 전문의 요지를 전달하였다. 국방장관은 일련의 질문으로 반응하였지만, 불만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하게 기쁘다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소식을 받아들였다. 그는 세드니 부차관보의 긍정적인 평가를 대체로 공감한다면서도 10월 17일 예정된 게이츠 국방장관과의 한미안보협의회의를 앞두고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남아있다는 점에도 견해를 같이하였다. 이상희는 기지 반환과 관련해 환경 문제와 용산기지이전사업의 비용과 일정을 일반에 공개하는 문제가 가장 민감한 현안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 위원장이 병이 났다는 보도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와 세드니 부차관보이 파악한 내용을 비교했고, 이어 향후 한미 간의 정보 공유를 약속했다. 이상희는 무슨 일이 닥쳐도 대처할 수 있는 힘과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공개석상에서 증명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요약 끝.

자이툰부대의 임무 종료


2. (기밀) (기밀) 서울에서 열린 제19차 안보정책구상회의를 끝낸 후, 세드니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는 이라크와 아프간, 그 밖의 다른 한미동맹 사항에 대해 조율하기 위해 이상희 국방장관과 회동하였다. 그는 버시바우 대사를 대동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라크 정부가 예고한 연합국 병력 감축 발표에 관한 참조 전문의 논지를 전달하였다. 동 발표에는 올해 말에 한국군을 완전히 철수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자이툰 부대가 영예롭게 사명을 완수했으며, 이라크 국민과 미국민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아직도 해야할 일이 있다면서 한국정부가 비군사적으로 (이라크에) 공헌하겠다면 환영이라고 덧붙였다. 세드니는 한국군의 활약상은 미국의 존경과 찬사를 끌어냈다고 덧붙였다.

3. (기밀) 한국 국방장관은 이라크 정부의 결정과 관련해 일련의 질문으로 반응하였다.
  • 벌써 미군 부대의 감축 계획이 마련되었는가?
  • 미군 부대의 추가 감축 계획이 있는가?
  • 유엔 임무가 만료된 후 미군 부대의 지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 2009년에 일부 국가가 연합국으로 잔류하도록 요청한 기준은 무엇인가?
  • 버시바우 대사가 말하는 비군사적 지원은 어떤 의미인가? 지방재건팀인가?
4. (기밀) 세드니 부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은 9월 9일 국방대학 연설에서 8천 명의 미군 병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했지만, 미군의 추가 감축은 이라크 정부와의 지속적인 논의에 달려 있다고 답변했다. 세드니는 미•이라크 일반 협정과 주둔군 지위 협정은 여전히 협상 중이며, 어떤 국가를 잔류토록 요구할지는 이라크 정부가 자체 안보 요건에 대한 판단에 따라 결정했다고 설명하였다. 대사는 비군사적 지원을 경제개발 지원을 위한 투자보증을 포함하여 기술 지원, 인도주의 및 재정 지원이 비군사 지원이라고 정의했다.

5. (기밀) 이 장관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는 한국이 다른 곳으로 재파병 요청을 받게 된다면 모든 세부 사항이 요구되며 해당 문제에 대한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19차 안보정책구상회의 긍정적, 다만 연례안보협의회의에 난제 남겨져


6. (기밀) 세드니 부차관보는 방금 마감된 제19차 안보정책구상 회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지 반환과 관련된 환경 문제 해결과 연합방위력증강사업의 기금에 관한 타협안 도출 등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야밤은 물론 아침 일찍 고위급 회의를 소집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이츠 국방장관은 다가올 10월 17일 워싱턴 안보협의회의에서 아프간에 대해 논의하길 원할 거라고 전망하였다. 그는 2008년 8월 을지 프리덤가디언 군사 연습의 성공을 칭찬했다. (이번 연습은 한국 지휘관이 처음으로 지휘한 연습이다.) 또한, 이(상희)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이 몸소 참여해 준 것에 대해 (미국의)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지 반환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민감해하는 부분


7. (기밀) 세드니 부차관보는 연합방위력증강사업에 관한 진전된 협상을 언급하는 가운데 한미 연합군 관리자들이 올해 말까지 캠프 하이얼리어 및 다른 8개 주한미군의 시설 반환과 관련된 민감한 환경 문제를 너나 할 것 없이 잘 처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사는 전날 부산에 다녀왔다며, 허 부산시장은 부산시가 공원으로 바꿀 예정인 하이얼리어 부동산 반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8. (기밀) 이 국방장관은 안보정책구상회의가 한미동맹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임이 재차 입증되었다고 화답하였다. 그는 을지프리덤가디언은 많은 교훈을 얻게 해 준 아주 훌륭한 연습이었다고 동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몇몇 민감한 동맹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하며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문제를 잘못 관리하면 반정부 시위나 반미 시위가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선호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기지 반환이 특히 걱정이라면서, 부산시는 하이얼리어의 조속한 반환을 원하지만, 환수에 앞서 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중앙정부가 국민의 거센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과 세드니 부차관보는 기지 반환에 대한 주둔군 지위 협정 특별합동위원회 소집 예정일이 9월 30일로 잡힌 것은 긍정적이라는 견해를 같이하였다. 두 사람은 회의 소집에 앞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합동 환경평가절차를 설계하는 일에 협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용산기지이전사업 비용과 일정도 매우 민감해


9. 이 국방장관은 용산기지 이전계획(YRP)의 완료에 따른 비용과 일정뿐만 아니라 비용과 일정이 언제 어떻게 한국 국민에게 공개될 것인지도 한국 국내 정치 분야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였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명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김정일의 건강에 관한 정보공유


10. (기밀) 이 국방장관은 화제를 바꿔 김정일의 병 걸렸다는, 아마도 뇌졸중을 암시하는 첩보와 언론보도, 소문 얘기를 꺼냈다. 이상희는 김정일과 관련해 많은 미스터리가 있다며, 양국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북한 지도부 상황이 어떤 양상을 띄게 될지 (파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그 점에 대해 주한미군과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와(북한 지도부 동향) 관련해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로부터 뭔가 필요하게 되거나, 필요할 때면 망설이지 않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11. (기밀) (국무부) 동아태/한국과장 커트 통은 김정일이 실재 중병에 걸렸지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잠정적인 추론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냉정을 당부하며, 북한의 잘못된 반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있는 추측성 보도를 부채질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상희는 동의하면서, 김정일의 부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12시간가량 지나서 북한이 발표하기 전까지 북한 이외에 누구도 몰랐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사는 북한 지도부 동향과 관련해 한국이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첩보가 있다면 공유해줄 것을 당부했다. 세드니 부차관보는 미국은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길 바라며, 파트너란 단어가 내포하는 모든 측면에서 한국 정부의 파트너를 자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안심시켰다.

10월 17일 국방장관급 회의 준비


12. (기밀) 게이츠 국방장관과의 10월 17일 한미안보협의회의를 앞둔 이상희 국방장관은 이번 회의에서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하였다. 그는 (당 회의 결과로) 우리가 안보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대중에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가 부시 행정부 시절의 마지막 안보협의회의가 될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첫 회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 회의를 가능한 한 생산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세드니 부차관보는 지적했고 이에 국방장관이 동의하였다.

13. (미분류) 세드니 부차관보는 이 전문을 승인하였다.
버시바우

원문 보기: DASD SEDNEY MEETING WITH ROK DEFENSE MINISTER


기 밀 서울 00184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9/17/2018

태그: PBTS, PGOV, PHSA, PINS, MARR, KS, KN

제 목: 세드니 차관보 한국 국방부 장관과 면담

참조전문: SECSTATE 96122 (이라크 연합군 외교문서)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 근거 1.4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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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8일 금요일

남한의 진보 진영은 뭐가 잘 못 됐나?

박근혜 정권은 취약하지만, 한국의 진보 야당도 그리 신뢰를 주지 못한다. 왜일까?

8월 18일은 한국의 제8대 대통령 김대중 서거 5주년 기념일이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라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거국적인 투쟁에 앞장선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김대중의 정치 유산은 1987년 대통령 보통 선거 복원에 기여한 공로로 정의되며, 1987년 당시가 오늘날의 진보 운동을 만들어준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김대중의 후임자들은 2003년 그가 퇴임한 이후 단적으로 말해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중도 좌파 정당들은 분열 상태이며, 두 차례 연달아 대선에서 패했다. 또한, 2008년 이래로 국회 원내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 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란 둥지 아래 모인 노쇠한 진보 연합은 텃밭인 전라남도 지역구 중 한 곳을 포함해 자웅을 겨뤘던 15개 지역구 중 11곳에서 패배했다. 이러한 결과는 내각 인선과 정경유착 스캔들이 연이어 터진 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이 충격적이다.

이념보다는 정책


그렇다면 왜 진보 진영은 최근 수년 간 대중의 신뢰를 끌어낼 수 없었을까?

보수 진영은 그간 전혀 정치적으로 진보 진영을 압도할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박근혜의 지지율 하락에 짓눌려 있는 새누리당은 올해 지방 선거와 보궐 선거를 앞두고 노골화된 내부 분열을 피해가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집권당이 청와대와 얼마나 긴밀히 협력할지를 두고 새누리당 대표 자리를 다툰 최종 후보 2명이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피력했을 때 당내 갈등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반박" 후보인 김무성의 승리가 새누리당 평 의원들 사이 어떤 형태로든 반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실제 보수 정당은 똘똘 뭉치는 정당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진보 진영에 대해선 같은 얘기를 할 수가 없다. 한국의 진보 운동 역사에서 포스트 민주화 시대는 투쟁, 분열, 분당의 역사로 규정된다. 직선제로 선출된 6개 정부 중 첫 번째로 독재자 전두환이 직접 고른 후계자 노태우는 오랜 기간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에 맞서 경쟁을 통해 치러진 자유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야당 표심이 갈리면서 노태우는 득표율 36.6%만으로 당선되었다. 야당의 분열은 1990년대 "3당 합당"으로 더욱 심화하였다. 전혀 뜻밖으로 김종필과 김영삼이 당시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와 함께 "보수 대 연합"을 결성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뒤이어 2002년 노무현이 당선되었지만, 진보 진영은 여전히 통합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노무현을 옹호했던 의원들은 새천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정부에 대한 지지가 지지부진하다며, 열린우리당이라고 하는 진보계열의 라이벌 정당을 결성하였다. 이는 득이 되지 않은 분당이었다. 새로운 야당 결성은 노무현 당선을 지원했던 새천년 민주당에 의한 노무현의 탄핵을 재촉했다. 노무현 탄핵소추안은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었지만, 그로 인한 정치적 피해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진보 정당 내부 서로 다른 계파 간의 갈등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둘러싼 끊임 없는 내분과 결속력 균열의 결과로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 새누리당에 맞서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을 수 없었다. 보수 정권은 대통령 선거에 정부가 개입한 혐의를 비롯해 산더미 같은 스캔들에 직면해 있었지만, 진보 진영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공조할만한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대신 진보 정당은 1980년대 민중 운동을 연상시키는 "투쟁"이란 말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보수 정당이 경제 성장이란 유산을 제도화한 마당에 좌파 진영은 "폭압 정권에 맞서 함께 투쟁하자"라는 메시지에 천착해왔다. 이는 남한의 포스트 권위주의 시대에는 아주 부적절한 메시지이다. 진보 진영의 텃밭인 전라남도 출신의 한 시민은 말한다. "이제는 '민주주의 투쟁' 시대나 김대중의 시대가 아니다. 요즘은 지역 경제를 중시해야만 한다."

실제로 한국을 예의 주시하는 한 관측통은 냉소적으로 말한다. "남한의 포스트 햇볕 정책 시대 남한은 냉정하고 실용적이며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진보" 정책과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전형적인 유권자층인 대다수 남한의 젊은 세대에도 들어맞는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남한 젊은이들이 현실주의자라고 나온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은 대체로 친미 성향이고, 중국에 대해선 양면적인 견해를 보이며 통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 햇볕 정책을 지지할 공산은 갈수록 줄고 있다. 우리가 남한에서 목도하는 것은 대체로 보수 유권자 기반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흥미로운 연구 거리가 될 것이다. 남한은 포스트 산업 국가가 지닌 가치와 이해관계와는 다른 가치 양상을 보인다. 후기 산업 단계에 놓인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정치 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주창한 "포스트 물질주의"와 같다. 그와 같은 사회에서는 독특한 정치적 가치가 투영된 신드롬이 나타난다. 그들은 대인관계의 신뢰를 중시하며, 외부 집단에 대해 상당히 수용적이며, 정치·경제적 안정보다는 개성 표출과 개인의 자율성(자아 성취)을 도모하는 정책을 선호하며, 기성 제도권에 덜 순종적이고, 정치적으로 훨씬 적극적이다. 물론 일부 이러한 가치가 확대되고 있지만, 다른 곳의 양상과는 다르다. 한국은 부분적으로 포스트 물질주의로 전환된 듯이 보인다.

