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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6일 수요일

갈림길에 선 미국 패권

다극 체제의 한 단면


미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기이한 대선을 치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현재 '세계'는 관심 밖이다. 자유당 개리 존슨 후보는 자신이 존경한다는 해외 지도자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는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장벽'을 건설하고 이라크 석유를 뺏어야 한다는 의중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 사는 세계에 대한 약간의 소개 글을 마련했다. 다극 체제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세상이 더 이상 "유일 슈퍼 파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증거를 원한다면 시리아 내전에 참전해 미국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축출 계획을 좌절시키고 시리아 내전의 판도를 바꾼 러시아의 역할부터 살펴볼 수 있다. 러시아 사례는 군사 및 외교 분야 모두에서 미국의 전지구적 패권이 축소되는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에 하나이다. 평화적 측면을 주목한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 또는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거국적인 수송 및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 아시아와 유럽의 수많은 국가를 중국과 연결하는 계획의 구현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은행과 비견될 수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중국의 수단을 보라. 그런 변화 양상 속에서 과거 압도적인 경제 패권을 갖고 있던 미국이 점차 국제적으로 도전받고 축소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리아는 러시아 손바닥에


러시아와 미국이 10개월간의 어려운 협상 끝에 타결한 9월 10일 시리아 휴전 합의는 또다시 깨지면서 지금은 엉망진창이지만, 이목을 받지 못하는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이 있다. 구소련이 내부적으로 붕괴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가 미국과 대등한 외교적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지금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의 발언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여기가 막다른 길이 아니며 …단지 새로운 대미 관계의 시작이다" 미·러 관계가 지금은 지체하고 격화한 상황이지만, 러시아의 제한적인 시리아 개입이 전쟁으로 유린당하고 황폐해진 땅에서와 국제 외교 무대 모두에서 결실을 보는 승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맞춤 전략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2015년 8월은 모든 측면에서 아사드 대통령은 궁지에 몰린 상태였고 왜소해진 시리아군의 사기도 최저였다.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란의 지원만으로는 아사드 대통령의 위태로운 정권 장악력을 회복하기에는 불충분했음이 확연했다.

러시아 군사 전략가들은 와해 중인 시리아 공군력이 남긴 커다란 공백을 메우고 영공 방어를 보강함에 더해, 탱크와 장갑차 등 고갈된 시리아 무기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막자는 취지였다. 그런 목표에 맞게 러시아의 마지막 거점 중의 하나인 라타키아 항구 인근 공군 기지를 발진 기지로 변모시켜 그곳으로 전투기와 공격헬기, 탱크, 야포, 병력호송장갑차를 운반했다. 또한, 러시아는 그곳에 첨단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했다.

4천~5천 명으로 추산되는 러시아 병력이 파견되었다. 그 가운데 지상군은 전혀 없지만, 러시아 근현대사에 전례가 없는 행보다. 러시아가 해외에 상당 규모의 병력을 파견한 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오판으로 판가름 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0년 후에 철군과 함께 종식되었고, 1991년 12월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 석상에서 "러시아와 이란이 아사드를 지탱하고 군사력으로 평화를 수립하려는 시도는 자진해서 수렁에 빠져드는 것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2014년 9월 이후 IS가 장악한 시리아 영토에 있는 복수의 표적에 폭격한 이래로 오바마는 이 주제라면 전문가가 돼야 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도 미 국방성은 쌍방의 항공기에 대한 안전 조치에 관한 양해각서를 러시아와 곧바로 서명했다. 이제 양국은 시리아 상공을 공유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지상 통신 회선도 구축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지속한 공습에서 러시아는 9,000회 이상 출격해 (IS가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209개 원유 생산 및 운송 시설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시리아군은 8,860 제곱 마일에 걸친 400개 거점을 탈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인 5명만 희생되었다.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결정적인 역할이 계속 커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자 백악관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2016년 3월 중순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다. 회담에 따른 시리아의 향방을 보자면 캐리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시리아 문제에서 러시아 입장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IS 격퇴를 위한 양국 지도부의 긴밀한 공조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러시아의 군사 작전이 시작된 지 1년, 대다수 시리아의 주요 도시는 시리아 정부 수중으로 돌아왔고 (종종 쑥대밭이 된 채로) 반군 거점인 동부 알레포는 러시아의 공습을 받고 있다. 시리아군의 전체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아사드 정권의 사기는 진작되었다. 아사드 정권은 이제 축출될 위험도 없어졌고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의 영향력도 강화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에겐 적지 않게 중요한 점은 그들이 중동 지역에 다시 등장했다는 점이다. 5년 반의 시리아 내전으로 최대로 추산해 거의 5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병원에 대한 폭격마저 일상이 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러시아가 쌓아온 중추적인 위치를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나라들조차 인식하게 됐다. 러시아 군사 작전 1주년에 푸틴은 더 많은 전투기를 시리아에 파견했다. 이는 러시아를 수렁에 빠트릴 여지도 있다. 그러나 당분간 푸틴의 전략이 러시아의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앞다퉈 푸틴 찾는 반(反)아사드 진영 아랍국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 사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터키의 최고위 관리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푸틴과 회담을 열었다. 10월에 첫 테이프를 끊은 건 살만 러시아 국왕의 아들인 모하메드 왕세제였다. 그들은 소치의 흑해에 있는 러시아 대통령의 별장에서 회동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CIA가 조달한 토우 대전차 미사일 매입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제 양국은 "테러 집단(IS)이 우위를 점유하지 못하게"하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다는 합의를 이뤘다. 아딜 주바이르 사우디 외무 장관은 러시아의 표적이 되는 반군 단체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다. 푸틴은 이에 정보 공유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향후 양국의 군사 및 안보 분야 협력을 의미한다.

당일 얼마 후 세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 겸) 통합군 부총사령관은 푸틴을 방문했다. "나는 러시아가 중동 문제에서 매우 심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겠습니다."고 그는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양국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2016년 1월 크렘린궁에서 푸틴을 만난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러시아가 세계 안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카타르는 요르단과 함께 반 아사드 반란군 무장과 훈련기지를 CIA에 제공해왔다. 한 달 뒤엔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가 소치에서 푸틴을 만났다. 바레인은 1971년부터 미 해군 제5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다. 그는 러시아 지도자 푸틴에게 다마스쿠스 철로 만든 "승리의 검"을 선물했다. 회담 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두 나라가 경제적, 군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에는 리셉 타입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이 "소중한 친구" 푸틴을 면담하기 위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다. 2015년 터키가 시리아 북부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했을 때만 해도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추락했었다. 서방 지도자들과 달리 푸틴은 개인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7월 터키 군사 쿠데타 시도를 저지한 일에 대해 그를 축하해주었다. "헌법에 반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철저하게 반대한다"고 그는 밝혔다. 3시간이 걸친 대화 이후 두 사람은 양국의 위축된 경제 관계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갑자기 아사드 퇴진 요구를 거둬들이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뤄졌다.

요약하자면 제한적인 군사 개입이지만, 그의 시리아 개입 덕택에 푸틴은 중동의 미래를 결정할 영향력을 강화해주는 지렛대를 확보하였다. 그 덕에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위기에 쏠린 국제적 이목을 돌리게 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직후 오바마는 "러시아는 인접 국가(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지역 강국에 불과하며 이는 힘의 표출이 아니라 연약함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틴은 그런 오바마의 주장을 격퇴할 만큼 만족스러운 타당한 근거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였다. 

