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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4일 토요일

반북 민간단체 삐라 살포 계속한다고 공언


1. (기밀) 요약: 11월 26일 정치 공사 참사관은 남북 간의 긴장 고조를 초래한 반북 전단 살포의 책임 당사자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면담했다. 박상학은 통일부와 동료 민간 단체 등에서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계속할 각오라고 말했다. 다음번 전단 혹은 박상학이 부르는 말인 “풍선 엽서”는 바람의 상황에 따라 이르면 12월 1일 판문점 근처에서 날려 보낼 수 있다. 박상학은 그의 단체가 정부 또는 돈 많은 개인의 기부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금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하였다. 박상학은 한국 정부가 그가 믿기엔 자신의 단체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털어놓으며, 그 이유는 한국 정부가 “진짜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가 만든 민간단체를 폐쇄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양 엘리트의 아들로서 박상학은 북한에서 밝은 미래가 보장되었지만, 대남 공작원으로 근무하던 그의 부친이 북한 당국자와 충돌을 빚으면서 1999년에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박상학은 한국의 첩보 기관인 국정원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난 전 북한 장교 출신의 다른 탈북자와 2001년 결혼하였다. 요약 끝.

통일부의 압력에도 대중의 지지 다시 구해

2. (기밀) 11월 26일 정치 공사 참사관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회동하였다. 그는 전단 살포 활동 탓에 현재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어 있다. 박상학은 특히 통일부뿐만이 아니라 시민 단체와 교회 단체로부터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강도 높은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11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3개월간 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북한이 개성관광을 비롯한 열차 운행 중단, 개성공업지구 통행 제한 등 출입경을 제한하는 새로운 조치를 발표하였다(참조전문 가). 그러면서 그가 애초의 (살포 중단) 결정을 쉽게 번복할 수 있었고, 실제로 11월 24일에 그렇게 했다.

3. (기밀) 다음 전단 살포는 판문점 근처에서 있을 예정으로 바람에 상태에 따라 이르면 12월 1일이나 2일경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박상학은 미화 700달러 상당의 1달러 지폐와 중국 5위안 지폐를 모았다. 박상학은 한국 정부가 진짜로 자신의 민간단체를 폐쇄하길 원했다면,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전단 활동을 막지 않는 걸 보면 한국 정부가 실제로는 자신의 전단 활동을 지지한다는 방증이라고 박상학은 털어놓았다. 또한, 박상학은 한국 정부 사람들이 “현재로썬 달리 뽀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박상학은 그가 전단 활동을 재개한 11월 24일 이후로 자신에 대한 보수 단체의 지지세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고 말하였다.

참조기사: 통일부, 탈북단체 법인허가 취소 청문 완료..취소 시 모금 불가

자금 부족

4. (기밀) 박상학은 자금 부족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살포한 삐라의 효과는 북한의 반응을 볼 때 명백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삐라는 북한 사람들을 계몽하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에 비해 라디오 방송은 그 영향력 제한적인데도 민간단체와 관변 단체는 라디오 방송에는 계속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그의 활동은 무시되고 있다.

5. (기밀) 박상학은 자신의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과거에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으로부터 1년에 대략 미화 85,000달러를 받았지만, 해당 기금은 2년 전 달걀 세례 사건 이후 끊겼다고 설명했다. (주석: 전직 안기부 관리를 역임했고 당시 국회정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형근은 수년 동안 북한에 간첩을 보낸 책임 당사자인데 2006년 7월에 국가보안법 개정을 제안했었다. 한국의 보수단체는 그런 제안에 반대하였다. 화풀이로 던진 달걀 세례 용의자가 바로 박상학이다. 주석 끝.) 박상학은 그 사건으로 인해 기소된 적이 없음으로, 그게 어떻게 지원금 중단 사유가 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박상학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 관계자와 회동하였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6. (기밀) 박상학은 전단 비용 예기로 돌아와서 미화 5,000달러 정도면 반북 전단이 가득한 풍선 하나를 날려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풍선 엽서” 3만 개 정도에 해당한다. 그는 최근 삐라의 명칭을 바꿔 "풍선 엽서"라고 부른다. 그는 현금이 첨부된 삐라는 비용을 더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통 삐라 200개당 미화 1달러를 첨부한다. 박상학은 북한의 친척에게서 들은 소식이라면서 북한 서남지역 부근에 떨어진 1달러 지폐가 첨부된 삐라는 북중 국경 부근까지 빠르게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이 구석구석을 삐라를 찾아다닌다고 말하였다. 암시장에서 1달러를 환전하면 한 달치 임금과 같다. 당국도 이 사실을 눈치챘다. 1달러 지폐를 환전하는 자들이 나중에 말썽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박상학은 이제 중국과 북한 경계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북한 5,000원권 지폐를 전단에 사용할 계획이다.

개인사

7. (기밀) 박상학의 부친은 남한으로 요원을 남파하는 책임을 진 고위급 대남 공작원이었다. 1997년 요원 다수가 조직을 배신하면서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에 박상학은 평양 소재 사회주의청년동맹 선전선동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평양 지배계급의 일원이었던 박상학은 김일성 대학과 김책공업대 체신학부를 졸업했기에 그의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가 일본에 체재하고 있던 당시에 부친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숙청이 임박하자 박 씨는 중국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박상학과 모친, 형제자매 두 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1999년 베이징을 거쳐 남한행 항공편으로 입국했다. 박상학은 어린 조카들을 비롯해 먼 친척들은 박상학의 소재와 관련해 심문을 받은 이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역주: 사실과 다르다. 아래 영상 참조). 박상학은 국정원을 통해 만난 다른 탈북자인 전 북한군 장교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6살 먹은 자녀가 있다.



8. (기밀) 박상학과 직계 가족 6명도 탈북자로 자유북한운동연합 직원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까지 세 개의 민간단체가 북한에 삐라를 보냈다: 박상학의 자유북한운동연합, 납북자가족모임, 그리고 한 종교 단체(역 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10월에 국민적 비난을 받은 끝에 모든 삐라 살포를 중단하였다. 납북자가족모임은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실제 공헌도는 없다. 그래서 박상학의 조직이 당분간 대북 삐라 살포의 책임 당사자로는 유일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의 노력은 여전히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의견

9. (기밀) 남북한 사이의 선전전은 한반도 분단만큼이나 해묵은 일이며, 삐라를 비롯해 때때로 경량 라디오를 풍선에 날려 보내는 일도 오래되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선전도 박상학의 소자본 사업만큼 북한을 괴롭혔던 기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박상학의 전단은 디자인도 간단한 데다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 종교색이 있다거나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이전의 삐라와는 다르다. 예를 들면, 박상학의 가장 최근 전단에는 김정일의 건강 상태나 김정일의 전 부인과 내연녀, 딸린 자식 등의 가계도 등이 상세히 들어있다. 물론 다른 중요한 차별점은 전단에 미화 1달러 지폐나 소액의 중국 위안화 지폐를 삐라에 첨부한다는 점이다. 박상학은 이러한 혁신이 더해지면서 그의 삐라의 가치가 엄청나므로 북한 주민들이 전단을 찾아다니게 하고 있다.
스티븐스

원문 보기: ANTI-DPRK LEAFLET DROPPING WILL CONTINUE, VOWS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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