박 정권에 드리운 긴 그림자


1987년 체제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은 일정 부분 포스트 민주화 정치 환경에서 어떤 메시지가 그들의 장기 집권을 보장해줄지에 대해 매우 영악한 판단을 했다. 노태우와 민주정의당은 정권을 잃는게 아니라, 재집권한다는 목표를 갖고 1987년 민주화를 양보하는 전략적인 결단을 내린다. 정치 학자 조셉 웡과 댄 슬레이터는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의 한계를 인식하고는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집권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힘센 정당의 권위주의 지속에 도움을 준 바로 그 힘이 권위주의 종식의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경제 성장과 경제 개발이라는 유산을 최대한 활용함에 더해 야당은 권위주의 정권 반대라는 공감대 외에는 내부 분열 상태였기 때문에 민주정의당은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정당 민정당이 여전히 상당한 국민적 지지가 있을 당시에 민주주의 개혁에 나서면서 장기적으로 볼 때 내부 분열이나 외부에 의한 축출을 모면했을 공산이 크다. 이것이 윙과 슬레이터가 말하는 "양보의 힘"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득표를 담보해주었던 성장과 개발이란 유물에 기댈 수는 없다. 후기 산업 시대의 남한은 (동아시아 국가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그간 한층 종합적인 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평생직장"이 보편적일 당시에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고, 경제가 여전히 "발전"하고 있을 때는 강력한 복지 국가에 대한 요구가 없었다. 즉 고용주와 가계가 필요한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세월은 변했고 한국의 복지 모델은 더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종합적인 복지 정책을 원한다.

이런 복지 수요에도 그간 거의 진전이 없었다. 박원순 현 시장은 서울시 공립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무상 급식을 제공하며 그들의 지지를 모았다. 그러나 음식의 질이 낮고 서울시 예산에 부담이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빈곤층 노인 인구가 증가하자 정부는 지원에 나서게 되었지만, 예산상의 제약이란 현실때문에 애초에 약속한 지원 규모에서 후퇴하게 되었다.

한국의 사회 정책 개발이 낙후되어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그 결과 국가가 사회 현실과 세계화된 경제 요구와는 괴리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자유주의 경제에서 비롯된 소외된 계층과 생활비 부담을 덜어줄 능력이 없는 가운데 사회는 고통을 받고 있다. 높은 자살률과 극빈 노인층, 출생률 저하, 낮은 노동 생산성 등은 사회·경제적 산물 중 일부분일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할 때 남한의 사회 정책을 개선하는 문제는 향후 대표적인 선거 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파악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기적으로 남한의 복지 정책 개발 및 혁신, 창조 경제 육성 등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박근혜 정부가 실제로 수사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근혜 정부 2년은 확실히 맥을 못 추고 있다. 박근혜와 집권당이 다음 몇 년 동안 능력을 발휘해 뭔가 이뤄내지 못할 경우 유권자들은 친절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가 나오려면 좌파 진영이 정치적으로 잘 조직을 정비하고, 내부 갈등이 통제 불능 상태가 안 되도록 추스를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1987년 이후 한국 (야당) 역사를 볼 때 거의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국내 변수와 국제 상수


비록 국내 이슈에서 정치 메시지의 이질성을 고려할 때 보수와 진보 정부 사이 차이가 클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하지만, 남한의 외교 정책과 관련해선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은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측으로 갔다."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도 아마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지도 아래에서 국가 주도의 남한 경제를 좀 더 규제가 완화된 경제로 근본적인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김대중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 한국은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탈피하였다. 세계화, 다른 말로 남한의 글로벌화가 시작되었다. 진보 정부는 이런 추세를 막을만한 수단이 없었다. 기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였다.

정치 학자 피터 카첸슈타인은 세계화의 힘은 특히 "약소" 국가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큰 나라들과는 다르게 남한은 다른 거대 국가들과 비교해 경제 정책 입안이나 대외 무역의 구조적 측면에서 훨씬 운신의 폭이 좁다. 국내 경제를 소수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수출 중심의 경제에서 (기를 펴지 못하게 만드는) 압박 강도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남한 지도자들은 세계화 압력을 상당 부분 수용하고, 그것을 한국의 경쟁력 우위로 활용하고 있다.

기실 남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과 (유럽연합과 미국)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이다. 시진핑의 최근 방한 소식을 추적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핵심 방중 의제 중의 하나가 한중 자유무역협정이었다; 보도로는 양국 지도자는 하루빨리 자유무역협정이 이뤄지길 원한다. 남한의 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한·중 자유무역협정은 (보수 혹은 진보) 어떤 정부가 되었건 핵심 의제가 될 공산이 크다. 한국 정부는 가장 열성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를 지지하는 정부 중 상위권에 올라 있으며, 분통을 터트릴 사람들도 많겠지만, 선거에 충격을 미칠 만큼의 의제가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군사 협력에 관한 한 노무현은 박근혜(혹은 이명박)보다는 미국에 협조적인 우방이 아녔다. 그러나 노무현의 비판적인 입장을 뒷받침한 일종의 반미 감정은 지금으로선 적어도 자취를 감추는 듯 보인다. 한국의 미래 정부가 보수건 진보건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모색할 공산이 크다. 한미 협력 관계가 나라에 가장 이익이 되며 한국 지도자들은 좀처럼 의식적으로 국익을 거스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하에 경제 강국으로 성장해 현재 선진국이 된 국가 중에서 남한은 새로운 표준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남한은) 글로벌화된 세계 경제 속에서 수출 중심 경제로 공고한 기득권을 차지한 나라다. 어떤 방식으로든 보수 진영 정당과 차별성을 부각할 수 없는 이러한 구조적인 제약은 진보 진영한테 혜택이 될 공산은 크지 않다.

박근혜의 5년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그녀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해 많은 기대가 있을 것이다. (박 정권이) 능력이 없어 유권자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면 진보 진영 후보가 도전할 수 있는 유의미한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사실, 언론 매체 JTBC는 현직 박원순 서울 시장이 2017년 대선 출마할 유력 진보 후보라고 보도하고 있다.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이명박이 그랬듯) 그는 대선 출사표를 던질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러나 진보 정당이 계속해서 내홍으로 분열한다면 그런 유리한 입지도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원문 보기: What’s Wrong With South Korea’s Liber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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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5일 화요일

미국 엘리트의 억측을 무너뜨리는 남한의 정상회담 보도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표에 대한 미국 정치계의 반응과 미디어 보도의 기저에는 김정은이 비핵화 구상을 거부할 테니 회담이 성공할 수 없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안보 참모가 전한 김정은과의 회동에 관한 전체 보도를 보면 김정은이 미합중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북한)간의 관계 정상화와 연계된 완전한 비핵화 계획을 제시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내용은 남한의 통신사 연합뉴스가 보도했지만, 미국 뉴스 매체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10명 인원의 남한 대표단을 영접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5월 5일 주최한 만찬에 대한 정의용 실장의 보고를 보면 북한 지도자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북미 관계 정상화 방안"에 대해 대화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 실장의 보고에서 가장 핵심을 꼽자면 정 실장이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에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는 사실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부연한 지점이다.

남한 국가안보실장의 보고는 김정은이 결코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국가 안보 및 정치 엘리트 사이에 확고한 믿음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안보 보좌관이자 전직 국방부 관리를 역임했던 콜린 칼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 발표에 대해 김정은이 "이 시점에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한다는 것은 전혀 염두 밖의 일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콜린 칼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가능성을 일축하는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새로운 평화 조약과 외교 및 경제 관계의 정상화 등의 형태로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거부 의사를 부시와 오바마 정부가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정책 패턴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대북 정치 이야기의 한 단면이다. 이 대북 정치 이야기의 대척점에는 북한을 적대시하는 미국의 기조를 바꿀만한 합의를 미국을 상대로 타결 짓기 위한 협상 카드로 핵과 미사일 자산을 활용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냉전 시기 배경으로 1976년에 시작된 핵 능력이 탑재된 미국 비행기가 동반되는 연례 "팀 스피릿" 연습을 중단하라고 북한이 요구했던 적이 있다. 리온 시걸의 저서인 "이방인의 무장해제"에 나오는 미국이 7차례 걸쳐 북한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핵 위협을 가했다는 권위 있는 해설을 상기한다면 미국인들은 북한이 이 연례 군사 연습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냉전의 종식과 함께 더욱 위협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구소련 동맹국들과 관계를 절연했을 당시 북한은 갑자기 수입이 40% 감소한 데 이어 산업 기반이 내부적으로 취약해졌다. 엄격한 국가 통제를 받는 북한 경제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한편 북한의 대남 경제, 군사적 균형이 마지막 20년 냉전 기간 거듭해서 불리한 쪽으로 확대되었다. 남북한의 1인당 GDP는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동일했으나 1990년에는 남한의 인구가 북한의 두 배가 넘는 상황에서 북한의 1인당 국내 총생산 규모가 북한의 GDP보다 이미 4배나 커지는 등 급격히 격차가 확대되었다.

또한, 북한은 군사 기술을 대체할만한 투자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구식 탱크, 방공 시스템, 항공기로 버텨내야 했지만,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최신 기술을 계속 받아들였다. 그리고 북한을 옥죄는 심각한 경제 위기 끝에 지상군의 상당 부분은 농작물 수확, 건설 및 채광을 포함한 경제 생산 업무로 전환해야만 했다. 군사 분석가들이 보기에 이러한 현실은 조선 인민군이 더 이상 남한에서 몇 주 이상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결국, 김 정권은 이제 과거 어느 때보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에 갈수록 의존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렇게 강력하고 복합적인 위협 상황에 직면한 북한의 창립자 김일성 주석은 냉전 이후 근본적으로 새로운 안보 전략을 출범하게 되었다. 그 전략은 북한의 초기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활용해 정상적인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한 포괄적인 북미 합의를 유도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장기적인 전략적 게임 속에서 나온 첫 번째 움직임은 1992년 1월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가 아놀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과의 회동 자리에서 놀랍고 새로운 대미 기조를 발표했다. 김용선은 김일성 주석이 북미 수교를 원하며 미군의 장기 주둔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캔터에게 말했다.

1994년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를 이끌었다. 제네바 기본 합의에서 북한은 플루토늄 원자로를 해체하는 대가로 경수로 건설을 약속받고 미국은 북한과 정치 및 경제 관계의 정상화를 공약하였다. 그러나 이들 공약은 즉각적으로 달성될 운명이 아녔다. 미국 뉴스 매체와 미 의회는 대부분 기본 합의의 핵심적인 거래 내용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심각한 홍수와 기근에 시달린 이후 1990년대 후반에 북한의 사회 경제적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악화하면서 CIA는 북한 정권의 임박한 붕괴를 시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 관계자들은 관계 정상화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4년 중반 김일성 사망 이후 아들 김정일은 아버지의 전략을 더욱 열심히 추진했다. 김정일은 1998년 북한의 첫 번째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단행하자 클린턴 행정부는 놀란 나머지 제네바 합의에 따른 후속 합의에 관한 외교 행보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김정일은 1998년 미국과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 협상을 시작으로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 특사로 파견하여 빌 클린턴과 만나도록 하는 등 일련의 외교적인 행보를 이어 나갔다.

조명록 특사는 북한의 ICBM 프로그램과 핵무기를 미국과 큰 거래의 일부로 포기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워싱턴에 도착했다. 조명록은 백악관 회동 석상에서 클린턴에게 김 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하도록 권유한 서한을 전달했다. 당시 조명록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당신이 평양에 올 경우 김정일 위원장은 모든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부장관이 이끄는 대표단을 평양에 급파했고 그곳에서 김 위원장은 미사일 협정 문제에 관한 상세한 답변을 제시하였다. 김정일은 또한 올브라이트에게 북한이 미군의 남한 주둔에 대한 견해가 달라졌다며 미국이 한반도에서 "안정자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김정일은 북한군 내부의 일부 사람들이 이런 견해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이는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정상화한 경우에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평양에 가서 합의에 서명할 준비가 되었지만, 그는 가지 않았고,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이 주도한 북한과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애초의 움직임을 뒤집었다. 향후 10년 동안 북한은 핵무기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ICBM 개발에 큰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9년 미국 언론인 2명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은 지금과는 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6년 10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중에 클린턴과 김정일 회동에 관한 메모에 인용된 김정일의 발언은 이렇다. "2000년에 민주당이 승리했으면 양국 관계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모든 합의가 실현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경수로를 확보했을 것이며, 미국은 복잡한 세계에서 동북아에 새 친구를 얻었을 겁니다."