푸틴은 그 덕분에 추가 보너스로 국내 지지 기반도 공고히 다졌다. 그는 크림반도와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지지율이 역대 최고인 89%로 치솟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제재와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2015년 러시아는 국내총생산이 -3.7%로 위축되어 경기 침체로 이어진 시절이었다. (독자의 양해를 먼저 구하고) 강력한 지도자는 경제 현실도 극복할 수 있다는 대중적 인식을 국내 정치적으로 극명하게 증명해 보여준 사례이다. 올해 러시아 경제는 또다시 하락해 -1%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총선에서 푸틴이 지지하는 통합러시아당이 54%의 득표율로 승리해 450석 중의 343석을 차지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수렴


어느 정도는 서방의 제재 결과로 러시아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한층 결속하고 있다. 2016년 6월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이 된 이후 푸틴은 네 차례나 베이징을 방문했다. 양국 정상은 교역과 투자,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하나로 수렴하는 상호 양립하는 공동의 목표를 강조하였다.

시 주석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직면해 푸틴 대통령과 나는 2001년 중러 전략적 파트너십과 협력 관계의 정신을 더 끈기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러시아와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매우 밀접하고 합치된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96년 상하이협력기구(SCO)의 공동 창설국인 양국은 그들 스스로 '유라시아 파워'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 6월 베이징 방문 중에 푸틴은 500억 달러 상당의 58개 거래를 양국 간에 논의하고 있다고 당시에 언급했다. 러시아는 또한 10억 달러 규모의 위안화 표시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며 중국의 전자결제망을 러시아 신용카드 시스템에 연결하려는 계획도 고려하고 있다. 양국은 이미 4000억 달러 규모의 합의 당사국이다. 합의 내용을 보면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은 향후 30년간 천연가스를 중국에 제공하기로 했다.

중러 간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하나로 수렴하는 사례로 구안 유페이 국제군협력사무소장이 최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최근 파드 자셈 알 프레이즈 시리아 국방장관을 만났고 대(對)시리아 군사 지원을 담당하는 러시아 장성과 함께 회담을 열었다. 구안과 알 프레이즈는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인도주의 원조와 훈련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푸틴의 6월 베이징 방문 기간에 시진핑은 세계 여론 상에 미칠 양국 미디어의 "영향력 증진을 병행"할 수 있도록 양국의 보도 기관 사이 긴밀한 협력을 요청했다. 양국은 이미 실질적으로 국제 정보 바다에 상당히 침투해 있다. 중국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State Administration of Radio, Film, and Television)은 중국 중앙 텔레비전을 통한 중국 이야기 "전달" 사업을 2001년에 출범했다. 2009년 총국 산하 외국어 부서는 인공위성과 케이블을 통해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로그램을 전세계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푸틴이 2006년에 설치한 러시아투데이(RT)는 노보스티 브랜드 중의 하나로 러시아 통신사 노보스티가 설립한 자치 비영리 기관이며 다. 3천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국제 사건에 대한 러시아의 관점을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2006년 이후 RT 인터내셔널은 24시간 내내 속보와 다큐멘터리, 토크쇼, 토론, 스포츠 뉴스, 문화 프로그램 등을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힌두어, 터키어 등 12개국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RT 아메리카"와 "RT UK"는 각각 2010년과 2014년부터 현지 기반 콘텐츠를 송출하고 있다.

2013년~2014년 동안 1년 예산 3억 달러로 운영되던 RT는 BBC 월드서비스그룹에 비해 여전히 뒤처져 있다. BBC 월드서비스그룹은 3억 6700달러 예산을 가지고 36개 언어로 서비스한다. 푸틴은 2013년 모스크바에 있는 RT의 첨단 스튜디오를 방문한 자리에서 방송국 직원들에게 "앵글로색슨이 독점하고 있는 대중 미디어 독점을 깰 것"을 촉구했다.

중국의 글로벌 군사력 투사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패권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을 출범했다. 이에 맞서 시진핑은 국가 주석에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야심 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일대일로 사업의 목표는 그야말로 국내 정치를 지리적 전략 양상으로 재편하는 한편, 유라시아 경제 재건을 촉진하는 데 있다. 국내적으로 과도하게 치중했던 해안 지역 개발에서 서부 내륙을 개발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겠다는 취지다. 또한, 중국,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철도와 에너지 파이프라인 망으로 유럽과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2015년 2월 이우(義烏)시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1만6,156마일 노선을 달리는 첫 화물 열차 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수송 시간의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중국은 2014년 400억 달러(약 44조8천억 원)를 투자해 실크로드 펀드를 조성했다. 펀드의 목적은 일대일로 사업의 여러 길목에 있는 나라에 대한 투자 확대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또한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2008년 1.9조 달러에서 2015년 3.3조 달로 늘어났다. 이는 아직 모자란 액수이긴 하지만 중국 미래 계획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또한 2015년 1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베이징에 설립했다. 두 달 뒤, 미국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방 최초로 영국이 AIIB의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곧바로 영국의 뒤를 따랐다. 이들 국가는 다른 무엇보다도 힘차게 경제 영토를 확장하며 세계 최대의 무역 국가로 변모하는 중국을 무시할 수 없었다. 2015년 중국의 총 수출입 규모는 3.87조 달러로 미국을 추월하였다. 미국은 3.82조 달러를 기록해 60년 동안 지켜온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었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국(아세안) 10개 회원국 일부를 비롯해 29개국 상대로 제1의 교역국이 되었다. 제1 교역국 지위는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법정이 7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에 반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에도 아세안이 만장일치로 회원국 필리핀을 지지하기로 합의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판결 직후 중국은 열흘간의 일정으로 남중국해에서 러시아와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했다.

GDP의 성장을 반영하듯, 중국의 방위비 지출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 동향에 관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방위비는 2006년부터 매년 9.8%씩 증가해 2015년에 1800억 달러에 도달해 GDP의 1.7%를 차지했다. 반면 미 국방성의 2015년 예산은 5850억 달러로 미국 GDP의 3.2%다.

중국군의 4대 총부 가운데 중국 정부는 특히 해군 능력 향상과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이유는 자명하다.

해군 교리에 관한 연구에서 보여주듯 중국은 19세기 후반 미국, 독일, 일본이 정한 고전적인 패턴을 따라 세계 강대국이 되려고 한다. 첫째, 자국의 해안 방위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영해 및 해운의 안전 확보; 셋째,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해로의 보호. 중국의 경우 해로의 보호는 페르시아만 원유를 남중국해 항만으로 들여오는 일이다.

세계 강국의 포부를 향한 이러한 4단계 과정과 그 궁극적 목표는 먼 대륙으로의 군사력 투사이다. 현재 3단계에 도달한 중국은 버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에 항만을 건설하는 해상 실크로드 계획으로 마지막 4단계 목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중국 해군의 중기적 목적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누리고 있는 독점적 지위를 약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잠수함 함대를 서둘러 구축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의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지부티에 첫 해외 전진기지 건설을 위해 90에이커 부지를 10년간 임대 승인을 획득하였다. 미 국방성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74개국에 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중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기 10개국과 7개국에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확실히 중국이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적인 목표


중국 지도부는 향후 수십 년 동안에는 미국의 세계 지도력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0년 전 베이징 거점의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싱크탱크인 중국 사회과학원은 "종합국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종합국력은 100점 만점으로 면밀하게 산출한 단일 수치이다. 2015년 종합국력 수치는 미국, 중국, 러시아가 각각 91.68점, 33.92점, 30.48점이다.

일본이 35.12점으로 종합국력 2위를 기록했다. 인도는 12.97점을 받아 10위이다. 다만 굽힐 줄 모르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여망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선언했고 21세기 후반부는 인도의 시대가 될 거라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모디의 주장은 환상 속의 세상이지만, 향후 수십 년 도래할 세상이 얼마나 다극 체재의 모습을 띨 것인지 환기해 준다. 원거리 전력 투사를 논하자면 인도는 중국의 해운 상선과 군함을 감시하기 위해 인도양의 마다카스카르와 세이셸 제도, 몰디브, 스리랑카에 레이더망을 구축한 게 전부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대통령은 현실적인 관계로 1815년 나폴레옹의 패퇴 이후 한 세기 동안 유럽에 존재했던 일종의 권력 균형을 닮은 글로벌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1815년 운명의 해를 뒤로하고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러이센 군주들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같이 강력한 유일 유럽 국가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결의가 있었다. 그 결과물인 "유럽의 협조 체제"는 1815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지속되었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소련의 붕괴 직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 전까지(1992년~2008년 여름) 거침없이 행사해온 글로벌 패권을 더는 행사 못 하도록 책임지고 있다. 2008년 8월 초, 친 서방 성향의 미하일 사카쉬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분리 독립을 요구하던 남오세티야를 무력 진압으로 쟁취했지만, 러시아의 군사 행동으로 원점으로 돌아가자 부시 정부는 말로만 비판에 그쳐야 했다.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군사 점령 등 산적한 과제로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무소불위 미국 패권이 견제를 받지 않았던 일극 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하나의 이정표로 그 사건을 바라보라. 그렇게 바라봤다면 이젠 9년 차 다극 체제의 세상을 환영하라.

딜립 히로는 톰디스패치의 정규 맴버이자 저술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 <제국은 가고: 다극 체제라는 세계의 탄생>이 있다. (네이션 북스), 그의 36번째이자 최신 저서의 타이틀은 <여망의 시대: 세계화된 인도의 권력과 부, 대립>이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원문보기:American Power At The Crossroads huffingtonpost

2018년 4월 29일 일요일

미국은 어떻게 시리아 테러리스트를 무장했나

군사위원회와 외무위원회 소속 3선의 털시 개버드 여성 하원 의원은 시리아 내부 테러리스트 조직뿐만 아니라 그들 조직과 직접 협력하는 조직에 대해 미국의 지원을 완전히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똑같이 중요하게 이 법안은 테러 분자들과 협력자에게 무기를 공여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와의 군사 협력이나 다른 형태의 군사 협력을 금지하도록 한다.

개버드의 "테러리스트 무장 금지법"은 의회가 오래전에 경종을 울렸어야 했을 시리아 내전 속 분쟁과 관련된 미국의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2012~13년 오바마 행정부는 바샤르 알 아사드 권력을 강제 퇴출할 수 있도록 수니파 동맹국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시리아와 비 시리아 무장 단체에 무기를 공여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2013년에 미 행정부는 CIA가 판단하기엔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 아사드 집단에 무기를 공여하기 시작했다. 즉, 정도가 제각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규합했다는 의미다.

아사드 정권을 보다 민주적인 대안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 해당 정책은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 전선를 아사드를 위협할 주축 세력으로 키우는 일을 실제 도왔다.

반군을 무장하는 이 정책의 지지자들은 시리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반감시킬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대(對)시리아 미국 정책의 역사에서 제기되는 진짜 문제를 빠트리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정책은 알카에다와 테러 단체의 근절이라는 "테러와의 전쟁"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내다 버렸다. 미국은 그 대신 대테러 관련 미국의 이해관계를 수니파 동맹국들의 이해관계에 종속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중동의 심장부에 새로운 테러리스트 위협의 생성을 도와왔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의 전복을 다짐하는 군사 단체를 무장하는 정책이 처음 2011년 9월에 시작될 당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사드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라는 수니파 동맹국의 압력을 받을 시점이다. 아사드 반군 수립 의지가 확고한 이들 수니파 동맹국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이다. 터키와 걸프만 수니파 정권들은 미국이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을 반군에 공여하기를 원했다고 중동 문제에 관여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직 관리가 밝혔다.

오바마는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공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다만 그는 반(反)시리아 단체 무장을 위한 비밀 군사 지원 캠페인 수행을 돕는 미국 병참 지원을 제공하기로 동의했다. CIA가 관여한 반 아사드 병력 무장은 벵가지에 비축되어 있었던 카다피 정권의 무기고에서 무기를 이송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시모어 허시의 2014년 탐사 보도에 상세히 나와 있듯이 CIA 통제를 받는 무기 회사들은 병참을 관리하는 미군 요원을 활용하여 벵가지 군사 항구에서 시리아의 소규모 항구 두 곳으로 무기를 이송했다. 반군 무장 프로그램의 기금은 주로 사우디 사람들이 조달했다.

기밀 해제된 2012년 10월 국방정보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8월 말 선적한 무기는 저격용 소총 300정과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 100기와 유탄 300발, 곡사포 400기가 포함된다. 무기 수송마다 많게는 10개의 컨테이너 선적을 취급했으며 각 컨테이너에는 약 4만 8천 파운드의 화물을 적재했다고 국방정보국 보고서는 적시했다. 이는 선적 당 최대 250t의 총 무기 탑재량을 의미한다. CIA가 한 달에 한 차례의 수송을 기획했더라도 2011년 10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총 2,750t의 무기가 결국에 시리아로 향했다. 아마도 실제 무기 선적량은 언급한 숫자의 갑절일 공산이 크다.

2012년 9월 CIA의 비공식 무기 선적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그 때가 미 CIA의 무기 수송 작전을 지원을 위해 사용되었던 벵가지의 대사관 부속 건물을 리비아 무장 세력이 공격하고 불 태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이다. 그러나 그즈음에 반 아사드 세력을 무장하기 위한 더 큰 채널이 열리고 있었다. CIA는 1990년대 발칸 전쟁에서 남은 대량의 무기를 팔겠다고 제안한 크로아티아 고위 관리와 사우디 사람들이 접촉하도록 주선했다. 그리고 CIA는 여러 다른 구소련 국가 정부와 무기 판매상이 출처인 무기의 쇼핑을 사우디에 알선했다.

CIA 리비아 프로그램과 크로아티아로부터 조달한 무기가 넘쳐나면서 사우디와 카타르 사람들은 2012년 12월 터키행 군용 화물기 운항 횟수를 증편했고 다음 두 달 반 기간에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았다. 뉴욕 타임스는 2013년 3월 중순까지 총 160편의 항공편이 그런 이유로 운항했다고 보도했다. 걸프만에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화물기인 일류신 Il-76 항공편은 회당 대략 50t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고로 2012년 말과 2013년에 터키 국경에서 시리아로 8000t의 무기가 쏟아져 들어갔다.

한 미국 관리는 새로운 차원의 무기 배달을 시리아 반란군에 제공한 것을 일컬어 "무기 폭포수"라고 했다. 발칸 조사 네트워크와 조직범죄 및 부패보고 프로젝트는 1년에 걸친 조사에서 사우디가 강력한 재래식 군대를 시리아에 건설할 작정이었음을 밝혀냈다. 2013년 5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소재 무기 회사에서 구매한 무기의 "최종소비자증명"에는 중무장한 탱크도 관통할 수 있는 소련이 설계한 PG-7VR 로켓 발사기 500기와 탄두 2백만 개가 적시되어 있다; 콘커스 대전차 미사일 발사대 50문과 미사일 500개, 장갑차에 장착한 대공포 50문, 중장갑차를 관통할 수 있는 OG-7 로켓 발사기 파쇄탄 10,000발; 트럭에 장착된 BM-21 GRAD 다중 로켓 발사기 4기, 이 4기 중 1기당 1회 사격에 사거리가 12 ~ 19마일인 로켓을 40발과 GRAD 로켓을 20,000발 발사한다.