미국의 정치 및 안보 엘리트들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던가 전쟁의 위험을 각오하고 "최대한 압박"하는 구상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지금 우리에게 확인해 주듯이 그런 견해는 한참 잘못됐다. 김정은은 ​​2011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그의 부친이 실현하지 못한 애초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담긴 비전에 여전히 뜻을 품고 있다. 진짜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와 더 나아가 미국 정치 체제 전반이 그 기회를 활용할 역량이 있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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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문 보기:South Korean Report on Summit Discredits U.S. Elites' Assumption

2018년 8월 15일 수요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의 '북한, 남한, 중국' 정책 설명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우리 체제가 감당 못 할 만큼 말썽을 일으키지 않길 바란다.
2013년 힐러리 클린턴의 골드만 삭스 연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많은 사람의 생각과는 딴판이다. 미국은 북한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실상은 우리 미국은 북한이 현재 하던 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북한의 행동이 최근처럼 과하지 않길 원할 뿐이다. 듣자 하니 헷갈리는 소리같이 들리는 까닭은 이러한 대북 정책이 일반 대중이 접하던 생각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 덕분에 미국 국민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실제 돌아가는 양상에 대해 혼선을 탈피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사의 목적은 한반도 정책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판 소재로는 훌륭할 수도 있겠다. 나는 우리가 이 문제를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

미국 정부의 실질적 코리아 정책의 연원은 십 년 전 클린턴 국무부 장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2013년 2월 국무부 장관직을 사임한 뒤 그해 6월 4일에 로이드 블랭크패인과 함께 (아마도 무대에 함께 올라) 골드만 삭스에서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다른 여러 사안 중에서도 미국의 대북, 대남 정책과 해당 정책의 대중국 상관관계에 대해 매우 진솔함이 엿보이는 태도로 논의했다.

해당 연설과 다른 두 개의 연설은 클린턴 캠페인의 멤버인 토니 칵크에 의해 존 포대스타를 비롯한 다른 캠페인 관계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위키리크스는 이후 존 포대스타 이메일 폭로의 일부로 해당 전자우편도 공개했다. 해당 연설의 내용을 보면 클린턴은 비밀스럽게 말했고, 내 판단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 연설에서 그녀의 언급 내용은 진실을 말했다고 여겨진다. 그녀가 경우에 따라서는 그녀보다 급이 높거나 동급인 골드만 삭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단연 없습니다. 연설 전체를 읽어보면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같은 엘리트 계급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식이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위키리크스나 클린턴에 대해 이의 제기하려는 생각은 없다. 단지 지적 측면에서 그녀의 발언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정책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골드만 삭스 임원진은 차후에 그녀의 발언 내용에 대해 대단한 비밀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부분에 관해서도 판단할 수 있다.

클린턴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는 미국의 코리아 정책


상단은 위키리크스 트윗이다. 연설 전체 내용은 이곳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다. 나는 일부 해당 연설 부분을 하단에 재차 거론했습니다. 먼저 클린턴의 발언을 인용하고 내 의견을 곁들었다. 그 뒤에 미국의 대남 관계나 접근 방식을 암시하는 내용에 대한 약간의 관점을 추가했다.

클린턴의 골드만 삭스 연설 중 남북한 부분은 중국 논의에서 출발했고, 블랭크페인이 남북한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블랭크페인의 전체 질문이 클린턴으로 발언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상기 트윗에서 위키리크스가 인용한 내용이다.

블랭크페인: 일본인 사람들, 저는 우리 생각과는 배치될 때 더욱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이견 말이죠. 일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그들 정체성의 일부라 해야겠죠. 당신이 필리핀 어선과 충돌하게 되면 우리가 말하자면 아시아를 논하느라 근처에 있다고 중국이 우리를 도울까요 아니면 그들 자신을 이롭게 할까요?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은 무엇이죠? 북한? 한편으로 그들은(중국인) 통일 한국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 국경에 접한 또라이 핵보유국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이해관계는 무엇이며 그들이 우리를 돕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클린턴의 대답 전체는 위키리크스 트윗에 첨부되어 있다. (해당 트윗에 첨부된 이미지를 확대해 전체를 읽어보세요) 내 생각에 주요 부분으로 판단되는 부분을 아래에 적시했다. 그녀의 나머지 발언과 블랭크페인의 질문의 문맥을 볼 때 클린턴의 대답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은 오늘날 우리 정부가 직면한 상황과 닮아있다.

클린턴: 중국의 전통적인 정책은 당신이 설명한 것과 근접해 있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남한이 단일 국가가 된다면 당연히 경제적, 정치적으로 세력을 확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체제가 감당 못 할 만큼 말썽을 일으키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전임 북한 지도자들과 [김일성과 김정일] 꽤 바람직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젊은 지도자가 등장했다. [김정은] 그리고 그는 중국 사람들을 모욕하기까지 했다. 그는 중국 대표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공개적, 비공개 자리를 가리지 않는 발언에 나섰는데, 이는 단지 남한과 일본,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들과도 스스로 맞서려고 준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해석 — 세 가지 요지:


  • 미국 사람들은 코리아가 분단 상태로 남는 걸 선호한다. 코리아가 통일되면 남한이 책임지고 주도할 것이다. 우리는 남한이 현재보다 강력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우리는 또 북한이 야기하는 말썽이 남한을 넘어 역내로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이 예전에 정해진 한도 내에 머물러 있길 원한다
  • 북한의 예전 두 지도자와 우리의 약속은 그러한 두 가지 목적을 충족한다.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은 그러한 약속을 저해하고 있다.

중국과 우리가 하는 것처럼 현재 그대로의 상황 유지라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것은 중국은 남한(과 미국)이 하나의 적국으로 북한을 상대하길 원하지만, 그 적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행동하길 원한다. 클린턴:

그래서 [중국의] 새 지도자는 그를 [김정은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그리고 고위급 북한군 관리 한 명이 중국 방문을 방금 마쳤다. 기본적으로 [그에게 중국의 메시지라며] 말 같지 않은 소리 집어치우라고 말했다. 그만 해. 당신 주제 파악이나 하고 있나? 당신이 우리[중국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우리는 당신이 당신 부친과 조부가 [김정일, 김일성] 우리에게 보여준 존중을 시연하길 기대한다고,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을 거야. 

자, 이전에 내가 언급했던 중요한 연결 고리로 돌아가 보자. 도발적인 북한의 가장 큰 후원자는 중국 인민 해방군이었다. 중국의 군 지도부와 북한의 군 지도부의 깊은 유대 관계가 북·중 관계의 진정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니 지금 시진핑 및 그의 팀이 동반하는 전혀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해 북한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중국 인민 해방군에 대해 "안돼, 용인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이런 걸 [문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볼 일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당신의 도발적인 행동과 거리를 둬야 하고, 남북 국경에 위치한 사업 지구인 남한과 자유 무역 지구에 대해 남한 사람들과 의논을 시작할 것이고 다시 예전의 질서대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해. 

이제 우리는 당신이 가끔 쏘는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 그것도 좋아. 미사일 발사는 미국인들의 기분을 잡치고, 속이 쓰리게 할 수 있지만, 당신들이 언제까지나 예측할 수 없는 길로 접어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어. 우리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그것은 우리가 용인할 수 없어. 

그러니 내 생각에 그들은(중국인들) 김정은을 길들이고 있다. 내 생각에 그들이 북한 군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들도(중국) 한국과의 무역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 중국도 같은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는 걸, 너도 알잖느냐면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 정부를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클린턴은 네 번째 요지와 함께 마무리했다:

  • 미국의 견지에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북한 문제는 중국인들이 해결할 몫이다.

클린턴:

그들은 북한을 그들이 쳐 놓은 울타리에 가둬 두길 원한다. 그들의 견지에선 북한을 예측 가능한 대상으로 묶어 놓길 원한다. 그들은 최근 의미심장한 성명을 냈는데, 북한 사람들이 핵 프로그램을 그만두는 것을 무척이나 보고 싶다는 성명이었다. 나와 그 밖의 다른 사람은 …나는 당신이 오늘 아침 레온 파네타를 여기서 만났다는 것을 안다. 북한 사람들이 계속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미사일에 소형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확보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를 겨냥한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너나할 것없이 중국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조약 동맹국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와이와 미국 서해안에 이론적으로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을 미사일 방어 체제로 포위할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함대를 역내에 투입할 것이다.

그러니 중국 알겠죠. 당신네가 북한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북 방어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상단 네 번째 글머리 기호에서 오래된 미국의 대남, 대북 정책에 대한 매우 분명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중에 유일하게 놀라운 지점은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 왜 아닐까? 그리고 남한 사람들이 이것을 알기나 할까? 나는 아래에 간단한 답변을 제공하고자 한다.

동아시아의 "거대 게임", 코리안 "타이거"를 견제하라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신흥 국가 중에 하나로 "아시아의 호랑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기술 및 혁신의 중심지로 부상 중인 제조 및 경제 강국이다.

예를 들면 포브스지에서 소개한 많은 것 중의 하나를 보자.

왜 남한이 차세대 첨단기술 스타트업 업체의 글로벌 허브가 될 것인가? 

미국의 비즈니스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하드웨어 및 반도체와 같은 활동에 종사하는 비즈니스의 총량으로나 집약적인 첨단기술 산업을 오랫동안 선도해 왔다. 미국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장려하는 문화가 있고, 기술 집약적 신생 기업이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다. 다른 나라들도 주요 기술 및 혁신 허브가 되기 위해 경쟁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각광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매년 벤처 캐피털에 의해 자금을 지원 받는 수백 개의 회사를 보유한 창업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기업 중 다수를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여러 회사가 인수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앵그리 버드와 스포티파이(Spotify)를 우리에게 소개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신생 창업 강국으로 한국이 떠오르고 있다. […]

다시 말해서, 한국은 미국의 기술 집약형 최고경영자의 부를 지켜주는 국가 이상의 나라로 도약했다. 이제 한국은 그들의 부를 위협하는 조치를 밟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자 제품만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복제와 같은 생물학적 연구 분야도 역시 한국인들이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클린턴 국무부 장관의 관심사나, 미 실업계의 볼모가 된 미국 정부의 관심사는 한국 정부와 한국 경제의 역량이 잠재적으로 배가되어 미국 최고경영자들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한국인)이 맘껏 내키는 데로 생산하도록 두자, 그러나 억만 장자를 양산하는 창업 정신에서 우리의 우위를 위협할 정도라면 그것은 과욕이다. 우리의 정책은 이렇게 말하려는 듯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단언컨대 이것은 미국 정부의 정책 입안자와 엘리트를 대표하는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이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강한 남한이 불 보듯 경제적 지배력을 확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이것이 우리의 정책이라고 알고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나는 그렇다. 매우 카능성이 높다고 말하겠다. 결국 클린턴이 골드만 삭스 임원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대단한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점을 더 잘 대처하는 쪽은 북한 지도부보다 한국 지도부 쪽이다.

[업데이트 :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클린턴의 "우리(we)"는 우리 미국의 정책이 아니라 중국의 정책을 가리킨다는 제안이 댓글난에 있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의심스럽지만 고려 가치 있는 해석이긴 하다. 그럼에도 남북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정책은 확실하게 일치되어 있으며 클린턴의 말처럼 "명백한 경제적, 정치적 이유때문에" 클린턴의 "우리" 사용에 대한 해석은 어느 경우이든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GP] 

↪️영문 원문 보기: Hillary Clinton Explains Our 'North Korea, South Korea, China' Policy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다시는 김정은을 미치광이라고 부르지 말라

싱가포르 정상 회담이 끝난 이후로 북한 지도자를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면 단순히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싱가포르 정상 회담은 장시간의 극장 관람이었고 전형적인 트럼프식 퍼주기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본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 사람들의 실체가 없는 실천 약속의 대가로 (남한 정부에 통보도 하지 않은 체) 충동적으로 남한과의 군사 연습 중단을 제시했다. 자칭 협상의 대가가 이런 식으로 계속 거래를 성사시킨다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들어서기 전에 호놀룰루에 김정은의 힐튼이 들어설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나온 가장 중대한 변화는 김 위원장의 변신이었다. 이제까지 김 위원장은 비밀스럽고, 다소 익살스럽고, 다분히 살기등등하고, 비이성적인 "은자의 왕국"의 지도자에서 일정한 명망을 갖춘 신중하고 진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도자로 탈바꿈하였다. 뉴욕타임스는 북미 정상회담 전날 공개한 "김정은 이미지 변화: 핵 미치광이에서 재간 있는 지도자로"란 제하의 기사에서 이런 견해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은 적들을 비이성적이고, 제정신이 아니고, 기만적이고, 위험한 일을 도모하거나, 자멸적이거나 단순한 얼간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려주지 김에 대해선 별로 알려주지 않는다. 경험 많은 노련한 미국의 관리들이나 학식 높은 학자들조차도 다른 나라와의 외교적 갈등을 이해관계 혹은 정치적 가치의 충돌로 보지 않고 인격의 결함, 편집증, 혹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견해의 발현으로 보기 십상이다. 김 위원장 가족은 미치거나 비이성적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70년 동안 권력을 유지해 왔다.

적을 미치광이 취급하는 미국의 이러한 경향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국인들은 러시아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비이성적인 광신자로 여겼다. 에드워드 랜싱 전 미 국무장관은 볼셰비키 이데올로기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흉측하고 끔찍한 내용”이라고 표현했다. 1960년대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중국을 “공격적인 오만함과 스스로에 대한 집착의 결합체”라고 규정한 뒤 “중국의 행동은 세상과 삶 자체를 공상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중공 지도부의 행동만큼이나 난폭하고, 화를 잘 내고, 고집 세고, 적대적이다.”라고 주장했다. 1970~1980년대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소련 지도자들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소련의 주요 도시를 모두 파괴하고, 소련사람 수천만 명을 죽이더라도 그들이 핵전쟁에서 "싸워 승리"하는 일을 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사례를 들자면 미국 전문가들은 사담 후세인이 비이성적이고, 저지하기 어려운 연쇄 침략자라면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했다. 이란 전쟁 찬성론자들은 테헤란 신정 정권에 대해서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한때 이란 지도자들을 “대량학살 미치광이”들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브레트 스티븐스는(Bret Stephens,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 소속) 이란을 "순교에 집착하고, 비서구 문화권"이라고 묘사하며 예방 전쟁을 정당화했다. 미국기업연구소의 마이클 루빈(Michael Rubin)은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주장을 했다. 그는 이란 지도부는 핵 보복 공격을 당하더라도 이슬람 권익은 지킬만한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핵 전쟁) 억지력이 작동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야톨라는 그가 이슬람 전파에 도움이 된다면 핵 공격으로 죽거나 이란이 파괴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미국인은 국제 테러리스트를 정신 장애가 있고, 비합리적인, 기만적이거나, 단순히 미친 개인으로 간주하지, 그들을 정치적으로 동기 부여되고, 계산적이며, 정치적 목표를 실현할 최상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믿음에 따라 (자살 폭탄을 이용하는 등) 특정 전략을 채택하는 합리적인 주체로 보지 않는다. 일부 개별 테러 행위자들은 실제로 전적으로 허구적 신념에 따라 움직였을 수 있지만, 그들 단체와 지도부를 단순히 미치광이로 매도하는 것은 그들이 보유한 강한 저항력, 전략적 행동, 적응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견문이 넓은 미국인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 미국만이 유일하게 고결하고, 예외적이고, 현명하고, 사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모든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고 미국 정책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 취급하기에 십상이다. 미국의 적이 제정신이고 합리적이며 식견이 있다면 우리 목표의 숭고함을 틀림없이 인식하고 우리의 이니셔티브에 투신하리라 생각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우리 미국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고는 매우 놀랐다"고 인정했다.

불행하게도 미국인들이 적들은 원래 비이성적으로 타고 났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첫째, 만일 적들이 정말로 비이성적인 미치광이라면 그들은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에 겁을 집어먹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미국의 통상적인 억지력 전략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예방 전쟁이 보다 매력적인 옵션으로 부상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바로 정확하게 이런(예방 전쟁) 사례였다. 이는 또한 미국의 매파들이 최근 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처방전의 핵심 사항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대북 군사 타격을 선호하는 이들 역시 최근까지 김에 대해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왔다. (김이 최근에 "미치광이"에서 "정치가"로 변모하기 이전에)

둘째, 적들의 행동을 비이성적인 행태 탓으로 돌리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진짜 이유를 보지 못하게 된다. 미국인들은 종종 북한과 이란, 리비아 등의 국가가 추구하는 대량 살상무기가 일종의 제멋대로 일탈이거나 혹은 악의적인 의도 때문으로 본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북한과 같은 가난한 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미친 일이며 김 위원장 가족이 얼마나 기괴하고 편집증적이면서 위험한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도 모두 외세의 침략을 걱정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런 까닭에 그들도 믿을 만한 억지력을 추구할 일부 근거가 있다. (절대 강자 미국이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수천의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훨씬 약한 이들 국가가 핵무기를 유용한 보험 정책으로 여기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김 위원장의 경우 핵무기 보유는 미국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었음을 입증했다.

셋째, 만일 어떤 적이 미쳤거나, 비이성적이거나, 혹은 터무니없이 잘못된 정보에 빠져있거나 한다면 그들이 당근이나 채찍, 혹은 합리적인 논쟁에 사리에 맞게 대응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비이성적이고, 심하게는 이성적 사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정상적인 외교는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미친 사람이나 미친 정권과 얘기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적의 비합리성을 과장함으로써 긍정적인 외교 협상 시도는 말할 것도 없고 협상 타결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우리가 비이성적인 행동이라 간주하는 것에 관해 얘기할 적에 미국인들은 스스로 좀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적들을 비이성적이고 무모한 존재로 간주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나 우리 자신들 역시 그간 미친 행동을 적지 않게 해 온 과오가 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예를 들어 NATO 확장의 순 비용과 이익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나토의 동진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미친 짓이다. 그러나 동진 찬성론자들은 러시아 정부가 반대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러시아의 반대는 진정성이 없다거나 근거가 미천하다는 주장을 고집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에) 안정과 번영, 친미 민주주의를 가져다줄 것이며 역내 전역에 민주주의 바람을 촉발하리라는 생각은 긍정적인 망상이었다, 그러나 많은 현명한 사람들은 2002년과 2003년에 그런 주장을 또다시 펼쳤다. 무하마르 카다피 전복이나 "아사드는 사라져야 한다"는 요구는 리비아나 시리아를 막론하고 약이 된다는 생각은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고위 관리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같은 짓을 계속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광기를 정의한다면, 미국 정치 및 군사 지도부의 "합리성"에 대해 미국의 아프간 정책은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나?

마지막으로 경시할 수 없는 게 있다. 하루도 뻔한 거짓말 없이 (혹은 여러 거짓말) 그냥 보내지 않는 대통령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는 우리 우방국 지도자에게 단지 한 번에 그치지 않은 반복적인 모욕 행위이다. 또한, 대통령은 자주 일의 진행 방향을 변경해서 우방이든 적국이든 오늘 합의가 내일 준수될 것인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다른 일부 비평가와는 다르게 트럼프 대통령이 미쳤다거나 치매 초기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애적 성격 장애에 대한 임상 전문의의 설명을 보니 조금 걱정스럽긴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활약상을 토대로 판단컨데, 왜 주요 세계 지도자들이 트럼프과 같은 변덕스럽거나 복수심에 가득 찬 지도자에 대해 수용적이거나, 달래러 하거나, 비위를 맞추려 하거나, 타협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 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보다 그를 무시함으로써 존경심을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을 입증한 듯이 보인다. 다른 지도자들도 같은 결론에 이르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덜 기울일 것이고 대신 서로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 시점에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안 할까?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영문 원문 보기: Never Call Kim Jong Un Crazy Again FOREIGN POLICY

2018년 6월 18일 월요일

좋든 싫든,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일단 성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한 역사적인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으로 우리는 북한과 평화적인 문제 해결에 한층 근접하게 되었다. 한반도 상에 예상치 못한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농후했던 8개월 전 우리의 처지와 비교해볼 때 지금 우리의 처지는 훨씬 양호해졌다.

6월 12일 공동성명은 특히 북한의 궁극적인 핵 프로그램 폐기를 다루는 문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위한 과정, 한반도 평화로 가는 모든 가능성 등 북한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진보를 담아냈다.

일각에서는 공동 성명서에 사용된 핵 프로그램에 관한 문구에 대해 비판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 이 문구가 너무 모호하다는 비판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도 비슷한 문구를 사용하였다.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

9.19 공동성명의 결과를 가져온 2003년부터 2005년까지의 핵 협상에서 우리는 비핵화의 의미는 북한의 핵무기와 핵무기 시설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는 9.19 공동 성명에 CVID를 사용하려고 시도했지만, 북한 협상가들은 CVID라는 용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고 어떤 공식 문서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려고 든다면 협상이 중단된다는 점을 북한 협상가들은 반복해서 밝혀왔다. 따라서 2005년 9.19 공동성명에는 CVID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 점을 이해한다면 6.12 공동성명에 CVID가 사용되지 않은 까닭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김정은과 북한의 지도부가 그들이 함께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정의하는 비핵화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임을 알고 있고, 이 CVID에 못 미치는 어떤 합의도 미국에는 협상의 중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는 점이다.

6.12 공동성명은 우리가 수년 동안 추구해왔던 지극히 중요한 문제를 기념해준다.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 유골 발굴을 집행하여 이미 발굴확인된 유골들을 즉시 송환할 것"이라는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명시함으로써 이 문제의 최종 해결에 필요한 정책에 초점을 둘 수 있었다.

6.12 공동성명은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을 후속 협상 당사자로 지정하여, 6.12 공동성명의 이행을 담보하도록 하였다. 폼페오는 CIA에서 근무했고,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은 위원장과 김영철 부위윈장과 회동한 만큼 그 보다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이제 북한이 모든 핵무기 시설 목록과 인력 명단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개수와 위치에 대한 포괄적인 선언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들은 또 국제 핵 모니터 요원의 방북과 신고를 끝낸 핵무기 부지와 인력에 대해 점검할 수 있는 검증 의정서에 서명해야 하며, 미신고 핵무기 시설로 의심을 사는 곳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6자 회담과 2005년 9.19 공동 성명이 와해한 것은 북한이 미신고 핵무기 시설로 의심되는 곳에 모니터 요원이 방문하도록 허용하는 검증 이행계획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데에서 기인한다.) 성명서 서명을 통해 우리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핵분열성 물질의 제거와 핵분열성 물질을 생산하는 시설의 해체, 그와 동시에 핵무기의 불능화 및/또는 제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미 에너지부는 IAEA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경험이 풍부하다.

우리는 모든 핵무기와 핵무기 시설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철저히 폐기하는 데 중점을 두되 북한 몫으로 한국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 조약을 비롯해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명시하는 안전 보장과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 아마도 각각의 수도에 초기 연락 사무소 설치와 같은 결과물에도 진전이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전제로 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은 중단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이러한 군사 훈련에 대해 북한은 실제적 위협으로 보는 만큼 또 하나의 대북 안전 보장이 된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불과 몇 달 전보다 북한과 훨씬 더 진전된 위치에 도달하였다. 효과적인 대북 제재, 위협적인 합동 군사연습, 북한의 성공적인 소위 핵 억지력 확보, 이 모든 것이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도록 하는 결정에 일조하였다. 북한이 이렇게 미국과 남한과의 교섭에 나서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은 내 생각에 북한의 침체한 경제 개선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김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로 한 전략적인 결정도 한몫했다. 그러려면 김은 자신이 핵무기를 포기해야만 그러한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다만 체제 교체가 미국의 정책이 아니라는 안전 보장을 그가 제공 받게 될 경우에만 해당한다. 김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은 의심의 여지 없이 김정은과 북한 정부의 안보에 대한 김의 우려를 상당 부분은 완화하였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하나의 과정이 시작된 만큼 앞으로 많은 노력과 인내, 끈기가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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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문보기:Like it or Not, Singapore Summit was a Success TheCipherBrief

2018년 6월 10일 일요일

소니, 오바마, 세스 로겐과 CIA가 비밀리에 강제적인 북한 체제 교체를 기획한 방법

우익 작전 세력 토르 할보르센(Thor Halvorssen)은 "더인터뷰"의 포스터를 북한으로 밀반입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달 북한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으로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를 퍼붓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적인 위협은 군사적 연쇄 반응을 촉발했고 이번 주 북한의 6차 핵 실험으로 최고조를 이루었다. 이번 실험에 사용된 수소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미국의 원자탄보다 그 위력이 5배나 강했다.