사우디가 발주한 같은 세르비아 무기 회사의 다른 최종사용자증명 내역에는 탱크 300대,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 2000기, 다른 로켓 발사기 16,500기, ZU-23-2 대공포 탄두 1백만 발, 기타 다양한 총기류 탄창 3억 1500만 개가 열거되어 있다.

두 차례 해당 구매는 사우디가 발칸 8개국으로부터 이후 몇 년에 걸쳐 획득한 무기 총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탐사 기자들은 사우디가 2015년에 가장 많은 무기 거래를 구소련 국가들과 했으며, 당시 거래된 무기에는 공장 생산 설비에서 막 나온 무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사우디 사람들이 구매한 무기 중 거의 40%는 2017년 초까지도 인도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우디 사람들은 수 년 앞을 내다보고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지속하기에 충분한 무기 계약을 이미 마쳤다.

지금까지 사우디의 가장 중요한 무기 구매를 하나만 꼽자면 발칸 제국의 무기가 아니라 미국산 무기 구매였다. 다름 아닌 10억 달러 상당의 토우 대전차 미사일 15,000기를 사우디에 판매한 미국의 2013년 12월 거래이다. 이 거래는 그해 반아사드 무장 단체에 살인 무기 지원을 금지했다가 번복한 오바마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아울러 미국의 재량에 의해서만 이들 대전차 미사일을 시리아 단체에 나눠 주기로 합의했다. 토우 미사일은 2014년 시리아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시리아 군사 균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로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봇물 터지듯 유입된 무기와 외국 전투원 2만 명 유입이 더해져 시리아 분쟁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했다.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 알 누스라 전선(현재는 타흐리르 알샴 혹은 레반트 자유인민위원회로 개명)과 동맹 단체를 가장 강력한 반아사드 시리아 단체로 만드는 것을 돕고, 이슬람 국가(ISIS)의 부상을 가져온 것은 이런 군비 조달이었다.

2012년 말 즈음, 그해 초 시리아에 유입되기 시작한 상당량의 무기로 인해 알카에다의 시리아 점유가 앞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이 미국 관리가 보기에 자명해졌다. 2012년 10월 미국 당국자들이 뉴욕 타임스에 처음으로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내용을 보면 전년도 미국의 병참 지원과 함께 시리아의 반군 무장 단체에 이송된 무기 대부분이 "이슬람 강경파 지하디스트"에 넘어갔다. 이 말은 자명하게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 누스라를 의미한다.

사우디, 터키, 카타르 사람들은 유입된 해당 무기를 정부 목표물 공격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군대에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알 누스라 전선과 동맹 단체가 유입 무기의 주요 수령자가 되었다. 그리고 터키 국경 너머로 쏟아져 들어간 외국인 지하디스트 수천 명의 지원을 받던 알 누스라 전선(Al Nusra Front)는 2012년 여름 무렵 이미 "자유 시리아군" 여단과 공조해 대 시리아 정부 공격을 주도하고 있었다.

2012년 11월과 12월 알 누스라 전선은, 찰스 리스터가 그의 저서 "시리안 지하드"에서 기록한 대로, 자칭 "자유 시리아군"이라는 사람들과 여러 전선에서 공식적인 "공동작전실"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권이 선호한 이에 적합한 사령관은 압둘 자바바 알 오카이디 대령이 있다. 그는 전직 시리아 군부 장교로 소위 알레포 혁명군사위원회의 수장이었다. 시리아에서 퇴거한 후에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한 로버트 포드(Robert Ford) 대사는 2013년 5월 오카이드를 공개적으로 방문하여 자유 시리아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오카이드와 그의 부대는 알레포 연합의 손아래 파트너였다. 알레포 연합 중 알 누스라가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반군 집단이었다. 그런 현실은 "이슬람 국가"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하는 비디오 장면이나, 2013년 9월 시리아 정부의 메나그 공군 기지 점령을 기념하는 알레포 지역의 지하디스트 사령관과 합류하는 모습에 분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2013년 초 무렵 기실 어떤 군대와도 합류한 적이 없던 군사 조직인 "자유 시리아군"은 시리아 분쟁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잃었다. 새로운 반(反) 아사드 무장 단체는 대표적인 분쟁 전문가가 관측한 바론 자신을 스스로 식별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래서 터키로부터 무기가 여러 전장에 도착했을 때 모든 비 지하드 단체는 유입 무기를 알 누스라 전선과 그들과 친한 반군 동맹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을 이해한 상태였다. 시리아 북부 한 도시를 다룬 2013년 초 맥클라치 신문 기사는 "자유 시리아군"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알 누스라와 그들 여단 간의 군사 합의체가 어떻게 무기 분배를 관장했는지 보여준다. 그들 부대 중 하나인 승리 여단(Victory Brigade)은 알카에다의 가장 중요한 군사 동맹인 아흐라르 알-샴(Ahrar al Sham)과 함께 "공동작전실"에 참여하며 몇 주 전 전략 소도시에 대한 성공적인 공격을 치렀다. 방문 기자는 승리 여단과 아흐라르 알-샴이 러시아산 RPG27 어깨 거치 로켓 추진 대전차 유탄과 RG6 유탄 발사기를 포함하는 새롭고 정교한 무기를 과시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승전 여단이 아흐라르 알-샴과 새로운 무기를 공유했는지 질문을 받자, 아흐라르 알-샴 대변인은 대답했다. "물론 그들은 우리와 무기를 공유한다. 우리는 함께 싸운다."

터키와 카타르는 의식적으로 알카에다와 최측근 동맹인 아흐라르 알-샴을 무기 체계의 수령자로 선택했다. 2013년 말과 2014년 초에는 터키 국경 바로 남쪽에 있는 하타이 주를 향해 무기를 싣고 가던 트럭 여러 대를 터키 경찰이 차단했다. 나중에 터키 경찰의 법정 증언에 의하면 해당 트럭에는 터키 정보 기관원이 탑승해 있었다. 하타이주는 아흐라르 알-샴이 장악했다. 실제로 터키는 아흐라르 알-샴을 주요 시리아 고객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고 아틀란틱 카운슬의 중동 라피크하리리센터 수석 연구원인 페일살 이타니는 말한다.

리비아 극단주의자 집단에 무기를 수송하는 일에 관여한 카타르 정보 당국자는 터키에서 시리아로 유입되는 무기 흐름을 감독한 핵심 인물이었다. 지난 수십 년 간 터키 시리아 국경 근처의 외부 무기 공급업자들 사이 논의에 익숙한 한 아랍 정보 기관원은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David Ignatius)에게 말하길, 참가자 중 한 명이 외부 이슬람 세력이 지하디스트리스트의 덩치를 키워주고 있지만, 비(非) 이슬람 단체는 그 존재가 미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하자, 카타르 작전 책임자는 "도움만 된다면 알카에다에 무기를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카타르 사람들은 중동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알 누스라 전선과 아흐라르 알-샴 모두에 무기를 몰아 주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A) 참모들은 미국이 시리아와 리비아 거점 극단주의자들을 무장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을 카타르에 표시하기 위해 카타르 알-우데이드(Al-Udeid) 미국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중대를 철수하자고 2013년에 제안했다. 그러나 미 국방성은 카타르 기지 접근권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NSA의 가벼운 압력을 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허쉬 기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2013년 5월 백악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리셉 타입 에드로안 정부가 지하디스트를 지원하는 것을 놓고 터키 총리와 정면으로 붙었다. 오바마는 "우리는 당신이 시리아에서 급진주의자들과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안다"고 말했다고 허쉬 기자는 전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중반에 한시적으로만 터키와 알 누스라(Al Nusra)의 상호 협력 문제를 다뤘다. 프랜시스 리치아돈(Francis Ricciardone) 미 대사는 앙카라를 떠난 직후 터키는 "솔직히 말해서 상당 기간에 걸쳐 알 누스라(Al Nusra)를 포함해 (시리아 반군) 단체와 협력해 왔다."고 런던 소재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 밝혔다. 그는 2011년부터 2014년 중반까지 터키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터키의 최대 우방인 미국은 시리아 거점 테러리스트를 무장한 터키를 공개적으로 견책하게 된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2014년 10월 터키의 역할에 대해 비판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사로 나선 바이든은 즉석해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동맹국이다"고 불평했다. 바이든은 우리 동맹국이 무기를 공급한 세력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알 누스라와 알카에다, 지하디스트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의도적으로 지하드 운동을 도왔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당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신속히 사과했다. 그러나 포드 대사는 BBC 방송에 출연해 "바이든의 발언 취지는 동맹국이 극단주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6월에 오바마 대통령은 반란군 여단에 대한 직접적인 미국의 살상 무기 군사 원조를 처음으로 승인했다. 2014년 봄까지 사우디로 옮겨진 1만 5천 기의 미국산 BGM-71E 대전차 미사일이 선별된 반(反) 아사드 단체의 수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CIA는 무기를 전달 받는 단체는 알 누스라 전선과 반군 연맹과는 협력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부과했다.

그 조건에 비추어 미국 정부가 알 누스라 전선과는 분리 독립을 유지하기에 충분히 강한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CIA 검증 명단에 오른 반군 단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무장 단체로 알카에다 계열 단체의 강제 흡수에 매우 취약했다. 2014년 11월 알 누스라 전선은 CIA 지원 단체 중 가장 강력한 2대 무장 단체인 하라카 하즘(Harakat Hazm)과 시리아혁명전선을 연일 공격했고, 토우 대전차 미사일과 GRAD 로켓를 포함한 중무기를 탈취했다.

2015년 3월 초 하라카 하즘 알레포 지부는 자진해서 해체되었고, 알 누스라 전선은 거기서 확보한 토우 미사일과 기타 장비를 사진에 담아 자랑했다. 2016년 3월 알 누스라 전선은 이들리브 지역의 13사단 본부를 공격해 모든 토우 미사일을 탈취했다. 그달 이후 알 누스라 전선는 포획한 토우 미사일을 사용하는 그들 병력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공개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 누스라 전선이 CIA의 유익한 선물을 획득한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알 누스라 전선은 2014~15년 겨울 가까운 연맹인 아흐라르 알-샴과 함께 이들리브 지방의 완전한 점령을 위한 군사 캠페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와의 거리 두기 가면을 벗어던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알카에다 지부와 연맹 단체로 구성된 '정복의 군대'(Army of Conquest)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군대 창설을 위해 알 누스라와 협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이 통합 캠페인을 위해 더 많은 무기를 제공했으며 터키는 무기 이동의 편의를 도왔다. 3월 28일 반군 통합 캠페인이 출범한 지 4일 만에 "정복의 군대"는 이들리브시를 성공적으로 장악하였다.

CIA 원조로 선진 무기를 확보했던 비(非) 지하드 무장 단체는 이들리브시에 대한 초기 공격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리브를 점령한 이후 시리아 소재 미군 주도의 공동작전실은 시리아의 잔여 지방 통제의 통합을 위한 반군 통합 캠페인에 지금 합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이들리브 소재 CIA 지원 무장 단체에 보냈다. CIA 지원 단체인 지하디스트 및 다른 무장 단체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인 연구가 리스터에 따르면 정의의 기사 여단과 13사단은 미 CIA의 제지 없이 알 누스라 전선과 함께 이들리브 통합 캠페인에 합류했다.

이들리브 공세가 시작됨에 따라 CIA 지원 단체는 토우 미사일을 더 많이 확보해 나갔으며 이제는 토우 미사일을 사용하여 시리아군 탱크에 매우 효과적으로 대항하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정책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단체와 알 누스라 전선 사이의 연맹을 지지하는 시리아 전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

이들리브 신 연맹은 알레포로 이어졌는데 그곳에서 누스라 전선과 가까운 지하디스트 단체는 CIA 지원을 받는 알레포 지역 9개 무장 단체와 파타 할랍("알레포 정복")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령부를 구성했다. CIA 지원 단체들이 알 누스라 전선과 협력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알카에다의 지부가 새로운 사령부(파타 할랍) 참여 명단에 공식적으로 올라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령부에 대한 보도가 분명히 암시한 것처럼, 이 캠페인은 CIA가 자기 고객에게 계속 무기를 공여하는 방식의 하나 일 뿐이다. 사실상 알카에다와의 동맹이지만, 상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의 수니파 동맹국이 알 누스라 전선과 연맹 단체에 무기를 공여할 수 있도록 돕고, 정교한 무기를 시리아 전쟁터에 쏟아부어 필연적으로 알 누스라의 수중에 떨어지게 하거나 무장 단체 전반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해 주는 등 시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알카에다의 권력을 확장해준 주된 책임이 미국의 정책에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국방부는 미국이 천명한 테러 대테러 작전에 대한 이 같은 배신을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털시 개버드의 법안에 따라 강제하든, 의회나 백악관이 그런 노골적인 배신에 맞서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가 패망했더라도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의 권력 통합을 계속 공모할 것이다.

가레스 포터(Gareth Porter )는 독립적인 기자이자 2012 마사 겔혼(Gellhorn) 저널리즘 상 수상자이다. 그는 "가공의 위기: 이란 핵 공포 속 숨겨진 이야기"(저스트 월드 북, 2014년 작)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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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How America Armed Terrorists in Syria Gareth Porter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보도 매체가 언급하지 않는 시리아 전쟁에 관한 10가지 사실

(안티미디어) ― 언론기업은 시리아에서 진행 중인 역내 분쟁의 책임을 오롯이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만 전가하는 보도를 정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언론기업은 이러한 서술과 상반되는 사건 보도를 간헐적이되 하긴 한다. 다만 보도 비중이 작긴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모두 합치면 시리아 분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다.
10: 바샤르 알아사드는 버락 오바마보다 지지율이 높다.

아사드 정권이 합법적인 정권이 아니니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오바마는 주장하고 있지만, 기실 2011년 분쟁이 불거진 이래로 아사드는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왔다. 아사드 대통령이 어떤 (선거법)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국제 관측통이 밝힌 2014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그가 비록 심각한 인권 유린 혐의를 받고 있지만, 시리아 국민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면 오바마는 자신이 승리한 2012년 선거에서 투표율이 겨우 53.6%밖에 되지 않았는데, 겨우 1억 2,910만 유권자만 표를 행사했다. 이는 약 1억 8,980만 명의 미국민이 오바마에게 투표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의 지지율은 현재 50%대에 머무르고 있다.

9: "온건"한 반대파가 실종됐다.

시리아에는 과거라면 모르겠는데 더는 "온건"한 반대파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소위 자유 시리아군(FSA)은 극단주의자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미국은 이를 파악하고도 시리아 반대 세력을 계속 지원해왔다. 뉴욕 타임스는 시리아에 보낸 무기 대부분이 지하디스트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2012년 보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기밀 분류된 DIA 보고서를 보면 이슬람 국가(ISIS)의 부상을 다음과 같이 예고한다:

"상황이 잘 안 풀리면 시리아 동부에 공식 혹은 비공식 살라피스트 공국이 수립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형국은 시리아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반대파를 지원하는 세력이 원하던 그대로이다.