위기 상황이 전개되자 냉전 시대에 설립된 군사 정보 분석 기관인 랜드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 관한 손꼽히는 전문가 중 한 명"이라는 국방 연구원인 브루스 베넷의 견해를 끊임없이 홍보했다. 랜드연구소의 홍보 매체는 하루에 두세 차례 북한이 선호하는 공식 국가 명칭인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통치하는 김정은에 관한 베넷의 기고 글 링크를 트위터에 게재하고 있다.

트럼프는 제재와 전쟁 협박, 외교를 활용해서 김정은이 미국에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김은 역으로 3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을 주장한다.) 베넷은 고려 가치가 있는 유일한 표적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본인이라고 믿는다.

베넷이 말하는 기본 테마는 북한이 붕괴 직전이며, 내부 동요가 심한 까닭은 북한을 운영하는 군부와 기술직 고위 관리들이 김정은과 김씨 왕조에 대해 포기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유통되던 하나의 이론이지만, 최근 김정은의 숙청 작업에 대한 반응으로 힘을 받고 있다. 숙청 작업에는 김정은의 형제도 포함되었을 수 있으며 유식하다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대사를 비롯한 고위급 탈북자들이 포함된다.

"북한 엘리트의 통일 대비"라는 베넷의 빛깔 좋은 서적과 팸플릿이나 CNN과 폭스와 틴보그(잡지)에 출연한 내용을 보면 베넷은 북한을 전단과 선전으로 도배하고, 북한 내부 잠재적인 정권 타도론자들에게 남한과 새로운 통일 한국에서 자리를 보장한다는 제안을 함으로써 북한 정권을 전복한다는 그의 계획을 제시하였다. 물론 남한과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통일 한국에서 내주는 자리이다.

그는 나도 참석한 최근 미 의사당 연설에서 경고하길, 미국은 김정은에게 단순한 메시지를 보내야만 한다: "우리는 당신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당신 정권의 생존임을 알고 있다." 비핵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 정권을 불안하게 만들 정치적인 행동에 나서겠다" 그의 이 말은 내부 "봉기"를 상정한 기초 독본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추구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베넷의 계획은 미 공군이 북한 미사일 기지에 전단을 투하하여 북한군의 탈북을 유도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체면 손상이 될만한 한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남한의 음악 장르인 케이팝도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선 케이팝은 상당히 거슬린다." 그리고 북한에 밀반입된 DVD에 담긴 남한 생활에 대한 광고는 "김정은에게 끔찍한 일"일 것이다.

이런 대북 공작의 목표는 북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편집증적" 지도자는 "신"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게 하려는 것으로 북한은 불안정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그가 그런 생각이 들게 되면 그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심리 공작이다.

나는 그가 떠벌리는 소리를 듣자니 2014년 세스 로겐의 코미디물 "인터뷰"에서 베넷이 맡은 악역이 연상되었다. 이 영화는 CIA가 김을 죽이기 위해 고용한 할리우드의 두 마약쟁이 이야기다. 영화는 변절한 북한 엘리트가 발사한 유도 미사일에 의해 김의 머리가 박살 나는 장면을 매우 상세하게 선정적으로 묘사했다. 이 변절자는 로건과 조연 제임스 프랭크가 연기한 가짜 미국 기자와 대화한 이후 미국 측으로 넘어온다.

이 영화는 일본의 소니 픽처스가 제작했지만, 오바마의 국무부와 랜드연구소의 결정적인 조언과 지원을 받은 이후에야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로건이 뉴욕 타임스와 CIA에 제공한 2014년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리는 컨설턴트로 정부에서 일하는 특정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나는 그들이 CIA 소속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브루스 베넷의 지도하에 이뤄진다. 브루스 베넷은 랜드연구소의 이사회 멤버이자,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마이클 린튼 소니 엔터테인먼트 CEO의 프로젝트에 영입되었다.

왜 베넷인가? 그의 공식 약력에 보면 미 국방성 관리, 주한/주일 미군, 미 태평양 사령부와 주한/주일 군 사령부에서 근무했다고 적시했다. 그가 소니 린튼 회장에게 보낸 2014년 이메일에 따르면 베넷이 아시아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모르몬교 일본 선교사였다. 그는 1989년에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남한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 그는 100차례 이상 남한을 방문하여 미군과 남한의 고위 군 인사를 상대로 자문을 해줬다." 그는 북한에 가본 적이 전혀 없지만, 그의 북한 지식은 "북한의 고위 탈북자와의 전면적인 인터뷰"를 기초하고 있다.

더인터뷰의 줄거리는 내부로부터의 체제 교체라는 베넷의 비전을 따르고 있으며 두 가지 주요 장면에서 그 비전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암살 계획을 감독하는 미 중앙정보국 요원은 일찍이 미국인 신병 응모자를 상대로 "우리는 그가(김정은) 사라지길 원하는 북한의 기성 지도부 안의 작은 파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변화를 원하나 혼자 일을 도모하기엔 너무 두려움이 앞선다." 그들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이 그곳에 가서 김을 없애고 그들이 반란을 도모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길 바란다." 나중에 체제 교체 음모에 가담하는 김의 섹시한 비서 "숙"은 (영화 주인공 역을 맡은) 로겐에게 간청한다: "당신은 어떻게 2400만의 북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이 살인자이자 거짓말 쟁이라고 확신하게 만들 수 있는가? 북한 사람에게 그가 신이 아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흔히 이 영화로 인해 북한의 소니 해킹이 촉발되었고, 수천 개의 내부 소니 이메일은 유출되었다고 말한다. 북한은 이 영화를 "테러 행위"로 규정하며 오바마 행정부는 이 영화 상영을 허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베넷이 미 하원 브리핑 석상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더인터뷰에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그리고 이 영화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처음에 베넷은 질문을 회피하며 "나는 이 영화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이 자문역에 등재되어 있다고 상기시키자. 그는 주제를 바꿨다. "나는 소니 픽처스 사장이 DVD를 나에게 보냈을 당시 그 영화를 처음 알게 되었다. 소니 사장은 나에게 우리가 이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라고 그가 설명하자 실내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베넷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에게 걱정거리일 수 있는 내용을 파악하도록 돕는 마무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더인터뷰 이야기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다. 지금 김 위원장이 또다시 뉴스를 지배하고 있으니 어떻게 이 영화가 가장 오래된 미국의 대북한 전쟁에서 무기가 되었는지 이 영화를 다시 다룰 시점이다.

오바마의 대북 강경 노선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대결적인 북한 정책을 이해하게 되면서, 미북 관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래에서 밑바닥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그 까닭은 이렇다: 베넷의 체제 교체 제안은 과거 아니 지금도 오바마 대통령의 좌파 진보 정부가 고안한 김의 체제 단속을 약화하고 그들 생각에 북한의 필연적인 몰락을 서둘러 앞당긴다는 대북 정책의 끝판왕이었다. 분명히 그들은 실패했지만, 체제 교체 계획의 요소는 여전히 많다.

몇 가지 기본 배경부터 살펴보자. 미국의 대북 적대 관계는 한국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전쟁 당시 수백 만의 목숨을 앗아간 파괴적인 미국 폭격기의 융단 폭격으로 북한을 잿더미로 바꿔 놓았다.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나라는 분단되고 영구적인 전쟁 상태가 되었다. 평화 조약은 서명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무렵 휴전선에선 여전히 긴장이 감돌고 남한에서는 미군의 철수 조짐이 보이지 않자 북한은 미국의 체제 교체 전쟁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핵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아 세우기 위해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적대 정책을 종식함으로써 북한 정부의 두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북한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은 유일한 플루토늄 원천인 (영변) 원자로 1기를 폐쇄하기로 하는 대신에 미국은 전기 발전용 중유를 보내기로 하고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수로 2기(基)를 신설해 주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쌍방은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함으로써 상호 적대감을 종식하기로 합의했다.

12년 동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킨 제네바 합의는 수년 동안 지켜졌다. 그러나 2002년에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제2의 경로로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제기한 뒤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이 혐의 제기는 사실과 다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의 주도하에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으며 2006년에 첫 번째 핵무기 폭발 시험을 했다.

놀랍게도 부시 대통령은 이후 불과 3주 만에 협상을 재개했으며 6자 회담의 기치 아래 북한은 2007년경에는 다시 핵 프로그램 동결을 약속했다. 동 합의는 오바마가 2009년 당선될 당시만 해도 여전히 미결 상태였다. 오바마는 대통령 출마 당시 이란과 북한을 상대로 대화를 약속했지만, 코리아 문제에서는 신속히 방향을 수정했다.

비공식적 대화 석상에서 북한과 여러 차례 회동한 레온 시갈 전 국무부 관리에 따르면 오바마와 그의 아시아 담당 최고 고문인 제프 베이더는 2009년 남한의 새 보수 대통령인 이명박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이명박은 (대선 당시) 북한과의 관계 모색을 반대하는 공약을 펼쳤으며 강력한 대북 압박 전략을 주문했었다. 그 결정 후 얼마 못 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나 정례적인 대화는 폐기되었다. 직접적인 관계 모색을 대북 압박 전술로 대체하는 독트린은 공식적으로 "전략적 인내"라고 알려져 있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의 배후에는 현재 베넷이 제기하는 주장과 같은 잘못된 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북한이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협상을 통한) 합의 가능성 논의조차도 무의미한 짓이라는 생각이다.

오바마 정책이 얼마나 반동적으로 되었는지 과장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부시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와도 대조적으로 오바마는 비핵화에 대한 사전 약속 없이는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또한, 오바마는 북한이 제안한 평화 협정 서명에도 전혀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더 불편한 점은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혈전 끝에 멈춰선 한국 전쟁을 "승리"라고 지칭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바마는 1950년대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우파의 미사여구를 소생시켰고, 부시 시절 데이비드 프럼과 여타 네오콘의 사고를 부활시켰다. 오바마는 처음부터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방향을 급격히 우측으로 틀어버렸다.

오바마는 북한의 미사일 계획을 저해하고 속도를 늦추기 위해 비밀리에 대북한 사이버 전쟁을 개시하면서 긴장은 심화하였다. 오바마 정권 동안 북한은 핵폭탄 3기를 시험했으며, 사이버 전쟁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미사일 능력을 확장했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정권 내내 남한과의 연쇄적인 군사 연습을 진행했는데, 그 규모를 확대하고 연습 간격도 크게 줄였다. 군사 연습에는 전례 없었던 B-52 및 B1-B 스텔스 폭격기의 출격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과 지도부 제거 목적의 "참수 공격" 연습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곧바로 위기로 줄달음쳤고 이 위기를 물려받은 트럼프는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비평가들이 코리아 핵 공격에 대한 트럼프의 무신경한 암시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타당하지만, 오바마도 역시 비슷한 발언을 했다는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오바마의 해당 발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냉정함이 깊게 배어 있다. "미군이 가진 무기로 북한을 분명히 파괴할 수 있다."라고 오바마는 2016년 4월 CBS 뉴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몇 달 후 소니의 요청에 따라 더인터뷰를 조기 관람했던 다니엘 러셀 아시아 담당 수석 외교관은 실제로 북한 파괴를 위협했다. 러셀은 “김정은이 핵 공격을 감행할 향상된 역량을 갖더라도 바로 죽을 것”이라고 미 국방부 기자단에게 말했다.


당시 이러한 위협은 미 매체 사이에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고, 미국을 전쟁으로 몰고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를 비판하는 진보 진영의 불만 제기도 거의 없었으며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난한 진보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세스 로겐 "녹아내리는 머리" 암살 장면


더인터뷰 작품 아이디어가 나온 지 이미 오래지만, 진짜 영감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암살 이후 친구들과 "하릴없이 놀다가" 나왔다고 세스 로겐 감독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말했다. 그와 소니는 김정일의 큰 안경과 펑퍼짐한 머리 모양을 조롱했던 2004년 히트작 '팀 아메리카(Team America)'의 예상 밖의 성공에 고무되었다. 그러나 소니가 3,5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이유는 2013년 2월 북한이 3차 핵 실험을 했을 당시 한반도를 뒤흔든 위기 때문이었다.

핵 실험으로 김정은은 사상 처음으로 단번에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면서 소니로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나중에 해커들에 의해 유출된 "전략적 마케팅 및 연구" 보고서에 보면 소니 스튜디오는 "독재자의 기괴한 행동"을 테마로 밀라고 프로모터에게 말했다. 말하자면 김이 자존심만 있지 어리고 경험이 없으며 '부친' 문제가 있다는 점을 파고들라는 내용이다. 더인터뷰는 1940년대와 50년대의 영화계의 흔히 등장하는 어눌한 말투의 전형적인 아시아계에게서 나올 법한 미사여구와 모든 인종 차별적 이미지를 차용했다. 한국인은 로봇 같은 노예(김의 경호원처럼) 또는 미국인에 환장하고, 성에 굶주린 굴종적인 인물(로겐이란 인물에 빠진 김의 "최상부" 보좌관 역인 "숙"처럼) 개념까지 망라되어 있다.

영화가 끝날 무렵 할리우드 반군은 김을 상대로 자국민을 먹여 살릴 능력(1990년대 말 발생했던 끔찍한 기근에 대한 암시)에 대한 어려운 질문 세례를 퍼부은 뒤 승리의 쾌재를 부른다. 김은 미쳐서, "한때 속세의 인간들 사이 추앙받던 남자가 울음을 터트리고 바지에 오줌을 지리게 된다."고 로겐 역은 설명한다. 마약쟁이 역은 "그는 신이 아니다. 그는 똥꼬다."라고 비명을 내지른 뒤에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김은 "숙"의 반란군이 쏜 미사일 결정타를 맞고 그의 머리는 화염 속에서 폭발한다. 반란군의 임무는 "이제 권력이 올바른 사람들에게 이양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약쟁이 미국인들은 설명한다.

이 마지막 장면이 스튜디오나 나중에 선택받은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을 시사회에 초청했을 당시 가장 논란을 샀다. 첫 편집본이 2014년 6월에 선을 보였을 당시 소니의 일본 임원 중 일부는 영화의 폭력성과 인종 차별 장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 무렵 (미국의 미디어를 끊임없이 모니터하던) 북한은 이 영화 소식을 풍문으로 접하고 이 영화의 주제가 자국의 국가수반 암살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소니 스튜디오는 로겐에게 영화 관객들이 김의 얼굴이 서서히 녹아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 한씬을 제거해 수위를 낮추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에 로겐은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다.

"우리는 검열 얘기를 접했는데 북한에 대한 유화적 태도는 영화를 심각하게 해치게 되며, 또한 재정적으로 피해를 줄 것이다"라고 당시 소니 픽처스의 최고 경영자 에이미 파스칼에게 보낸 이메일에 썼다. "이 영화와 관련해 작성된 모든 기사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머리 녹는 장면은 끝내주는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확연히 "별로" 끝내주지 않는 어떤 장면을 영화 비평가들이 보게 될 때는 우리가 어떠한 얘기 보따리를 꺼내 놓더라도 훼손된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이다." (머리가 녹는 장면은 제거되었지만 로겐의 할리우드 버전의 선택적 도덕성은 아랑곳없이 드러냈다.)

이 시점에서 북한 외무부는 이 영화를 "전쟁 행위"와 동등한 것으로 비난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영화 상영을 묵인, 비호한다면 "단호하고 무자비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북한의 반응은 확실히 로겐이 바라던 결과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북한의 반응에 대해) "하이파이브가 넘쳐 날 것"이라고 했다. 전쟁을 유발하더라도?

"바라는 바다."라고 로건은 말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도 알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더인터뷰는 좋은 영화다!"'

이즈음에 소니는 랜드연구소와 한국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을 통해 미국 정부에 도움을 청했다.

오바마 고위 연락선과 함께 소니와 랜드연구소는 쿠데타 서사를 함께 작업


랜드연구소는 1971년 랜드연구소의 애널리스트 다니엘 엘스 버그가 베트남 전쟁의 비밀 역사를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한 이후 유명해졌다. 뉴욕 타임스와 다른 신문 지면에 공개된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 정부의 공식 거짓말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는 4년 후 전쟁을 끝내고 리처드 닉슨 종말의 서막을 알렸다.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 정리된 뒤 랜드연구소는 미 국방성 산하 정보기관의 주요 연구 센터 중 하나로 부상했다.

랜드연구소는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결과로 전면에 복귀했는데, 그 이유는 반군 진압(COIN) 관행과 베트남에서 시작된 제국 건설의 "소프트 파워" 측면을 재정립하고 미국이 침공하거나 전복한 국가들의 민심을 얻기 위함이었다. 북한 정부 "상층부" 사람들을 정치적 지원과 재정 지원을 제공하여 정부와 분리하는 베넷의 정책 제안은 바로 COIN 플레이북에서 나온 것이다.

랜드연구소와 소니의 유착은 랜드연구소의 만년 직원이었던 마이클 리치 최고 경영자가 제작한 더인터뷰의 첫 시사회 직후 이뤄졌다. 마이클 리치의 지도력 아래 랜드연구소는 미국 정보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2014년 11월 리치는 센추리 시티의 소니 본사에서 열린 국가안보국(NSA)과 함께한 "보기 드문 대화"를 주재했는데, 여기에 참석한 사람에는 당시 NSA 국장 마이클 로저스 뿐만 아니라 마이클 레이터 중앙정보국(CIA) 국가대테러센터 전 소장도 포함한다.

2014년 6월 더인터뷰의 첫 클립이 상영된 이후 리치는 베넷에게 전자 메일을 보내 랜드연구소의 "자금 총책인 마이클 린튼 소니 최고 경영자가 당신(베넷)에게 서둘러 지원할 내용이 있어 연락할 것"이라는 권고를 그가(리치) 받았다고 베넷에게 통보하였다. 린튼도 역시 고위 계통과 커넥션이 있다. 위키리크스가 수집한 해킹 당한 Sony의 전자 메일로 나중에 밝혀진 바대로 마이클 린튼은 마서즈 빈야드(휴양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으며, 그는 랜드연구소 이사회 멤버로서 정부 전체에 그의 연락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6월이후 줄 곳 베넷은 린톤을 통해 더인터뷰의 결정적인 자문역이 되었고 소니 스튜디오와 오바마 행정부 간의 연락선 역할을 수행했다.

더인터뷰의 제작 담당자들은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작업에 관한 조언에 특히 관심이 있었다. 베넷이 그가 작성한 이메일 중의 하나에서 드러나듯 그는 김의 머리가 폭발하는 장면에 대해 기뻐했다. "나는 김정은 암살이 북한 정부의 붕괴로 가는 가장 유력한 첩경임을 분명히 했다."라고 그는 썼다.

베넷은 말을 이었다: "마지막 장면의 수위를 낮춘다면 북한의 반응은 완화할 수 있지만, 김씨 정권의 제거를 논하는 이야기와 북한 주민에 의해, (최소한 북한 지배층에 의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다는 이야기가 남한에서 현실성 있는 생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영화 DVD가 북한에 유출된다면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북한 유출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마지막 장면 만은 개인적으로 건드리고 싶지 않다."

베넷은 이 영화가 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미국 주도의 쿠데타를 유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랜드연구소 웹사이트에 "미국과 소니 픽처스가 북한 내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썼다. "'신'과 같은 김의 실체가 어떤지 묘사하는 서술을 포함하여 적어도 더인터뷰의 장면 일부분을 담은 DVD를 북한으로 몰래 찔러 넣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사실, 이 스턴트 버전은 더인터뷰의 제작 직후에 곧바로 시도되었다. 바로 워싱턴의 광신적인 양대 레짐 체인저(체제 교체 운동가)인 네오콘 작가 제이미 키르히크(Jamie Kirchik)와 우익 인권 사기범 토르 할보르센(Thor Halvorssen)이 총대를 멨다.)

이 영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담보하기 위해 소니는 국무부 관리에게 이 마지막 장면을 선보이기 위한 일정을 잡았다. 린튼은 동아시아 부 차관보였던 다니엘 러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소니 스튜디오는 "미국인의 안전과 미국인 북한인 관계에 안전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와 여타 미국 관료들은 이 영화의 폭력적인 결말을 축복했다. 러셀의 개입 사실이 누설된 후, 국무부는 이 영화에 어떤 역할도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러셀 자신은 그와는 상반되는 얘기를 했다. 201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한 연설에서 그는 말했다. "내가 소니에 더인터뷰 영화 개봉에 문제될 것 없다고 '청신호를 보낸' 바로 그 미국 관리다."

공식 승인이 떨어지긴 했지만, 소니는 처음에 더인터뷰를 DVD 버전으로만 유통하기로 합의했다. 소니가 2014년 12월 이 영화의 상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을 당시 오바마는 "어딘가에 있는 독재자가 미국에 대해 검열을 가하려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 수 없다"라고 공언하며 더인터뷰의 최대 옹호자가 되었다. 그의 발언과 함께 진보 좌파 할리우드 배우들과 감독들이 상당한 이목을 끌기 시작했는데 조지 클루니와 마이클 무어 같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표현의 자유 행위로 변호하며, 미국인들에게 김의 "검열"을 무시하고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도록 촉구했다.

이때 즈음 소니는 "평화의 수호자(Guardians of Peace)"라고 불리는 단체에 의해 해킹당했다. FBI는 나중에 이 그룹이 비밀리에 북한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정부도 동의하길, 최고 정보 관리들은 북한이 ‘중심적으로 연루되어 있다(centrally involved)’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 결론에 대해 많은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그레고리 일리치가 '카운터펀치'에 기고한 비평과 킴 제터가 와이어드에 기고한 분석글) (의문을 제기하는 측) 그들은 태국, 싱가포르 및 다른 지역의 서버에서 발견된 FBI의 "증거"가 빈약하고 추측성이며, (할리우드에 관한 대단한 내부자 지식이 있는) 실제 해커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그리고 전직 소니 직원일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2015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해킹 의혹을 "전쟁 행위"라고 못 박고, 이를 빌미로 민간 기업을 대신해 미국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또 하나의 미국 행동을 시작한다. 오바마의 행정 명령은 해킹 의혹에 대한 보복으로 3개 북한 기관과 12개 정도의 "북한 주요관리인"들을 대상으로 제재를 부과했다. 미 재무부는 이번 대북 제재는 북한의 "무수한 도발, 특히 최근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정면 대응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은 마지막 남은 냉전 적대국을 상대로 공개적인 적개심 기조"로 회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이러한 조치가 취해지자 뉴욕타임스는 해킹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 폭로성 기사를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NSA가 2010년 초에 북한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한 바 있으며, "한국과 다른 동맹국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 직접 침투했다"고 보도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NSA는 해커 용의자를 감시해왔고, 해킹 작업을 하도록 허용했을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북한 컴퓨터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침투한 점은… 왜 미국이 소니에 경고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6월 북한이 이 영화 발표에 대해 '전쟁 행위'라고 조기에 경고했었고, 지난가을에 해킹 공격이 현실화하는 와중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실제로 소니의 파괴를 원한다는 확신을 김의 정부에 심어주어 이 영화의 피해를 줬다. 더 많은 미사일과 핵 실험이 뒤따랐고, 오바마 행정부가 끝나갈 무렵에는 부시 대통령이 2009년 퇴임 당시보다 북미 관계가 훨씬 더 악화하였다. 달리 말하면 이 영화는 의도한 효과와는 대립하는 효과를 낳았다. 바로 김의 탄압을 촉발하여 내부에 존재하던 반대를 잠재우게 된 것이다.

오늘날 김정은은 북한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트럼프가 3일 트위터에 (문 대통령의) 관계 모색에 대해 "유화 정책"과 동일시하긴 했어도 트럼프 행정부는 천천히 자신의 정부와 더불어 어떤 종류의 북미 협상을 향해 가는 듯 보인다. 브루스 베넷은 북한 지도자 타도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최근 게시글에서 김이 자신의 무기에 환장하는 까닭은 자기방어가 아니라 "핵은 아랫것들에게 그가 '신'임을 보여주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글에서 김은 "편집증에 사로잡힌 나약한 지도자"라고 썼다.