또한 자유 시리아군(FSA)의 지휘관은 자신의 전투원들이 정기적으로 알 누스라(시리아의 알 카에다)와의 합동 작전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샤리아 법에 따른 시리아 통치를 보고 싶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온건파란 의미 역시 "알카이다 계열 광신도"가 될 수 있음이 자명하다.

8: 아사드는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전혀 없다.

2013년 초에 처음으로 자행된 대표적인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조사에서 유엔은 제시된 증거로 볼 때 해당 공격이 시리아 반대 세력이 자행한 공격일 공산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서방에서는 당시 잔악 행위를 아사드의 소행으로 낙인찍었다. 2013년 8월 공격에 대한 UN의 후속 조사에서는 아사드의 세력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역대 퓰리처상 수상자인 언론인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는 2013년 12월 당시 상황의 처리 방식상에 여러 결함을 부각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공격 직전 수개월 동안 미국 정보기관은 일련의 높은 수준으로 기밀 분류된 보고서를 생산했다.… (이 보고서는) 알 카에다와 계열의 지하디 단체인 알 누수라 전선(Nusra Front)이 사린 제조기술을 마스터했으며 사린을 대량 생산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언급하고 있다.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했을 때 알 누수라는 용의자였어야 했지만, 미 행정부는 아사드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했다."

7: 시리아 정권 타도는 9/11 직후 채택된 계획 일부였다.

9/11 테러 직후 웨슬리 클라크 4성 장군이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펜타곤은 5년 안에 7개 나라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채택했다. 해당 국가는 이라크,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이란이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이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 이스라엘은 2006년 레바논을 수중에 넣으려고 시도했었다. 리비아는 2011년에 파괴되었다. 서방의 개입 이전에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생활 수준이 높은 국가였다. 2015년 한 해에만 시리아의 유엔 인간개발지수 순위가 27계단 하락했다. 미국의 무인 비행기가 소말리아 상공을 날고 있고, 미군이 남부 수단에 주둔하고 있다. 수단은 잔인한 내전 이후 분단 상태이다. 2011년 이후 시리아는 치명적인 전쟁의 현장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란만 남아 있는데 밑에서 다루기로 한다.

6: 이란과 시리아는 상호 방위에 합의했다.

2005년 이후 이란과 시리아는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했다. 이란 정부는 이 합의를 완전히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군대와 1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한도, 훈련 및 조언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시리아 정권에 제공했다. 그러나 시리아 분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시리아 편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국은 이란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러시아가 최근 몇 달에 걸쳐 시리아 군사 개입에 나선 것은 양국의 협박이 공치사가 아님을 증명해 준다. 그들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그들의 믿음을 입증했다.

이란은 그간 미국 외교 정책 집단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조지 부시는 자신의 임기 중에 이란 공격에 필요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시도가 부족했기보다는 제재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역내에서 이란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을 공격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이란의 역내 영향력 확산을 저해할 수 있는 열강이 존재한다면 궁극적으로 이란의 약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5: 전임 애플 CEO는 시리아 난민의 아들이다.

애플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시리아 사람의 아들이며 1950년대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런 사실이 특히 웃긴 것은 외국인 혐오증, 이슬람 혐오증, 인종주의 및 난민에 대한 증오의 크기를 볼 때 그렇고 스티브 잡스가 이민자에게, 심지어 대통령 도전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니 웃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래 기술 개척자들이 결코 미국에 당도하지 못할 조건을 만들 것인가? 트럼프의 수사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4: 이슬람 국가(ISIS)는 시리아 분쟁이 아니라 이라크 침공의 산물이다.

이슬람 국가는 애초에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로 알려졌으며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유명세를 크게 얻었다. 잘 알려졌듯이 이라크 침공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라크에 알 카에다의 존재가 없었는데 침공 이후 생겨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3년 5월 폴 브레머(Paul Bremer)가 대 이라크 대통령 특사 역할을 맡았을 때, 그는 경찰과 군대를 해산시켰다. 브레머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고위급 군 관계자들을 포함해 40만 명에 가까운 전직 군인을 해고했다. 해고된 장군은 현재 ISIS 내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대량 해고가 없었더라면 ISIS는 존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슬람 국가(ISIS)는 전부터 미국 안보 기관에 의해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라고 알려졌지만, 이들 전투원은 리비아시리아에서 서구의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아젠다의 주축이 되었다. 이라크인과 시리아인이 합세한 알 카에다 계열 단체는 2014년 시리아 국경이 접한 곳에서 통합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본격적인 테러 집단을 마주하게 되었다.

3: 터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원했지만, 아사드가 거절했다.

2009년 카타르는 사우디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시리아와 터키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제안했었다. 아사드 대통령은 카타르의 제안을 거부하고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경유지에서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완전히 배제하는 합의안을 이란과 이라크와 체결했다. 그 후로 터키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타도를 추구하는 반대 세력의 확고한 후원자였다. 전체적으로 그들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무기를 빌려주고, 광신적인 이데올로기 확산을 장려하고, 국경 너머로 전투원을 밀입국시키는 것을 도왔다.

이란-이라크 파이프라인은 역내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다른 주요 OPEC 산유국이며 라이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을 약화한다. 미국의 동맹국을 경유하지 않고 유럽으로 가스를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할 때, 이란은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미국 달러를 완전히 배제하는 협상에 합의할 수 있다.

2: 유출된 전화 통화 내용을 보면 터키는 이슬람 국가 전투원에게 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시리아 정권과 싸우는 강경파 이슬람 주의자들에 대한 터키의 지원은 광범위하다. 기실 지하디스트는 터키 국경을 "지하드의 관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6년 5월 터키는 도가 지나쳐 ISIS 전투원에게 값 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경이라는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터키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잠시 그 의미를 새겨보자.

1: 시리아 분쟁에 대한 서양 언론의 주요 정보원은 영국 코번트리(Copventry)에 있는 티셔츠 가게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당신이 뉴스를 읽는다면, 당신은 주류 매체가 인용하는 시리아인인권전망대(SOHR)라는 웅대한 이름의 단체를 당연히 들어봤을 것이다. 소위 "전망대"는 시리아 분쟁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잉글랜드 코번트리(Coventry)에 있는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운영되지만, 아직도 가장 존경받는 서구 보도 매체(예로 BBC, 로이터, 가디언인터네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그의 자격 증명서로는 동내 길가에 티셔츠 가게 주인이라는 것과 시리아 현직 대통령을 반대하는 악명 높은 반체제 인사라는 점도 포함된다.

***

이 기사에 실린 많은 정보가 주류 보도 매체에서 나왔음에도 기사 유통망 종사자들은 이 모든 줄거리를 한대 모아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대중에게 전달하길 거부한다.

아사드는 잔인할 수도 있으며, 파다한 인권 유린 의혹에 대해 재판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다른 정황이 비 사실이 되거나 무의미하게 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중동 전쟁의 길로 말려 들어가기 전에, 더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과 테러 공격 확대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영문 원본: 10 Facts the Media Won’t Tell You About the War in Syria The Anti-Media

2018년 4월 22일 일요일

가스 파이프라인 쟁탈전이 불러온 피 튀기는 싸움이 시리아 전쟁인가?

시리아 전쟁은 종종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종종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갈등 해소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리아 전쟁의 주요 당사국 중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1억 달러 가스 파이프라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이런 세부 사항을 대입해보면 시리아 전쟁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해법은 이렇다.

바보야, 문제는 가스야


많은 사람이 왜 러시아가 시리아 전쟁에 개입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종종 천연가스 쟁탈전을 간과하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인 미첼 오렌스타인과 조지 로머가 지난달 포린 어페어스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보듯 러시아는 현재 난방, 요리, 연료 및 기타 활동에 사용하는 가스의 1/4을 유럽에 공급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국영 기업 가스프롬(Gazprom)이 생산하는 가스의 80%가 유럽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중요한 유럽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유럽은 러시아 연료에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정치적 지렛대로 천연가스를 사용해왔고, 분쟁 중인 국가에 공급을 차단했던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이런 움직임이 맘에 들리가 없다. 러시아는 심지어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려는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었다.

데이비드 달튼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편집장은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항상 가스를 영향력 행사의 도구로 활용해왔습니다. 당신이 가스프롬에 신세를 많이 질수록 그들은 더 많이 쥐어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파워의 대부분은 가스를 유럽으로 저렴하게 운송하는 데 사용되는 기존의 파이프 라인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이제 러시아를 우회하여 새로운 가스 공급원을 유럽에 제공하려고 한다.

작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러시아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을 후려치기 위해 최근 프래킹(fracking·수압파쇄)을 통해 개발한 자국 천연가스를 이용하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로 수송할만한 입지를 다지기 전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미국이 러시아를 극복하려는 유일한 나라는 아니며 그 지점에서 시리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2개의 새로운 파이프라인


시리아 내란 이전에 카타르와 이란은 시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가스를 수송하기 위해 2개의 상반되는 파이프라인 계획을 제안하였다.

카타르의 계획은 2009년에 처음 제시한 뒤로 페르시아만을 출발해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및 터키를 경유하는 파이프 라인 건설에 참여했다.

페르시아만 해양분지 지하 3000m에 위치한 가스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전이다. 카타르는 이 가스 자원의 약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인도하기 위해 유조선에 의존해야 하므로 러시아산 가스보다 자국 가스가 비싸지기 때문에 그런 이점을 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에 더욱 저렴한 가스 공급원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파이프라인의 시리아 영토 통과 허용을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자국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카타르 파이프라인을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믿는다.

The proposed gas pipeline from Qatar via Saudi Arabia, Jordan, Syria and Turkey to Europe.Source:Supplied

한편 이란은 페르시아만 가스전의 또 다른 소규모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지중해를 경유해 유럽에 도달하는 100억 달러 규모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상반되는 제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Pipeline from Iran via Iraq and Syria to Europe.Source:Supplied

이란의 계획은 카타르와 달리 미국 공군 기지를 주재하지 않는 이란에 대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축복을 받았다.

아사드는 2012년 이란의 파이프라인 계획에 서명했으며 2016년 완공될 예정이지만 아랍의 봄과 내전으로 인해 결국 연기됐다.

아사드에 반대하는 시리아 전쟁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대다수 국가는 해당 파이프라인 계획과 직접 상관이 있다.

파이프라인 입찰에 고배를 마신 카타르는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반(反) 아사드 반군 단체에 3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도 테러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를 받아왔다.

반대로 파이프라인 입찰에 성공한 이란은 무기는 물론 병력까지 공급하며 시리아 군대를 운영하는 등 시리아를 돕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오렌스타인과 로머는 지적한다.

미 육군 사령부 및 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교 강사인 로버트 테일러 소령은 작년에 암드포스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경쟁 관계의 파이프라인이 시리아의 분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는 "지정학적,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시리아의 갈등은 내전이 아니라 세계 열강 국가들이 파이프라인 개방을 앞두고 지정학적 체스판에 포석을 까는 예비 과정에서 생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페르시아만의 석유와 관련된 것처럼 시리아도 이 모든 것이 가스 때문인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터키는 무슨 상관인가?


아사드를 제거해 득 볼 것이 많은 나라 중 하나는 터키이다.

리셉 타입 에드로 터키 대통령은 그간 시리아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으며 아울러 IS를 돕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하버드 대학의 오렌스타인 교수는 아사드가 쿠르드족을 지지하는 만큼 터키가 시리아 반란군을 지원할 다른 근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가스가 시리아 정권에 반대할 만한 독보적인 이유가 될 거라고 뉴스닷컴오유(news.com.au)에 말했다.

아시아와 유럽의 갈림길에 위치한 터키는 유럽 연합의 신생 회원국인 관계로 일각에서는 중동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을 원활하기 하는 최선의 방안이 터키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허브로서 터키는 운송료나 기타 에너지 관련 수입으로 인해 혜택을 볼 것이다.

터키의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동의 모든 가스 공급 국가가 자유롭게 가스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다.

카타르의 계획은 터키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러시아 가스에 의지하는 나라 중에 터키도 속해 있는 만큼 러시아 의존을 벗어나는 것도 추가 보너스가 된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이 터키를 우회하고 아사드가 터키를 포함하지 않는 대안을 승인하는 과정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면 그 어떤 것도 실현될 수 없다.

이제 러시아가 아마도 가스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섰기 때문에 터키의 원대한 포부는 엄청난 장벽에 직면하게 되었다.

터키가 이번 달 초에 러시아 비행기를 격추시켰을 당시 일각에서는 아사드 지도부의 정권 연장을 염두에 둔 러시아와 미국 간의 잠재적 협력을 약화하려는 시도라는 추측도 불거졌다.

러시아의 공습에 대한 러시아의 동기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은퇴한 공군 대령 CNN 군사 분석가 세드릭 레이튼(Cedric Leighton)은 이슬람 국가(IS) 극단주의자에 대한 러시아의 폭격이 터키 정부와 유대관계가 공고한 시리아 북부의 투르크멘을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오렌스타인 교수는 천연가스에 대한 경쟁이 결국에 이슬람 국가(IS)와의 싸움과 관련해 양대 강대국 간의 협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스 문제와 이란에 대한 상반되는 이해관계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얘기할 근거가 있는지 회의적이다."고 뉴스탓컴오유(news.com.au)에 말했다.

그러나 세계가 새로운 냉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오렌스타인 교수는 천연가스 쟁탈전을 또 다른 분쟁의 소재로 삼아 "너도 나도 한 몫 챙기기"를 하려는 것으로 판단했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영문 원본: Is the fight over a gas pipeline fuelling the world’s bloodiest conflict? news.com.au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시리아에 관한 진실