동시에, 오바마 행정부가 채택한 체제 교체/사이버 전쟁 프로젝트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는 넘쳐 난다. 몇 주 전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 국장은 아스펜 포럼(Aspen Forum)에서 군중들에게 "미사일과 핵무기"와 김을 "분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를 두고 "미국이 북한 체제 교체를 모색하고 있다"는 "강력한 힌트"라고 비난했다. 8월 29일, 세바스찬 고르카 백악관 전 부보좌관도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면서 같은(체제 교체 모색) 속내를 드러냈다. "더 드러나지 않은 측면에서 현상을 보면, 당신은 많은 미사일 시험이 실패한 것을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대부분의 테스트는 실제로 실패했다. 때로는 북한의 무능을 넘어서는 실패 원인이 있을 것이다."

민주당도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코네티컷 상원 의원 리차드 블루멘털 상원 의원은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2014년 북한의 소니 해킹 혐의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바마의 전직 고위 안보 보좌관과 남한의 신임 문재인 대통령 사이 흥미로운 설전도 있었다. 8월 4일 문재인은 거대 풍선에 반북 선전물을 담아 국경 너머로 보내는 한국의 우익 집단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풍선 날리기는 베넷이 자주 제안하는 전술 중에 하나로 네오콘인 컬칙과 할보르센이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같은 행동은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특히 긴장이 심할 때 "우발적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문 대통령은 경고했다.

그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의 유엔 대사였던 사만다 파워는 트위터상에 분통을 터트렸다. 아마도 북한과 같은 적국에 대한 "인도적 개입"을 신봉하는 인사로는 그녀가 단연 최고일 것이다. 파워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문 대통령의 지시에 반응하였다. "정보는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1945년 이래로 한국에서 외교관 또는 장군으로 근무한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사만사 파워도 역시 남북을 통틀어 코리아를 위한 최선의 길은 유일하게 미국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태도는 워싱턴 조야의 지배적인 견해인 듯 보인다. 최근 위기로 인해 워싱턴 소재 국가 안보 엘리트 사이 미국 주도의 북한 전복에 대한 열망이 거세지기만 하고 있다. 김의 최근 핵 실험 이틀 전인 지난 1일 워싱턴포스트 잭슨 딜 사설면 부편집장은 지면을 통해 "북한 체제 교체가 북한 핵 위협을 종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전 국무부 인권 수석 톰 말리노브스키가 주장한 것처럼, '북한의 정치적 변화와 한국의 통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지만 실제로는 현 정권의 비핵화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전쟁 이외에 외교 교섭 시도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톰 말리노브스키의 언급이 핵심적이다. 그는 전임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 워싱턴 지부 국장이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몇몇 문제에 대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사만사 파워나 오바마 정부의 좌파 진보 네오콘들이 선호했던 (시리아의 비행 금지 구역 설정과 같은) 위험한 인도주의적 개입 정책의 최전방에 있었다. 잭슨 딜이 인용한 폴리티코 기사에서 말리노브스키는 다음과 같이 결론 지었다. "우리의 [체제 교체] 전략의 핵심 목적은 이런 자연적 북한 내부 프로세스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인데, 변화가 올 경우를 대비해 우리 자신과 동맹국 그리고 북한 사람들을 준비시키자는 것이다. 이는 정확히 베넷의 논지다.

그러나 베넷과 말리노브스키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두 전직 고위 국가 안보 관리인 리차드 소콜스키와와 아론 아론 데이비드 밀러는 최근 북한에 대한 뉴스와 분석의 원천인 38North에서 주장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베넷과 다른 사람들이 계획한 "참수" 캠페인이 거대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다. 미국의 대북 외교에서 오랜 세월 경험적 바탕이 있는 그들은 "김정은 전복 시도는 현재의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적었다.

한국인들은 그러한 이성의 목소리와 외교가 승리하길, 워싱턴과 평양 간의 적대적 세월 끝에 외교적 해결책이 발견되길 희망한다. 그것이(이성적 외교) 베넷과 워싱턴의 체제 교체 운동가들에 의해 추진된 이라크 같은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팀 셔록은 워싱턴 거점 언론인으로 도쿄와 서울에서 성장했으며 1970년대 이래로 한국 관련 글을 써왔다. 그는 트위터 계정 @TimothyS에 자주 글을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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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ow Sony, Obama, Seth Rogen and the CIA Secretly Planned to Force Regime Change in North Korea AlterNet

2018년 5월 22일 화요일

북한 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줬던 비핵화 해법

나는 북한이 지금의 북핵 해법을 막 개발하고 있을 당시에 그들과 면담을 했던 몇 안 되는 전직 관리 중의 한 명입니다. 그들과 함께했던 당시 대화는 비핵화 달성 방법에 관한 최상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북한이 비핵화 용의를 말할 때 이들은 정확히 무엇을 하겠다는 의미일까요? 그리고 정확히 어떻게 비핵화하겠다는 걸까요? 예고된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의 한복판에는 그 같은 핵심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금주에 모든 일이 무산될 수 있다고 협박했는데, 이 협박은 김정은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비핵화 비전에 반대하면서 나온 얘깁니다. 북한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세계는 우리나라가 처참한 말로를 걸은 리비아나 이라크가 아니라는 데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며 "리비아 모델"을 소환하며 일방적인 비핵화를 주창한 볼턴에 대해 질타했습니다. 백악관은 신속하게 볼턴의 발언을 거둬들였습니다.

양측의 주고받은 말씨름으로 미국이 어떤 비핵화 계획을 세웠는지 분명해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미 전직 정부 관리로 구성된 단체가 북한 관리들과 회동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북한의 북핵 해법은 거의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내가 다른 미국 관리들과 함께 참석하기도 한 2013년 북한 당국자들과의 연쇄 회동에 귀중한 단서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비핵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며 예고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마련한 것이 거의 분명합니다. 백악관이 해법 보유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당시 회동은 5년 전 일이지만, 김정일이 지금 극적인 효과를 발하고 있는 매우 초기 단계의 핵전략이 나와 있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마침 병진 노선을 법제화했는데, 이 병진 노선은 핵무기 개발을 방패 삼아 북한 경제를 현대화한다는 구상을 말합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당시 개인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을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당국자들이 우려한 것은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 고조되던 긴장뿐만 아니라 한반도 상공을 계속 넘나드는 핵 능력을 갖춘 폭격기의 전개도 당연히 우려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한미 양국 정부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과 함께 시작된 북한 지도부 교체 과정 중에 북한을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당시 한 북한 관리는 나에게 "핵"은 "생존"과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북한 관리들은 "현 상황"에서 만 핵이 생존과 같다고 말하며 북미 긴장 관계라 풀리면 접근 방식을 변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3년 6월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김정은이 의장으로 있는 북한의 최고의 기관인 국방위원회는 비핵화 협상의 문이 열려있다는 중요한 내용의 새로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당시에 이를 두고 대미 선전으로 보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한 고위 외교관은 미국 대표단 멤버에게 자신도 북한 정부가 오래전부터 비핵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치부했던 비핵화를 다시 언급해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나도 회동에 참석했었는데 북한 당국자들은 그 발표가 김정은 자신의 발표라며, 이는 북미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거듭해서 비핵화가 미국과의 양자 회담의 의제로 올릴 수 있으며 심지어 2008년 중단된 6자회담과 같은 다자 협의에서도 의제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그런 입장은 환영할만한 유연성을 보여줬습니다. 이는 비핵화 제안이 단순히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의 동맹을 고립시켜 미국 사람들과 동맹 사이를 갈라치기 하려는 수법은 아니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러나 북한도 역시 비핵화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로 남들 보다 동정적인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인들과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하나의 방증이기도 했습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다만 조건 하나가 있었는데, 미국이 예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전제 조건으로 걸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화가 재개되면 그런 조치를 단행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제안은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2012년 2월 "윤일 담판"의 붕괴로 한 번 덴 적이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 합의로 핵과 미사일 시험이 중단되리라 희망했지만, 북한은 곧바로 장거리 로켓으로 우주에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2013년 내내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도움을 받아 물밑에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오바마 정부가 종종 공개적으로 말했듯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지 증명해 보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그 전제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셔틀 외교는 실패했습니다. 그 뒤 북한 정부의 대화 의사를 충분히 타진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대화는 싸게 먹힙니다. 북한 정부의 비핵화 선언은 단지 하나의 계략이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북한 정책 분석가들은 북한 정부는 성명을 가볍게 발표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앞서 말한 민간 회담에서 북한 당국자들은 실제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당연히 북한 당국자들에게 비핵화의 열쇠는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이 요구는 상당수 미국인에게 막연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당히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대북 "적대 정책"의 종식이 수반하는 것은 핵무기 제거의 대가로 정치적, 안보적, 경제적 대결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부문은 미국이 양국 사이 국교 수립을 통해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북한이 지적했듯이,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도 미국이 한 번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극소수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는 북한 정권을 축출하려는 미국의 본심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안보적" 부문은 1950년대 이래로 한반도에 존재해온 전쟁 상태를 정전 협정을 영구 평화 조약으로 대체함으로써 한국 전쟁을 종식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제 부문은 한국 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북한에 부과된 무역 제한과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 모든 요소가 단계적 접근 방식으로 통합되는 것으로 상정합니다. 매 단계에서 쌍방은 최종 결과로 도달하기까지 적대 정책의 종식과 비핵화 조치를 동시적으로 밟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자체 방정식 해법으로 3단계의 직관적인 절차를 시각화했습니다. 이는 자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핵 시설을 불능화하고, 마지막 단계로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 시설까지 폐기한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의 계획은 고무적이지만, 잠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3단계 절차가 그대로 진행되려면 미국은 비핵화의 각 단계에서 "적대 정책" 폐기 의사를 보여주기 위해 취할 조치를 미리 선언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고 나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 동결에 착수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미국 대표단은 그런 식의 선언은 북한의 동일한 절차가 배제된 채 미국이 취하게 될 모든 조치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거라고 설명하자 북한 사람들은 상호 이행을 약속하는 양자 선언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상 예고된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이상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북한이 자체 모든 핵 능력에 대한 다시 말해 실험뿐만 아니라 폭탄 재료 생산까지 포함하는 내용의 초기 동결은 흥미롭지만, 다른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러한 동결은 북한이 더 많은 무기급 재료를 생산하지 못하게 하고 자체 무기 폐기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큰 진전일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새로운 폭탄 제조에 도움이 될만한 시설을 숨기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현장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 대표단이 검증 요건을 제기하면 북한도 그 점이 큰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창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앞서 부시 행정부 당시 협상에서 북한은 그러한 조치를 수용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2013년 당시 회동 중에 북한 당국자들은 마찬가지로 미국에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남한 보호 목적의 핵우산을 중단하고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그러한 요구는 현실적으로 미국과 남한 모두한테 전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며 대화 중간에 제동이 걸리는 결과를 낳을 거라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에도 한 번 이상 그랬지만, 최근에도 그 요구를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이미 5년 전에 북한의 이러한 비핵화 게임 계획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북한의 핵 능력은 그동안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게임을 그들과 논의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또다시 민간 부문에서도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북한 사람들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의를 기대했을 것이고 그들의 협상 카드를 노출하기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의 2013년 계획에서 일부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이미 2013년 계획에서 탈피했습니다. 미국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방향 전개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 실험 장소를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는 5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어쨌든 북한이 당시 제시한 제안은 다가오는 북미 협상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그림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개략적으로 제시한 내용은 단계적 비핵화 절차로써 북한의 비핵화 단계마다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를 동반합니다. 이 방식은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이후에 그에 따른 혜택을 받게 되는 존 볼턴이 추인한 "리비아 모델"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볼턴의 견해를 반드시 추인(推認)하지는 않습니다. 수잔 손턴 국무부 차관보 대행은 지난주 장기간의 비핵화 절차에서 여러 단계가 예정되어 있다면서, 핵심 이슈는 어떤 조치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가 여부라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비핵화에 대한 이러한 차이점이 어떻게 해결되고 북한 사람들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지가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북한을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회의 성패에 못지않게 위험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손턴의 접근 방식은 실제 장기적인 비핵화 실현을 의미입니다. 볼턴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그렇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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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원본보기: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왜 미국 미디어는 코리아 이야기를 잘못 전달하는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1부상의 담화가 알려지자 단골손님(정치 평론가)들은 트럼프의 우쭐한 평화 이니셔티브는 줄곧 사기였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기 힘들어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물 건너 같다! 북한 사람들은 줄곧 속임수를 쓰고 있었고 "거래의 기술"자 트럼프는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만세! 만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에서 윌리엄 크리스톨(Bill Kristol)에 이르기까지, 축하 행사는 떠들썩하고 트위터 세상은 고소하다는 투의 무절제한 트윗으로 넘쳐난다. 마침내 대통령의 정적들은 "내가 뭐랬어, 꼴 좋다"라고 말할 근거가 생겼다.


꼭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내심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파티 참가자들은 잘못 판단했다. 언급한 전쟁 기생 세력들이 기뻐할 거리가 없다. 우선, 북미 정상회담은 미 국무부가 밝혔듯이 예정대로 간다. 미국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 방문 채비를 갖추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게다가 실제로 서방 언론이 진리의 복음처럼 말하는 내용보다는 북한 사람들의 실제 성명을 읽는다면, 북한은 반대급부도 없이 일방적인 양보는 하지 않는다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진다. 누구도 북한이 일방적 양보를 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북한은 존 볼턴의 이름을 초들었다.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이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으로 마감된 볼턴의 "리비아 모델" 소환을 비난하며 한 말이다. 또한, 북한이 경제 원조와 맞바꾸기 위해 자존심은 내팽개치고 보유한 핵무기를 포기할 거란 생각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라고 알려진 베저스-블로그에서 근무하는 아나 피필드로서는 북한의 성명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기엔 썩 충분하지 못하다.

"북한은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빠르게 골대를 옮기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핵무기 포기 주장을 멈춰야 하며 북미 대치 국면을 풀려면 리비아 스타일 해결책을 거론하지 말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골대를 옮기는 건 다름 아닌 피릴드 씨다. 그리고 그 골대는 김정은이 카다피의 운명을 수용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세워진 골대도 아니다. 방금 전쟁에 패배하고 항복 조건을 협상하는 것도 아닌데 그 누가 일방적인 양보를 하겠는가. 북한이 말하는 내용을 왜곡하는 걸 보면 트럼프 시대 워싱턴포스트의 퇴행적인 언론 행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신문의 편집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을 나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피해를 본다. 기사 제목 자체도 거짓이다: "북한 핵무기 포기를 강요하지 말라며 북미 정상회담 취소하겠다는 위협을 배가했다."고 했지만, 북미 정상회담 취소 위협을 "배가"한 것이 아니라 내 걸은 조건이 협소해진 것이다. 북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며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 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바로 거창한 "조건절"을 제외하더라도 조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하겠다는 말과 "그만두겠다"는 표현은 완전 내용이 다르다.

자, 제프 베저스가 트럼프 타도 목적의 십자군 전쟁에 무제한의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워싱턴포스트가 그렇고 CNN 집단도 그렇다. 그들 무리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 매체의 소위 반개입주의 자들이 앞서 언급할 식의 허위 보도 행태에 동참하며 한바탕 비웃움 놀이에 빠져있는 광경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인간 전체의 운명보다는 하찮은 편견을 우선시한다는 건 특별한 종류의 차가움과 자기 중심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소위 호전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으로 "화염과 분노"를 예고하는 또 하나의 트럼프 트윗을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대신 미국은 이번 주 예정된 남한 공군과의 합동 군사 연습인 "맥스 썬더" 훈련에 B-52 폭격기를 제외하기로 했다. 왜냐면 북한은 역시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여느 군사 연습 때와는 달리 난리를 피웠는데 B-52는 핵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B-52의 예정된 등장이 남북 관리들이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인프라 원조 논의를 위한 예고된 후속 회담을 갑자기 중단하게 된 이유였던 것이 명백하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미국의 "핵 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 대화 분위기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지목하며 남북 고위급 회담이 중지된 명시적인 이유로 그 점을 지적했다.

아마도 남한 쪽의 강한 요구에 따라 실제 현장에서 훈련 과정을 주도하는 양국 단체 대표 사이에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양국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군사 당국 사이의 회의였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만나 1시간도 못돼 B-52 핵 폭격기를 배제하기로 합의했다. 존 볼턴은 그 결정에 만족할 수 없었겠지만, 볼턴이 쇼를 관장하지 않는다. 다만 비웃던 반대론자들은 우리가 그리 믿길 바랄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는 처음부터 DMZ를 사이로 남북한 사람들에 의해 추진됐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화해와 민족 공존에 기반을 둔 공약을 실천했다. 김정은에게도 같은 수준의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호감형은 아니지만, 아마도 한반도의 고르바초프일 수도 있다.

코리아 관련 허위 보도가 대량으로 급속히 확산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들이 꼴사납게 대놓고 비웃는 광경은 우리가 미국의 정치 집단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나는 그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기성 권세가와 공모하는 부패한 협력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편협한 편견이 옳다고 확신하는 한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비열한 인간 군상들이다. 

서방 언론에서 코리아 이야기가 유포되는 방식에서 이 나라의 부패한 언론을 보여주는 슬픈 이야기를 깨닫게 해준다. 기본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물론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전하는 코리아 이야기는 내 판단으로는 엉터리이다. 그들 매체는 전혀 사실이 아님에도 북미 회담이 사실상 끝난 것으로 허위 보도했다. 이러한 인식의 오류는 트럼프 장애 증후군 효과 탓이다. 정신 질환인 트럼프 장애 증후군에 걸리면 시사 문제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고, 우리 최고 경영자를 망신주는 의식에 동조하도록 환각 상태에 빠트린다.

북한의 거부감 표시는 대다수 보도가 성격을 규정하듯 급진적인 유형 전환이 아니라 단순히 지역 정서의 반영이다. 북한은 특히 "일방적인" 양보를 거부하고, 한국과의 공동 성명과 중국과의 공동 성명을 재확인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공동성명의 내용을 보면 "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북한에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할 게 아니라 안보 보장과 경제 개발 지원 등 북한의 밝은 미래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 사람들이 볼턴과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 사이를 이간질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 타임스는 미 행정부의 두 권력 기관 사이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기관의 수장이 최근 임명된 데다가 일각에서는 초반부터 라이벌로 간주한다. 뉴욕 타임스 사설은 워싱턴포스트보다 덜 노골적이지만, 행정부의 조직력이 무너졌다는 논조가 기사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다가옴에 따라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사이 첫 회담이 예정대로 열린다. 역사적인 사건에 이런 종류의 자기 중심적 관점을 보이는 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냉전 드라마의 배역을 맡은 고통과 지친 나날을 보내야 했던 한민족의 희망과 열망은 잊어라. 중요한 것은 폼페오와 볼턴의 역대급 권력 투쟁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최대 외교 정책 이야기는 완전히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독자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급조된 한국 "전문가"의 등장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왜냐면 대부분 회의적 시각을 갖은 특수 이해관계 종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언론 환경에서 당신은 매우 특수 이해관계자의 시각만 접하게 된다. 그 시각은 한민족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미국의 이해관계이다.

한민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성명서에 나오듯 그들에게 어떤 운명이 예정되어 있나? 그 운명은 어디에서 결정될 것인가? 워싱턴에서 결정될까? 아니면 한반도에서 한민족 스스로 결정할까?

아마도 싱가포르에서 결정될 것이다. 2016년 미 대선의 깜짝 승부사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몇 가지 놀랄 만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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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The Korea Story: Why Is the Media Getting It So Wrong? Antiwar.com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존 볼턴은 북한에 '리비아 모델'을 제안; 북한은 왜 그 제안에 대해 분개했을까?

평화와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리비아는 언급하지 말라. 이 말이 북한이 수요일 남한과의 회담을 연기하고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6·12 정상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한 미국에 대한 메시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 공군 훈련은 별도로 치더라고 북한은 리비아 스타일의 해결책이 북한에 통할 거라는 미국의 안보 보좌관 존 볼턴의 제안에 특히 낙담해 보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그 무슨 리비아핵포기 방식을 내돌리고 있다"고 북한은 성명을 통해 밝혔다.

북한은 계속해서 "세계는 우리나라가 처참한 말로를 걸은 리비아나 이라크가 아니라는 데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 후세인 전 이라크 지도자는 2006년 교수형을 당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2011년 반군 세력에 의해 체포되어 살해되었다.)

리비아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포기를 설득하기 위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지난 4월 볼턴의 제안에 대해 북한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볼턴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리비아 모델"에 북한 정권 교체가 포함된다고는 암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신뢰를 쌓고, 비핵화 노력을 검증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보기 원하는 것은 그것이 단지 수사가 아닌 진짜라는 증거"라고 볼턴은 4월 CBS에 말했다. "그들(리비아)이 미국과 영국 감독관들이 모든 핵 관련 장소에 진입할 수 있게 허용했던 것이 우리가 회의론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사찰에 대한) 국제적 메커니즘에 의존할지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예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현장을 보았다."

볼턴 대사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이미 10년 전 리비아 모델에 기반한 검증 계획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2008년에 미국은 앞서 리비아에서 사용했던 사찰 과정에 기반한 검증 절차를 북한에 제안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계획 가운데 표본 채취와 미공개 시설 방문 두 가지 핵심 사항에 대해 반대했었다.

그렇다면 리비아가 북한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미국은 2003년과 2004년에 카다피가 초기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어떻게 설득했을까? 그 대답은 누구에게 질문을 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 핵무기 프로그램의 운반 경로를 차단하는 정보 작전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리비아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직접적인 동기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자신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타도가핵무기 사업의 포기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시사했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 해체를 발표할 당시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잠재적인 적국에 대해 남겨진 선택지를 명확히 했다."며 이라크 전쟁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분석가들은 이라크·리비아 연계에 대해 비판한다. 그들은 부시가 자신의 이라크 유산을 방어하려고 성공적인 리비아 사례를 활용하려는 시도일 거라고 말한다. 2004년 초 브루킹스의 외교 정책 분석가 마틴 인디크(Martin Indyk)는 카다피의 양보는 수년의 걸친 제재와 국정 난맥 이후 발생한 리비아 경제 위기와 주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워싱턴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인디크는 적었다. 북한은 오랜 동안 중국에 의존해온 반면, 2000년대 초 미국은 중동 패권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카다피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다.

카다피는 리비아 회생을 위해선 국제적으로 우군이 필요했기 때문에 궁국적으로 미국과 화해 기조를 취하게 되었다고 인디크는 말한다. "범아랍주의에 신물이 난 그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지만, 결국 옛아프리카 우방으로부터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제재 조치와 그에 따른 오명을 걷어내는 것이 카다피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고 인디크는 적었다.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카다피가 협상을 통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종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처음엔 거절 당했다.

제재 조치와 핵무기 사업 포기를 맞교환하자는 제안이 충분치 않자, 카다피는 영국과 분쟁 중인 1988년 펜암 103기 폭파 사건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항공기 폭파 사건 해결은 미국이 제시한 추가 조건이었다. 카다피는 전체적으로 27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2003년에 책임을 수용했다. 다만 폭탄 테러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고수했다. 영국과의 갈등 봉합을 위해 리비아는 270명의 희생자 가족들에게 각기 최소한 5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동의했다.

영국과의 합의는 리비아 핵무기 사업 종료와 그에 따른 국제 사찰단의 검증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볼턴이 CBS와의 인터뷰에서 거론한 일종의 조치들이다.

비밀 핵무기 사업을 포기한 지 4년 만에 그가 5일 일정으로 파리를 방문할 당시만 해도 카다피는 회생한 듯 보였다.

"존경의 길로 나서기 시작한 나라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면, 그 길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는 카다피의 프랑스 방문을 방어하였다.

그러나 2011 년 아랍의 봄이 시작되자 사르코지 대통령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주도해 카다피 타도를 이끈 지도자들 중 하나였다. 리비아가 당시에 핵무기를 통제하고 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였다. 카다피는 나중에 반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볼턴이 말하는 "리비아 모델"은 2003년 당시 일을 말하는 것일 수 있지만, 아마도 북한이 이해하기론 2011년 벌어진 마지막 에피소드일 것이다.

볼턴의 발언은 북한이 16일 밝혔듯 "심히 불순한 기도"처럼 들릴 것이다.

이 보도에 글렌 케슬러가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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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보기: John Bolton proposed the ‘Libya model’ for North Korea. Why is Pyongyang so angry about it? Wash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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