주류 매체가 전하는 시리아 보도는 전쟁에 대한 가공의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중의 정서를 실시간으로 대량 조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 전쟁은 미국인의 생명과 세금으로 치러지지만, 결국 민간 산업의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의 침략으로 인한 희생자를 악마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믿음에 동조하는 시민을 양산하기 위해 진실은 기형적으로 왜곡된다. 실제로는 우리는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수십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 피난 갈 것을 강요하는 등의 정반대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보금자리는 멈출 줄 모르는 폭격과 파괴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런 패턴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의 불법 침공 때문에 입증된 패턴이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2000년 기사에서 보듯 카타르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의 보고를 유럽과 직접 연결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시리아, 터키를 가로지르는 100억 달러 상당의 1500km 파이프라인 건설을 제안했었다. 유럽은 그 천연가스의 3분의 1을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기 때문에 더 쉽고 저렴한 (카타르) 천연가스 접근권을 열망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터키는 상당한 중계 수수료가 발생하게 되어 카타르의 경쟁자인 러시아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다. 보수 수니파 군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카타르 파이프라인이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왜 힐러리 클린턴을 백악관에 들여놓기를 열망하는지 설명해 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 대선 캠페인 기간 힐러리 캠프에 가장 많은 후원금을 기부했다. 그러나 수니파 군주국 사우디가 천연가스 자원을 장악하면 그로 인해 시아파 국가 이란과 이해 충돌이 빚어진다. 또한, 이란은 마침 바샤르 알 아사드와 가까운 우방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으로 70%의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있어 카타르 파이프라인이 생기면 러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빼앗기게 된다. 아사드는 가장 강력한 우방인 러시아를 존중해 카타르의 2009년 파이프라인 제안을 거부하는 대신에 이란에서 시리아를 거처 레바논까지 연결하는 "이슬람 파이프라인"을 승인했다. 그렇게 되면 카타르가 아닌 시아파 이란이 유럽 시장의 주요한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이스라엘도 이란과 시리아를 키워주지 않기 위해 "이슬람 파이프라인을 와해"시키기로 작정하면서 긴장 악화는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카타르 파이프라인을 지지하는 자들은 지체 없이 아사드 타도를 위해 수니파 봉기를 선동하기로 작정했다. 그리하여 미 중앙정보국(CIA)은 쿠데타 실행에 동참하는 테러리스트에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퓰리처상 수상 언론인 시모어 허시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사드는 시리아 자유화에 나섰고 '서구화'를 추구하는 과정에 지하디스트 급진주의자에 관한 수천 개의 귀중한 파일을 CIA에 넘겨 주었다. 아사드 정부는 만들어질 때부터 세속적이었고 '탁월한 다양성"이 있는 정부라고 허시는 말한다. 실제 아사드 자신은 시아파임에도 그의 정부와 군부의 80%는 수니파이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만의 역사는 아사드 정권의 탄압과 비교해 심히 우려되는 수준이다. "아사드는 사라져야 한다"는 오바마 정부의 성명은 이런 맥락에서 자기 논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2011년 봄, 아사드의 가혹한 국정 전략에 변화를 요구하는 작고 평화로운 시위가 다마스쿠스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허핑턴포스트는 당시 이 시위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CIA가 꾸민 짓"이라고 보도했다. 시리아 "내전"이라는 오바마 정부와 보도 매체가 전하는 서술과는 충격적으로 대조적인 내용이다. 2018년 9월 존 켈리 국무부 장관은 의회에 출석해 "미국이 앞서 다른 곳(이라크)에서 했던 방식대로 모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그들이 비용을 치를 것이다."라고 말하며, 수니파 군주국 사우디가 비용을 대고 미군이 시리아를 침공해 아사드를 타도하자고 사우디가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가공된 합의를 실천하는 캠페인이 시작됨에 따라 미국, 프랑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와 영국까지 포함된 연합 세력이 아사드의 사퇴를 요구하게 되었다. CIA는 아사드 제거를 위한 여론을 주작하기 위한 영국의 허위 정보 캠페인에 6백만 달러를 썼다. 위키리크스가 게시한 정보 문서에 따르면 2012년까지 중동 연합국은 아사드를 타도하고, 카타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과격 지하디스트 수니파 전투원을 적극적으로 무장시키고, 훈련을 하게 시키고, 자금도 조달했다. 카타르는 저항 세력에 30억 달러를 투자했고, 미 국방부가 카타르 미군 기지에서 저항 세력의 훈련을 맡아서 했다. 또한, 지하디스트 세력은 미국 요원들이 제공하는 정보 및 물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가을 CIA는 리비아의 비밀 경로를 따라 터키를 통해 시리아까지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 등의 중화기 화포를 밀반입해 지하디스트를 무장시켰다. 이 이야기는 원래 미 언론인 세레나 심(Serena Shim)이 처음 보도했는데 그녀는 이런 사실을 보도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시모어 허시는 해당 비밀 경로는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 연합 국가의 자금으로 운영되었다고 보도했다.

2013년 여름 오바마 정부는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공격을 아사드 책임이라고 비난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모어 허시의 기사에서 보듯 지하디스트가 사린을 입수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 있지만, 사린 공격의 책임이 아사드에게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음에도 오바마는 아사드가 '레드 라인'을 넘었으며 미군의 공격 대상이 된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오바마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고문단뿐만 아니라 정보 및 군 장교들 사이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고의적인 정보 조작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때로는 분노"가 있었음을 시모어 허시가 확인했다. 한 고위 정보 관리는 이런 고의 조작을 일컬어 '계략'이라고 했다. 실제로 허시는 전직 정보 당국자가 1964년 통킹만 사건의 '왜곡'과 유사하게 'Obama 행정부가 가용 정보에 수정을 가했다'고 그에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주류 보도 매체는 평화적인 시리아 시위를 폭군에 반대하는 봉기로 묘사했지만, 미 정보기관은 언제나처럼 자신들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새로운 수니파 이슬람 칼리프(무슬림 지도부)를 창설하려는 급진적 지하디스트를 무장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는 미 국방정보국 2012년 연구에 따른 내용이다. 미국과 걸프만 국가의 자금 지원, 훈련 및 병참 지원 덕분에 정책 변화를 추구한 평화적인 시리아 시위가 미 행정부의 목표대로 '시아 대 수니' 종파간 전쟁이 되었다. 2014년 가을 뉴욕 타임스는 CIA가 IS를 창설했다고 이라크 시아파 성직자가 주장했으며, 이라크 부총리와 재무부 장관도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고 보도했었다.

오늘날, 동부 알레포가 해방되면서 미국의 대대적인 허위 정보 캠페인의 실체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알레포 해방 당시 에바 바틀렛(Eva Bartlett)과 같은 언론인들이 시리아에서 광범하게 조사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당시 잔인한 시리아 정권이 자국민을 공격하고 있다고 전하는 주류 매체의 서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보도 내용이었다. 바틀렛의 조사 결과는 2016년 7월 시리아에서 비슷한 임무를 끝내고 귀환했던 미국평화협의회(U.S. Peace Council)의 조사 결과를 입증했는데 주류 보도 매체는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에 알레포가 반란 세력으로부터 최종적으로 해방될 당시 우리는 유언비어 확산에 동원된 언론인들과 운동가의 거짓 "마지막 메시지"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나중에 반정부 세력과 의심스러운 유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지막 메시지"를 주장한) 빌랄 압둘 카림(Bilal Abdul Kareem)이란 기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며칠 후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자살 폭탄 조끼와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반란군 한 명과 인터뷰 형식의 보도를 타전했다.

그렇다면 지난 5년간 미국인들이 시리아의 현실에 대해 그토록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적어도 1975년 이래로 CIA는 뉴스 네트워크와 뉴스 매체에 '이야기'를 떠먹여 주었고 그러면 그들은 그걸 사실이라고 보도해왔다. 동시에 미국 국내에서의 선전을 방지하고 타국과 다르게 자유롭고 객관적인 국내 언론을 보장하기 위해 통과된 1948년 스미스-먼트 법안이 수년에 걸쳐 침식되더니 2012년이 되자 해당 내용이 완전히 통째로 날아갔다. 동시에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을 통해 네트워크 간의 대규모 언론 통폐합이 이뤄졌고, 15명의 억만장자가 운영하는 미국의 전체 뉴스 네트워크를 통해 보급되는 뉴스 콘텐츠를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저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직후에 CIA와 6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계약을 체결했음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CIA가 혐의를 제기하는 원조 "러시아 해킹" 서술(narrative)을 보도한 신문이다.

현재까지 50만명의 시리아 인이 살해되었으며 1천만 명이 집을 떠나 영구 피난민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두고 유엔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라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 법이 미국 시민을 상대로 한 선전, 네트워크 통제의 중앙집중화, 대안 뉴스에 대한 검열 확대를 허용하는 한, 미국인들은 주류 뉴스 매체의 기사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갈수록 커지면서 좀 더 신빙성이 있는 다른 정보 채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언론이 회복될 때까지 우리는 매번 아니 그 이상이라도 공식 서술(official narratives)에 대해 반드시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한다.

영문 원본: The Truth About Sy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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